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 창립 42주년 기념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교회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어떤 곳으로 보시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42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하는 지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서 다짐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시지, 너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주신 말씀도 되지만,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에게 주신 말씀으로 보아야합니다. 즉 이 세상에서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말씀에서는 교회는 이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 되어라 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희는(즉 교회)는 이미 이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당시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엄청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스라엘나라에서 제일 가난한 지방인 갈릴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구성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대부분 어부 출신들입니다. 그리고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제자들이라 매일 예수님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꾸지람을 받던 자들입니다. 숫자적으로도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더 엄청난 말씀은 그 다음 말씀입니다.
14절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산위에 있는 동네(도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산위에 동네(도시)는 당시의 왕궁이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당시에 왕궁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감출 수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는 하나 하나의 행동들이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우리나라로 말하면 산위에 있는 동네는 청와대요 국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려고 합니까? 바로 그곳이 산위에 있는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올라가면 온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래서 감출 수 없습니다. 또 그곳에 올라가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 어부 촌 동네에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고, 산위에 있는 도시, 즉 왕궁과 같은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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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하고 보잘 것이 없어도---우리는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빛이 되었고, 소금이 되었고, 산위에 동네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빛과 소금인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역할을 감당할만한 인간적인 그 무엇들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의 빛이고 소금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지만 하니님의 은혜로 빛이 되었고, 소금이 되었고 산위에 동네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항상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위치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교회를 통해서는 하는 조그마한 행동의 날개 짓이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청와대 대통령이 하는 한 마디 말과 행동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제가 청와대 대통령보다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저는 그것이 이 세상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는 목사가 아니니까 나는 세상의 빛이 아니고 소금도 아니다. 더우기 나는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존재다, 그러니 더 이상 나는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없고 소금이 될 수도 없고--산위에 동네는 꿈도 못 꿀 존재다”라고 생각하기기 쉽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 모두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만일 나는 세상의 빛도 아니고 소금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빛이고 소금이 되었다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비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 北京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에게는 거룩한 나비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이 교회를 통해서 하는 조그마한 행동들이 이 세상에 태풍도 가져올 수도 있고. 훈풍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청와대에 사람들은 절대 함부로 싸우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는 모든 행동들이 언론에 노출이 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산위의 동네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싸우고 싶어도 마음대로 싸우지 못합니다. 미워하고 마음대로 싶어도 미워하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산위에 동네로 있기 때문입니다.
---또 반대로 우리가 여기서 보이지 않게 행하는 작은 사랑의 선한 행동들이 지금도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들 우리 동부제일교회 성도님들은 행동과 말들이 청와대 대통령과 같이 말하시기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이 복을 받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고 산위에 동네로서 어떻게 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까?
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교회가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이 되어야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또 서구의 교회는 오래 동안 교회가 세상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때 교회도 타락했고, 세상도 같이 타락했습니다. 또 오늘 날에도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대통령을 배출한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 자신도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이 빛이고 소금이고 산위에 동네라는 말은 우리가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은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인격적, 도덕적 영향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문맥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다 고 말씀하시기 전에 팔복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팔복은 그리스도인의 성품, 즉 인격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 팔복은 예수님의 인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우리가 팔복의 인격과 덕을 갖추어야합니다. 이러한 인격이 부패한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할 수 있고,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게 밝힐 수 있게 만듭니다. 팔복의 인격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하면서 왜 세상이 변화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그 인격이 팔복이 인격, 예수님을 닮은 인격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어떤 인격이 되라고 합니까?
먼저 심령이 가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인격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까? 이 말씀은 죄에 대해서, 세상의 타락에 대해서 늘 애통하는 근심하는 인격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나 사랑을 인하여 절제할 수 있는 인격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잘 됨보다 옮음을 추구하는 인격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긍휼이 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길 줄 아는 인격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음에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며, 죄에 대해서 깨끗한 인격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평화주의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은 의를 인하여 핍박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처럼 날마다 옳음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자가 될 때 비로소 이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어떻게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도덕적으로 우리가 이 세상 사람보다 더 우위에 있어야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 뒷부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5장 20절을 보면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의 보다 나아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그 당시에 세상에서 가장 의롭다고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가 세상에서 가장 의롭다고 하던 사람들의 의보다 더 의로워야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라고 합니다. 이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산상설교 전체의 문맥으로 보면 여기서 말씀하는 의는 바리새인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높은 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과 같은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죽인 것만 살인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조차 살인죄로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만 아니라 마음의 살인죄도 짖지 말아야합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육체적 간음만을 간음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간음조차도 원통히 회개해야합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원수에 대해서는 당연히 미워하고 보복합니다. 그것을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수를 보복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원수도 사랑해야합니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을 빌어주는 정도로 의로워야합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구제를 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또 기도를 할 때도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의식하며 사람에게 보이도록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즉 이 세상에 먹고 사는 육신적인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그의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더 나은 의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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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말씀을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말씀들을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겨야합니다.
아무리 말로만 주여 주여 하고, 말로만 옳은 행실과 정의만을 주장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 보다 더 나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합니다.
요즘 권사 제자반에서 야고보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만일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외모로 사람을 대하면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즉 마지막 날에 우리가 아무리 입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말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말씀대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감사한 것은 금요구제예배를 통해서 여러 성도님들이 도와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전도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실천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도 많은 전도팀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수준과 삶을 살 때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세속화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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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인격이 예수님을 닮는 인격이 되어야합니다.
또 우리가 도덕적으로 이 세상 사람보다 더 우위에 있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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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결코 인간적인 힘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탄을 물리쳐야합니다. 저는 요즘 기도하면서 우리의 싸움은 사탄과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의로운 삶을 살려고 해도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임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기도는 힘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사탄은 말합니다. 또 기도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사탄은 말합니다. 또 사탄은 우리가 일에 분주함에 빠져서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교회 일에 분주하게 만들어서 기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회의하는 일에만 빠져서 기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디모데 전서 2장 8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기도는 여자분 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자 분들이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달 첫째 주는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간이 되면 낮 중보기도모임도 직접 인도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값어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사탄을 물리치고, 죄악을 물리치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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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장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한 예언을 읽어보겠습니다.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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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신약시대 교회를 향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인데, 이 말씀에서 우리 교회를 넣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마지막 말에 동부제일교회가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입니다. 모든 작은 산보다 더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모여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부제일교회에 와서 주님의 진리의 도를 가르치고 배울 것입니다. 또 우리가 그 말씀대로 행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동부제일교회를 통하여 흘러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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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선지자들이 꿈꾸었던 시온의 영광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그대로 실현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찬송가 248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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