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창조적 사랑으로 살아갑시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한해를 어떻게 시작해야겠습니까? 우리가 새해가 되었으니 인간적 사랑으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 사랑은 조건적 사랑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포기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찾지 아니하시고, 창조해 내가신다” 고 했습니다. “반면 인간의 사랑은 사랑의 대상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루터)“고 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인간적인 사랑으로 시작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곧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해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창조적 신앙으로 살아갑시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제일 먼저 펼치면 어떤 말씀이 나옵니까?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또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도 제일 먼저 나오는 신앙고백이 어떤 것입니까?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창조란 어떤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먼저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세상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1절의 내용입니다. 어떤 분들은 1장 1절을 단순히 창조의 서론으로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창1장 1절을 첫 번째 창조로 볼 수 있습니다. 그 근거는 1장 2절에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 무엇을 만드셨습니까? 처음 창조하신 세계의 모습이 1장 2절에 있습니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창조란 흑암이고, 혼돈이고, 공허한 세상을 새롭게 만드시는 뜻입니다.
그래서 창1:2절에 나타난 처음 창조와 대조적으로 새롭게 만드시는 창조의 사역이 창1장 3절부터 나옵니다.
창1장 2절 | 흑암 | 혼돈 | 공허 |
창1장3절-31 | 빛(첫째 날) | 질서(둘째-셋째 날) | 충만(넷째-여섯째 날) |
이와 같이 무엇이 창조입니까?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창조입니다(창1:1).
또 흑암 가운데 빛을 만드신 것이 창조입니다(창1:3).
혼돈 가운데 질서를 만드시는 것이 창조입니다(창1:6-19).
또 공허 가운데서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 창조입니다(창1:.20-31)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믿으신다면 먼저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창조의 신앙은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은 많은 하나님의 자녀가 있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11장 30절에 “창11:30.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왜 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계획하시고, 하필이면 불임여성인 아내를 두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의 신앙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래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 통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창17장 1절에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롬4장 17절에 “롬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아브라함)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무)을 있는 것(유)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일이 지난 과거의 한 번만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일을 하고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15절에서 “사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창조하시는 일을 새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창조의)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어떤 새 일을 행하겠다고 하십니까? 광야에서 길을 내며 사막에서 강을 내는 일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들짐승 타조 승냥이는 동물들 중에서 전혀 길들일 수 없는 짐승들입니다. 그런데 전혀 길들일 수 없는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그들로 하나님을 존경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또 그동안 고난의 물만 마시던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축복의 강물을 마시게 하는 일입니다. 또 무엇보다 “우리는 안 된다 우리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우리를 변화시켜서 우리를 향해서는 절망하지만 하나님을 향해서는 무한 신뢰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던 우리를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즉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창조의 일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진정으로 전능하사 천지를 유에서 무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내 삶 가운데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새 일을 오늘도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철저히 무가 되는 살을 살아야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사역을 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을 철저히 무가 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왜 하나님은 이렇게 내 삶을 이토록 짓밟으십니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하고 하시고 왜 내 인생을 무로 만드십니까? 하나님은 내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는데 왜 모든 것이 안 되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신다고 했는데, 왜 지금까지 내 삶 가운데는 무수한 고난만 주십니까?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우리를 무로 만드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육신의 복만 주시는 하나님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다가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면 그때부터 하나님께 대하여 의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을 부인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45:7.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여러분 하나님은 빛만 창조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빛과 함께 어두움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만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난도 우리에게 창조하여 주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빛과 함께 어두움도, 평안과 함께 환난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환난과 고난의 풀무 가운데 철저히 무가 되게 하신 다음에 이제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 새롭게 창조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들의 삶에 환난을 주시고, 그 환난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신다고 느껴지십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철저히 무가 되게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더 철저히 절망하시기 바랍니다. 더 철저히 깨어지시기 바랍니다. 더 철저히 무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없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 인생이 무가 되셨다면, 그래서 여러분 자신과 인생에 대해서 절대 절망하셨다면, 이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절대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내 인생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완전한 절망에서 희망의 빛을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삶에 공허가운데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그 어떤 어두운 절망에서라도 희망의 빛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내 인생을 무로 만드신 후에 반드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내 인생을 철저히 다 공허하게 비우게 하신 후에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들로 충만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두 번째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사역을 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있는 안정된 자리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폴투니에르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책의 부제로 “인생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인생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와 친척집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안정된 삶의 자리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에 의해서 완전히 새로운 창조적인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조가 일어나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편안하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애굽이라는 보금자리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였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광야에서 만나를 경험하였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놀라운 창조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역사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가나안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모험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신1: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모험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모험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였던 것처럼 앞으로 가나안땅에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광야에서 내가 너희를 안은 것처럼 내가 너희를 안아서 가나안땅으로 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험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신1: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이 일이란 가나안에 들어가는 모험적인 삶을 살라고 하신 일입니다. 그 일에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모험하기를 싫어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 그 자리에서 40년 동안 고생만 하다가 한 사람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모험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한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항상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성향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험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또 실패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안정된 자리에서 안주하고 있어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고난이 있으면 그것을 겨우 이겨내는 방식으로만 살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우리에게 한걸음씩 더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것에도 도전하는 모험하는 인생과 신앙이 되리고 말씀하십니다. 역사를 잘 살펴보면 끊임없이 도전하고 모험하지 않는 나라나 단체는 결국 멸망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입니다. 폴 투니에르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모험하려는 본능을 선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모험은 인생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사항이자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올해도 큐티를 생활하려고 합니다. 또 전도도 생활화하려고 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계단 오르기가 힘이 들어서 엘리베이트 공사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리더가 준비가 되면 하반기에는 오후 시간을 소그룹 모임으로 하고, 각 교육기관 별 모임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출석 교인만큼 새로운 성도들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모험할 수 있는 인생과 신앙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창조적 신앙을 가졌다면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고려학원 이사장으로 선임되신 강영안교 수님이 이사장 취임식 때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남아공의 투투 대주교가 미국인들에게 한 연설을 인용하셨습니다. 어느 농부에게 놓아서 기르는 닭이 수백 마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어린 새끼 때부터 닭들과 같이 살아온 독수리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독수리는 당연히 닭처럼 행동했습니다. 닭과 같이 모이를 쪼아 먹고 모이를 두고 먼저 먹겠다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농부는 독수리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독수리를 손끝에 앉히고는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Your are an eagle. Fly, fly, fly to the end of the sky!(너는 독수리야. 날아가라, 날아가라, 하늘 끝까지 날아가라)" 그러면서 미국인들에게 투투 대주교는 "당신들은 독수리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우리 고신 사람들도 독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까? 마치 우리가 닭인 것처럼 그렇게 모이를 쪼아 먹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손이라 자처합니다.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우리는 자랑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런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저는 많은 닭 가운데 한 마리의 닭이 아니라 저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독수리이기를 소원합니다 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닭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마치 이 세상의 것들만을 쪼아 먹는 닭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는 닭이 아니라 독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옆에 분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당신은 닭이 아니라 독수리입니다”
이것이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된 상황에서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바벨론이 믿고 있던 우상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사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은 더 이상 내 인생의 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거나 더 이상 내 인생을 돌아보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더 이상 나의 간절하고 억울한 간구에 대해서 듣지 아니하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는 눈을 들어 누가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였나 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매주 신앙고백을 하듯이 정말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참으로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분은 능력이 한이 없으시고, 명철이 한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닭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독수리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날마다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닭이 아니라 독수리처럼 하늘을 향해서 날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힘들도 어렵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할지라도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날마다 영적으로 날아오르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창조의 신앙으로 과거에 메인 삶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과거의 노예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에 몇 십년 동안 그렇게 하려고 해봤어,,그런데 한 번도 안 되었어,,,,그러니 앞으로도 절대로 되지 않을 거야,,아마 그렇게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봐????? 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너희는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합니다.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정의 문제에 있어서, 교회에 대해서 과거의 노예로 살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과거에 잘 안 된 것이 있으니, 앞으로도 잘 안될 것이다 고 하는 것은 기독교 운명주의지 신앙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하나님을 바로 믿기만 하면 우리들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풍성하고, 새롭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든 실패의 과거를 주님의 십자가가 못박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또 그것을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리 속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절망적 형편에 처해있더라도 주님만을 바라고 의지할 때,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는 창조적 신앙으로 창조적인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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