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위로를 주었던 노래가 있습니다.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입니다. 가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이 노래를 원래 다른 사람이 불렀는데, 황가람이라는 가수가 불러서 국민 위로 송이 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황가람은 20살 때 서울에 올라와서 노숙 생활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년 만이 이 한 곡으로 가수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느 강연 프로에 나와서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버티게 해 주었던 힘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강연을 듣고 오늘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나는 저 하늘의 빛나는 별은 아니지만, 하나님 안에서 빛나는 반딧불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인생이란 하늘의 빛나는 별이 아니라 반딧불임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그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도 어릴 때 나는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될 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이 “어릴 때 꿈을 크게 꾸세요,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꿈을 작아지기 때문이 예요, 그러니 꿈을 크게 꾸세요”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내가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을 다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란 나는 하늘의 빛나는 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심지어 나는 하늘의 빛나는 별이 아니라 내가 벌레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극심한 고난으면서 어떻게 고백합니까?
시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특별히 여러분 우리가 어떨 때 나는 하늘의 별이 아니라 벌레와 같다고 느낍니까?
남들과 비교했을 때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때 나는 벌레와 같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황가람도 자신은 처음에 스타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 많은 가수들을 보니까 정말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유명하다는 가수들을 볼 때 자신은 너무나 초라한 존재라고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유명한 가수들을 보면서 자신은 깨똥벌레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수가 재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유명한 가수들은 노력이 아니라 재능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정말 가수로서 재능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년을 노력해서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과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과연 우리가 하늘의 별과 같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25: 15. 각각(한 사람씩 불러) 그 재능대로(그 사람에게 맞게)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나님은 각기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 재능대로”라는 “그 사람에게 맞게”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각각”이라는 말은 모두 있는 자리에서 다섯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신 것이 아니라 각각 한 사람씩 불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서로 비교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두 있는 자리에서 너는 다섯 달란트, 너는 두 달란트, 너는 한 달란트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각자 한 사람씩 불러서 우리에게 맞게 달란트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크고 작은 것은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가진 달란트들을 모두 작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칭찬하실 때 어떻게 하십니까?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모두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기에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남들과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내게 맞게 달란트들을 주셨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비록 한 달란트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님 앞에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 달란트의 크기를 가지고 우리는 평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달란트의 크기가 아니라 최선의 정도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크기나 결과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지 아니하고 최선의 정도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항상 결과를 가지고 우리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네가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를 가지고 우리를 판단합니다. 너는 왜 그렇게 작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느냐고 우리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결과나 크기를 가지고 판단하신다면 그것은 사탄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결과를 가지고 낙심한다면 그것도 사탄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 크기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지 아니하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달란트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저 하늘의 큰 별이 아니라도 나는 작은 반딧불임을 믿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작지만 빛나는 반딧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질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보배를 가졌습니다. 이 보배는 우리의 빛 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작지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빛나는 반딧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작은 달란트만을 가져서 할 수 없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보배로우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기 비록 작은 한 달란트를 가지고도 빛나는 반딧불임을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반딧불은 어두움 속에 가장 밝게 빛납니다.
여러분 혹시 반딧불을 보셨습니까? 저는 몇 년 전에 제주열방대학에서 보았습니다. 밤에 열방대학을 나오면 반딧불이 있었습니다. 반딧불은 언제 볼 수 있습니까? 어두울 때 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5:14).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빛나는 반딧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빛나는 작은 반딧불이라면 언제 우리가 가장 밝게 빛날 수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어두운 밤에 우리는 가장 밝게 빛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생의 어두운 밤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4: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여러분도 날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인생에 어두운 밤에 오히려 더 환하게 빛나는 반딧불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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