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용서의 절박성(눅17:3-10)

by 금빛돌 2025. 3. 14.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제자들의 생각이 어떠했겠습니까?

한번 용서해 주는 것도 어려운데 하루에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참으로 지키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용서를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정도로 용서하려면 믿음이 더 커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절에 예수님에게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다음에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하는 것이 더 큰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용서는 믿음이 커지 않고 작아도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적은 믿음을 가지고도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 다음에 예수님의 비유가 나옵니다.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여기서 핵심되는 구절은 10“10.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용서는 믿음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누구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용서에 관한 말씀을 하시다가 주인과 종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또 용서는 순종의 문제입니다.

왜 우리가 순종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와서 내게 회개하노라고 하면 무조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용서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 가운데 용서하는 감정이 있어야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코리덴붐 여사가 있습니다. 나치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2차대전이 끝난 후에 그래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강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강연이 끝이나고 악수를 하는데 줄 끝에 그를 고문했던 나치가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했는데, 도무지 사랑하고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사랑하고 용서하는 감정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번 주 큐티에도 예수님은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고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용서에는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용서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용서할 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우리가 용서가 되지 않겠습니까? 순종하면 되는데 왜 되지 않는 줄 아십니까?

절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저 같은 경우에는 설교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만일 제 마음 가운데 어느 누구라고 마음으로도 용서해 주지 않으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설교준비가 되지 않습니다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용서하는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배에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직 나이아가라 폭포가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으니 계속해서 싸웁니다. 그러다가 10미터 앞에 옵니다. 5미터 앞에 옵니다. 이제 계속해서 싸우면 두 사람 모두 폭포에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1미터 앞에서 서로 용서하고 같이 배를 저어서 나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용서해야 합니까?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박하기 때문이 용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유언으로 이렇게 남겼다고 합니다. 내 장례식 때 참석하지 못할 사람명단을 주면서 절대 이 사람들은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목사님 대전에서 큰 교회를 담임하셨지만 과연 주님 앞에 섰을 때 어떤 말씀을 들을지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용서하지 않으면 심판 때에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유품으로 일기장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 일기장을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일기장입니다. 그런데 그 자녀가 그 일기장을 보고 정말 놀랐다고 합니다그 일기장에는 평생 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용서의 내용으로 가득했다고 합니다그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남겨주었습니다. 그것은 용서였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