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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벧전1:13-25)

by 금빛돌 2025. 2. 28.

베드로전서는 초대교회 때 고난 때문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1절에서 흩어진 나그네란 고난 때문에 고향을 떠나서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고난가운데 고향을 떠나서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의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때가 ad64년인데, 이때는 로마의 황제 네로로 인한 큰 박해가 있기 직전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는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후서는 고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쓴 서신입니다.

그러면 사도 베드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첫째,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고난 가운데서 은혜를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고난 가운데서도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첫째,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고난가운데도 기뻐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3절에 보시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고난 가운데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베드로가 하나님 아버지께 찬송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에 보면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을 받아 정처 없이 나그네와 같이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습니다. 그 산 소망이 무엇입니까? 4절에 보시면 우리에게는 썩지 아니하고 더럽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우리는 너무도 자주 이 땅만이 우리의 소망인 것처럼 하면서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가 바라던 소망이 끊어지면 마치 이 세상이 끝이 난 것처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저 영원한 천국의 산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만이 아닙니다.

5절을 보시면 말세에 나타나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라는 것은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이란 우리가 천국을 가는데,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게 갈 때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벧전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당하지만 잠깐 근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이라는 말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와 비교할 때 이 땅의 고난은 잠깐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이 땅에서의 고난도 잠깐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우리에게 영원한 고난을 허락하지 아니하십니다.

잠깐의 고난 뒤에서 반드시 큰 기쁨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이 고난도 속히 지나가리라하시고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고난 뒤에 반드시 축복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있기 전에 항상 극심한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오히려 크게 기뻐하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6절에 보시면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뻐한다는 동사는 친한 친구를 만나듯이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한다는 말입니다(아갈리아스데).

그러면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크게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보다 더 귀하게 연단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7절에 보시면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그 작은 믿음도 귀하게 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에는 많은 불순물이 썩여 있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예수님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시험은 이 모든 불순물들 다 제거시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정금과 같은 순수한 믿음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박국처럼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어도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하고 기뻐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이 있어도 크게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가운데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둘째는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7절 보시면 우리가 믿음의 시험을 잘 이겨나가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 칭찬이 있습니다. 또 믿음의 시험을 잘 이겨나간 사람에게 더 큰 영광과 상급이 있습니다. 또 마지막에 우리가 믿음의 시험을 받은 만큼 예수님은 우리를 더 존귀하게 여겨주십니다.

그래서 시험을 잘 이기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 더 큰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상급이 있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가운데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셋째는, 시험은 예수님을 더 믿고 사랑하게 하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벧전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세상을 의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시험은 우리로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시험은 우리로 이제 더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게 만듭니다. 또한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더 예수님만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믿음의 시험이 있습니까? 그러면 더 주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더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것만 아닙니다. 우리는 시험가운데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로 말미암아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험 가운데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시험 가운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그런 큰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들도 시험 가운데서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어떤 시험 가운데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찬송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사도 베드로는 고난 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 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두번째는, 고난 가운데 문제의 해결보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이 베드로전서는 장차 있을 네로황제와 박해를 예상하고 쓴 서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는 교회를 핍박하는 그 네로황제를 물리쳐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베드로전서를 보면 초대교회 때 교회를 다니는 종들이 주인에게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 주인들을 물리쳐 주실 것을 기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고난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보면서 그 고난을 일으키는 문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도리어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그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크고 작은 고난이 있습니까? 그러면 내 심령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해 채워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고난을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고난과 시험의 산봉우리를 없애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그 고난의 시험의 산봉우리를 넘어설 수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3절 보면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고 합니다.

먼저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란 먼저 재림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다아포칼립세이라는 말로서 계시하신다, 나타내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재림 때 우리에게 자신을 완전히 보여주시지만, 또한 지금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계시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채찍과 침 밷음을 맞으시되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고 침묵하신 예수님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또 채찍에 맞으시면서 십자가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또 채찍에 맞으시면서 까지 그를 부인했던 베드로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신 예수님을 바라뵈기 바랍니다.

/십자가상에서도 그를 죽이려는 자를 저주하지 아니하시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고 증오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다가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를 바라보는 삶만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래서 벧전2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벧전2:19. (예수님처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은혜로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예수님처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은혜로우니라)

여기서 아름다우니를 밑에 보면 은혜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고난가운데 은혜가 풍성한 삶을 사는 것입니까?

예수님처럼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부당하게 대하고 고난을 주어도 슬픔을 참고 또 참는 것이 은혜로운 삶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처럼 우리가 죄가 있어서 고난이 아니라 사랑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는 것이 은혜로운 삶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시고, 또 예수님처럼 살아가심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이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라고 하는데, 너희에게 가져다주실이라는 말은 현재 가운데 계속 가져다주시는 은혜라는 말입니다(현재분사). 우리는 물 한 컵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만을 마시는 생활을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샘솟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계속해서 풍성히 마시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온전히은혜를 바랄지어다고 합니다. “온전히란 끝까지란 말입니다. 야곱은 두려움이라는 얍복강이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로 보일 때 까지 끝까지 기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놓인 고난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 크게 보일 때까지 기도해야합니다.

/또 이런 은혜가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매사에 절제하고 근신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러니까 고난의 문제에 메이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에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는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일을 절제하고 근신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떤 시험과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고난을 이기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사도 베드로는 는 고난 가운데서도 어떻게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세 번째, 고난 가운데서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런데 왜 사도베드로는 고난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거룩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거룩하라는 말을 좀 더 쉽게 말씀을 드리면 그 어떤 시험과 고난가운데서 변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이 쉽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하지 말라는 의미로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과 시험이 있을 때 제일 위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변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시험과 고난이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되기가 제일 쉽습니까? 뜨거웠던 신앙이 낙심하여 아주 냉냉하게 되기가 쉽니다. 그래서 한 때는 뜨겁게 기도를 했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도 뜨겁게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험과 고난이 있을 때 그 뜨거웠던 신앙이 급격하게 식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본받아서 온도계와 같이 변하는 삶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시험 가운데서 내가 변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도리어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온도조절기의 삶이라고 합니다. 온도기는 상황에서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온도조절기는 주위에 차가우면 온도를 올려줍니다. 반대로 온도조절기는 주위가 너무 뜨거우면 식혀줍니다. 그래서 온도조절기는 그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일정한 온도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온도조절기의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밷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고난과 시험의 상황에 있을 때 우리는 주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어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힘들고 어려운 때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식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식어진 가운데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의 신앙이 식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절대 식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위의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다 할지라도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절대 식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신앙이 식어져 있을 때 나 혼자만이라도 뜨거워서 신앙이 식어져 있는 사람들의 신앙을 뜨겁게 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모두가 사랑이 식어져 있을 때 나 혼자만이라도 형제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형제들의 식어진 사랑을 올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온도계가 아니라 온도조절기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온도계와 온도조절기의 차이는 외부의 관입니다, 온도기는 외부로 연결되는 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기는 외부로 연결된 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안이 아니라 외부에서 연결된 관으로 공급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에 연결되어 있을 때 상황에 따라서 변하지 않고 도리어 상황을 변화시키는 온도조절기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십자가의 피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구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우리가 구속함을 받은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속함이라는 말은 값을 지불해서 노예 된 상태에서 구출함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값을 지불해서 구출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사탄의 그 어떤 권세도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낙심을 주고 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패배감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탄은 우리에게 항상 정죄감을 주고 있습니다. “너는 죄인이야 너는 할 수 없어 너는 실패자야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탄으로 말미암아 낙심하여 우리의 믿음이 식어져 있을 때, 예수그리스도의 그 보배로운 피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합니다. “사탄아 나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다. 사탄아 나에게는 예수님의 피가 있다. 나는 예수님의 피로 얼마든지 너를 얼마든지 길수 있다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잠을 자기 전에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아무리 힘들어 어려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힘이 생깁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에서 우리는 날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바라볼 때 절대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로 하여금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을 다시 새롭게 해 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이 식어져 있고, 사랑이 식어져 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밤낮으로 묵상함으로 날마다 새로운 사랑의 힘을 공급받으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벧전1: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저는 하나님께 나의 인간적인 것에 대한에 믿음과 소망을 빼앗아 가신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금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게 하시고 소망할 수 없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의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믿음과 소망은 사라졌어도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생명의 하나님과 연결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떤 절망과 낙심과 좌절에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넘어지지 않고 날마다 일어설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여러분 왜 우리의 신앙이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변하는 온도계와 같은 신앙인 줄 아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의 감정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그 신앙의 감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 어떤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도리어 변화시키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원히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시험으로 인해서 낙심하여 쓰러져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얼마든지 날마다 일어설 수 있눈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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