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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아브라함 언약(구원의 언약이란 무엇인가)(마1:1-3) 왜 구원하셨나

by 금빛돌 2026. 1. 21.

언약이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사탄의 자녀가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에서 이 언약을 구원의 언약이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나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시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는 노아언약 살펴보았습니다. 노아 언약은 하나님께서 노아 때와 같이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언약의 시청각 교재는 피이고 노아 언약의 시청각 교재는 무개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노아언약을 통해서 이 세상을 물로 완전히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까?

그 이유는 구원의 언약을 통해서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최초로 구원의 언약은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창 17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구원을 언약을 베풀어 주셨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족보)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여기서 계보는 족보입니다. 우리는 처음 성경을 볼 때 이렇게 아브라함은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 하는 이 족보 이야기를 보면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애 낳는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족보는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보여주는 족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최초로 구원의 언약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자녀가 모두 몇 명입니까? 8명입니다. 그러면 이브라함의 여러 자녀 중에서 누구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이삭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라고 합니다. 또 이삭의 아들 중에서 에서도 있었지만 야곱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을 낳고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이 족보는 단순한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족보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녀 중에서 누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를 보여주는 족보입니다. 아브라함은 구원의 언약으로 천국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족보는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누가 천국 시민의 족보에 들어가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분명 천국에 가면 이 족보에 우리의 이름이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또 유다가 어떻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천국시민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어떻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라고 하면 먼저 그는 믿음의 조상이다-또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정도로 굉장한 순종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굉장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또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창12장에 보면 그가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 즉 변화되기 전 아브라함의 모습이 나옵니다. 13장부터는 변화되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 받기 전의 아브라함을 통해서 원래 아브라함이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에 갔을 때, 가나안땅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갑니다. 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갑니까? 아브라함은 처음에 부름을 받았을 때 오직 그의 관심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서 좀 살기 힘이 드니까 약속의 땅도 버리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누구를 만납니까? 애굽 왕 바로를 만납니다. 바로가 아브라함의 사래를 취하려고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덕에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애굽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아내를 누이로 속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가리켜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등처가라고 합니다. 등처가가 무슨 말입니까? 마누라 등 처먹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드라이브 맨이 무슨 말입니까? 부인이 공무원인데 아침 저녁으로 부인을 출퇴근 시켜주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셔터맨이 무슨 말입니까? 부인이 약사를 하는데, 아침 저녁으로 약국의 셔터문만 열어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수퍼맨이 있습니다. 옆집에 살던 사람이 수퍼 맨이었습니다. 그분은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다고 일하러 가지 않습니다. 또 날씨가 좋지 않으면 또 날씨가 좋지 않다고 일하러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내는 수퍼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매일 수퍼에서 놀면서 과자를 술안주로 삼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런 드라이브맨, 셔터맨, 수퍼맨정도가 아닙니다. 어떻게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로 속일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아내를 남의 남자에게 주고 그 아내 덕에 잘 먹고 잘 살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본래의 인간성은 자기 부인에게 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 초기에 성경 공부를 다 마치고 갑자기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짜장면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짜장면 먹고 싶지-빨리 중국집에 연락해서 짜장면을 먹자, 그리고 가서 짜장면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잘 먹지 못했습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먹고 싶으니까 당신도 먹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통해서 내가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에게 한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본래의 인간성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본래 인간성은 어떻습니까? 별로 좋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자신만 알고, 오직 육신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왜 불렀습니까? 그가 어떠했기에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아브라함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야곱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원래 불임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가지게 했습니다. 그때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하나님께 하나님 왜 내 뱃속에 두 아이가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나는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에서와 야곱 중에서 야곱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는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는 말을 언제 했습니까?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 전-즉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였습니다. 태중에 있을 때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선이나 악이나 행하지 않은 때입니다(9). 그러면 제가 또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이 태중에서 아무 선이나 악도 행하지 않았을 때인데도, 왜 야곱만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셨습니까?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야곱에게는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과 이유 없이 야곱을 일방적으로 사랑하셨기에 야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실 에서가 야곱보다 더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에서는 남자답게 사냥을 좋아하고, 온몸에 털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마치 여자 같습니다. 그래서 부엌에 들어가 팥죽이나 끓이고, 어머니 치마폭에 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삭도 야곱보다 에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좋아 보여서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이 보기에 잘나고 좋은 사람보다 인간이 볼 때 볼품이 없는 그런 사람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극렬하게 보여주는 것이 오늘 족보에 나오는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열두 아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열두 아들의 대표가 누구입니까? 유다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선택받은 열두 형제의 대표가 유다로 나옵니다. 또 야곱의 열두 형제 중에서 예수님은 유다의 혈통에서 나옵니다. 놀랍게도 지금 12지파 중에서 가장 크게 남아있는 지파가 유다지파입니다. 유대인이 바로 유다지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의 대표인 유다는 어떤 인물입니까? 유다의 이야기는 창38장에 상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절대 인간을 절대시하거나 영웅시하지 않습니다. 성경만큼 인간 본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곳은 없습니다. 유다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유다에게 세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당시의 결혼풍습에 따라 둘째 아들이 첫째 며느리와 관계를 가지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첫째 아들의 자식이 되어 집안의 대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이것을 거부하여 하나님께 벌 받아 죽게 됩니다. 그리고 셋째아들은 너무 나이가 어립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의 며느리 이름이 다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다말이 나쁜 여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말이라는 여인은 어떻게 해서든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 남자가 없습니다. 남자라곤 오직 시아버지 유다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기 위해 창녀로 분장을 합니다. 그러면 물어보겠습니다. 왜 다말이 창녀로 분장을 합니까? 그 이유는 평소 자기 시아버지 유다의 평소 소행이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녀로 분장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유다가 걸렸습니다. 사실 그 도시에는 창녀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다말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걸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리거 합니다. 바로 이자가 유다입니다. 이 유다가 하나님의 선택받고 구원받은 자녀의 대표가 되었고, 또 예수님은 그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여러분 이 유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말은 절대 절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선택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선택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본질이 어떤 줄 아십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육신적인 것만 생각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간사하고 속이기를 잘하는 인간입니다. 또 우리는 유다처럼 세상의 풍조에 휘말려 얼마든지 범죄 할 수 있는 그런 인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이런 우리가 어떻게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잘남이 압니다. 우리의 똑똑함이나 거룩함도 아닙니다. 우리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우리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감격함이 없는 줄 아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인가? 를 극렬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부산에서 공부를 할 때 저는 날씨가 추워서 5000원짜리 스폰지 파커가 사고 싶었습니다. 5000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5000원짜리 스폰지 파커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서 저희 이모님 카드를 빌려서 당시로서는 거금인 15만원짜리 런던포그 오리털 파커를 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런던포그는 상표는 앞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제 앞을 확 지나가다가 한 5미터 갔다가 다시 저에게로 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런더포그 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조금 우쭐거립니다. 그래서 그 옷을 입은 기숙사 현관이 자주 서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15만원짜리 오리털 파커를 입고 운동장을 걸었습니ㅏ다. 그리고 옷 속에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실 저는 15만원짜리 파거를 입고 다니지만 사실 저의 본질은 5000원짜리 파커도 살 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제 모습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한 번도 남들이 말하는 그렇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생각 해보니 겉으로 드러난 거룩하게 보이는 그 모습이 본래의 저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나의 겉모습과는 달리 너무도 추악하고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게 있는 착하고 도덕적이고 거룩한 모습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십니까? 일 때문에 봉사 때문에 습관 때문에 나오셨습니까? 그렇다면 성전 마당만 밟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찬양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가 그랬듯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나가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도 하나님을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의식합니다. 그래서 나는 저 사람들보다 더 의롭고 똑똑하고 바르게 살았다 라고 합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주님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를 알게 됩니다.

한번은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제 입에서 이런 찬양이 나왔습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 벌레 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얼마나 크게 느끼십니까?

우리가 더러운 시궁창에서 나와서 밝은 빛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내 더러운 오물이 점점 없어져 갑니다. 그러나 그 밝은 빛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오히려 더 더럽고 흉측한 사람으로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성령의 밝은 조명이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은밀히 나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서 죄인인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보시기 바랍니다. 옛날에는 내가 잘나서 괜찮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보게 되니-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죄인을 사랑하셨습니까? 오주님 어떻게 이런 죄인에게 오래 참으셨습니까? 오 주님 어떻게 이런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를 져 주셨습니까?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살면 살수록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래서 어제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다음날이 지금보다는 미래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더 풍성히 누리고 깨달아 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천국 시민의 족보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는 이 교회 안에서 어떤 인간적인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그 어떤 인간적인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천국 시민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오직 만세전부터 선택해 주신 하나님만을 자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로 예수님을 믿게 하신 성령 하나님만을 자랑할 수 있기를 간젏리 바랍니다. 어떤 교회가 행복한 교회입니까? 그 어떤 인간적인 자랑도 하지 않고 서로 모일 때마다 예수님만 자랑하는 교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기쁘고 즐거워하는 교회입니다. 래서 오직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이 족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사랑하신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자매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유를 물으니까 자기는 요즈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지 나를 사랑하시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습다. 대학에서 선교단체 활동도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도 하고, 대학부 부회장까지 하던 자매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정도니 굉장히 심각한 문제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자기는 요즘에 똑같은 일을 4번씩이나 당했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차를 타고 가다가 지갑을 잃어버렸고, 한번은 길을 가다가 지갑을 잃어버렸고, 한 번은 학교에서 지갑을 잃어버렸고, 한 번은 화장실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이리 심각한 문제인가 하면 똑같은 일을 4번씩이나 당했는데도 하나님은 왜 가만히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디. 만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계시고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반복해서 4번씩이나 일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대부분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격게 되는 일들을 통해서 판단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과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가 나와 함께 하시는가 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는 기준을 일상적인 삶 속에 둘 때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일상적인 삶에만 두면 우리는 환경에 메인 그리스도인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심을 믿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기준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두시기 바랍니다. 내가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두시기 바랍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사랑하신다면 아이의 병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아무 것이 없어도 내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병든 아이가 침상에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내가 이렇게 약해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내가 이렇게 병들어도 하나님에 사랑하실까? 내가 죽어도 천국 갈 수 있을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이 바로 찬송가 563장입니다.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서 쓰였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서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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