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사람들은 안정을 추구하겠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삶을 추구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새로운 삶보다는 안정을 추구합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새로운 삶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경험들 때문입니다. 새로운 삶을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고난들이 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정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이 없는 안정된 삶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를 보면 야베스는 더 이상 고통이 없는 안정된 삶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안정을 뛰어넘는 삶을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이 사건 앞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만 함께 하시면 먹는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때 제자들도 어떠했겠습니까? 제자들도 그 자리를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도 떡을 떼어주는데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입장에서도 그 자리를 떠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지금 제자들에게는 남자면 5천명이니까 모두 합하면 수만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려 삼으려 합니다. 먹을 것도 넉넉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자리는 인간적으로 너무나 안정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곳을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즉시로 라고 합니다. 즉시로라는 것은 예수님은 한순간 그 곳에 머물기를 원치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또 “제촉하사” 라고 하는 것은 제자들은 가기 싫은데 예수님께서 억지로 떠나기를 제촉하고 계십니다.
또 무리를 보내는 동안이라고 하는데, 지금 무리들도 그곳을 떠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무리를 떠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억지로 무리들과 제자들을 분리시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떠나보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떠나보내는 동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억지로 재촉하면서 그 곳을 떠나게 하십니까?
그 이유는 안정을 넘어 사명의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안정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안정이 되면 사람들은 항상 교만하게 쉽습니다.
다윗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30:6.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 7.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은혜)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은혜를 거두어가시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표준새번역).
인간이란 항상 형통하면 교만합니다. 편안하면 교만합니다. 이것은 마치 공식과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교만입니까? “내게 무엇이 있으니, 나는 이제 이것 때문에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다윗도 결국 형통할 때, 편안할 때 이 교만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교만해지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제일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제일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잘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잘 한다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나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자를 높여주시고, 교만한자를 대적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에게 은혜를 거두어가신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교회가 항상 평안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안정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가 아무 일이 없이 무조건 평안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안정이 되면 문제가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정을 넘어서 사명의 자리로 나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정된 자리에 머물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즉시 재촉하사 그곳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어떤 사명이 있었습니까?
본문 34-36절을 “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6.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고 합니다.
건너편 게네사렛 땅에 가니까 그곳 사람들이 모든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병에서 나음을 얻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에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안정된 자리를 떠나게 하신 이유는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단순히 이 교회에서 평안만 누리고 안정만을 누리기 위함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어떤 사명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이 땅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안정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지 마시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더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주도 후배 목사님들이 찾아왔는데, 저를 보고 ‘많이 안정이 된 것 같습니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 나에게 안정이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안정보다 사명이 중요합니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도 안정을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는데도 고난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여기서 ”바람이 거스르므로“라는 말은 지금 제자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로 바람이 불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안정을 넘어서 사명의 자리로 가는데, 순풍이 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역풍이 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람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역풍을 불게 하십니까? 그 이유는 앞으로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할 때 당할 수 있는 역풍을 미리 맛보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안정을 넘어 사명의 길을 가려고 해도 반드시 역풍이 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과 같은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절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풍랑이는 바다에게 고난을 당할 때 산에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뭍으로 내려오셔서 그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러시다가 본문에 보면 밤 사경에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면서 유령이라고 무서워 소리를 지릅니다(26).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안심하라는 것은 어떤 풍랑이 일어나도 라도 네 마음을 붙잡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풍랑이 일어나도 절대 너의 마음은 흔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그 어떤 풍랑이 일어나도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풍랑 가운데서 마음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절대 마음이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풍랑이는 바다 가운데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안심하라 나니” 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나라고 하는 표현은 하나님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우리가 풍랑 가운데도 안심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풍랑과 바람도 잠잠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어떤 풍랑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풍랑을 능히 잠잠하게 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다른 복음서에 없는 말씀이 나옵니다.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여러분 역사상 예수님과 같이 물위를 걸었던 사람은 베드로 밖에 없습니다.
왜 제자들은 베드로와 같이 물 위를 걷는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까?
물 위를 걷는 것보다 배에 있는 것이 더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단순히 안정만을 추구하는 제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씀을 의지해서 안정된 배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걷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입니다. 아마 베드로의 삶 가운데서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안정을 넘어서는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일 베드로가 단순히 물 위로 걸어갔다면 베드로는 정말 무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의지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했을 때 베드로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한 해 동안 큐티의 생활화, 전도의 생활화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교회당 공사만 아니라 주께서 날마다 믿는 자를 더하여 주시는 교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무모할 수 있습니다. 물 위는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안정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의지하면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은 기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이라도 우리가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상황만 보면 다시 물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30절을 보시면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신앙생활을 올라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내려가기는 너무 쉽니다. 우리가 말씀만을 의지했을 때는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이라도 상황만을 보면 우리도 당장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물속에 빠지면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침체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즉시로 소리 질러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얼마든지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때 절대 그 곳에 머물러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즉시로 소리질러 주님 나를 이 물속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예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예수님께서 소리질러 간구하면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예수님을 우리 배에 태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힘으로 배를 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배에 예수님을 모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모든 풍랑을 잠잠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에게 불어왔던 역풍이 순풍으로 바뀌어 우리를 사명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정을 넘어 사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동부제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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