오늘 본문은 유다백성들이 학개의 말을 듣고 이제 성전건축을 시작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개는 다리오왕 제 이년 6월 1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15절에 보면 3주 뒤에 6월 24일에 성전건축을 시작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백성들이 이렇게 선정건축을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그들의 삶의 우선권이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유다백성들이 어떻게 성전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1. 선지자 학개의 말을 여호와의 목소리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학1:12절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라고 합니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선지자 학개의 말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여호와의 목소리로 들었습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바울이 삼주동안말 말씀을 전했음에도 데살로니가교인들이 모범적인 교인들이 된 것도 그들이 사도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살전2:13.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를 시작할 때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많이 선포되어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어떤 하나님의 역사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유다백성들이 학개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12절 하반 절에 보면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라고 합니다. 유다백성들은 학개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유다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인정할 줄 압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또 유다백성들이 성전을 건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3.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유다백성들은 성전건축을 중단하고 낙심에 빠져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최대의 위로는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낙심되는 상황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합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아무리 좋은 가나안땅을 주신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게 특별한 능력과 은사가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또 나를 돕는 사람들과 환경이 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우리의 제일 큰 위로요 힘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유다백성들이 성전건축을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유대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14절에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고 하는데, 감동시키셨다는 말은 각성시키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통해서 그들이 심어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수고하여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것이 그들의 삶의 우선권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유다백성들은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대각성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 우리가 아무리 수고해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안 되구나” 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백성들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서 다시 성전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으로 들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에 새로운 깨달음과 각성이 일어나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함께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귀로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깨닫게 하시고, 또 우리 마음의 감동을 주시고 각성을 주시는 분은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잘 듣고 깨닫고,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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