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얼마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정말 아무 것도 없어도 날 구원해주신 것만 생각해도 감사하고 감격해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는 평생 이 구원의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11.그러므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새로운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게 이루어진 구원의 사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입니다.
엡 2장 전체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어떤 자들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구원받은 나는 이제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어떤 자였습니까?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또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허물과 죄 가운데서 살면서 이 세상의 풍조를 쫓고 공중 권세 잡은 마귀를 따라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 대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믿고 싶어서 믿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엡2장 8절에서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들은 이제 허물과 죄로 하나님을 대하여 죽은 자들이었지만 이제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엡2장 1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이제 살아났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데, 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옛날 집에는 부엌 위에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락방의 입구는 방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락방은 낮아서 사람이 완전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몸은 계단이 있는 방에 있는데, 머리는 다락방에 있습니다.
그때 누가 여러분에게 물어봅니다. 너 어디 있니 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합니까? 나 지금 다락방에 있어 라고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엡1장 23절에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은 이 땅에 있지만 머리이신 예수님이 하늘에 계시니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엡2: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우리 옛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새롭게 만드신 새로운 피조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이제는 더 이상 허물과 죄 가운데서 살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제 죄 짓는 것이 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편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미워하는 것이 편한 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편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구원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라 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그때에 너희가 이런 자들이었는데, 이제 구원받은 너희들은 이런 자들이 된 것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또 11절에서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어떤 자이었습니까?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우리는 원래 육체로 이방인이요 육체로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로부터 할례받지 못한 자라고 불리던 자들이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할례받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그들이 거룩하다고 하는 증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난지 8 일만에 할례를 받지 않는 이방인들은 모두 다 거룩한 못한 자들, 개와 같은 자로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로마서에 어떻게 말합니까? 육체에 행한 할례가 참된 할례가 아니라고 합니다. 참된 할례는 마음에 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롬2장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원래 할례라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신체의 한 끝 부분을 절단합니다. 이것은 원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한 부분을 절단함으로 그 사람이 세상의 정욕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구약시대에도 단순히 그 의식을 행함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10장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구약시대에도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고 합니다. 즉 신체의 한부분을 의식적으로 자른다고 해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정욕과 욕심을 잘라버려야 참된 할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우리 이방인들이 이런 육체의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를 거룩하지 못한 자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우리들은 어떤 자들이 되었습니까?
우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우리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입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래서 이제는 누가 참 할례당입니가? 유대인들이 아니라 우리가 참 할례당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었고, 또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는 외인었습니다.
여기서 약속의 언약들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어떤 언약들을 하셨습니까? 가장 대표적인 것인 창세기 17장 7절입니다.
창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 노릇해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삶에 주인 노릇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내가 너희들의 삶을 책임져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과 우리들에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그런 약속들이 우리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백성들이 받았던 언약의 축복들을 우리가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셔서 그들의 모든 삶의 주인이 되셔서 그들의 모든 삶을 책임져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들의 모든 삶의 주인이 되셔서 여러분들의 모든 삶을 책임져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소망도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도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왜 이 세상에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이 땅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 13절을 보겠습니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여기서는 우리가 누구와 멀리 있던 자들이었습니까?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멀리 있던 자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달려갈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도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은 그 전능하신 손으로 얼마든지 나를 따뜻하게 감사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갔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도 시편기자와 같이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참된 복임을 믿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시78:28).
또 14절-16을 읽어보겠습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3절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4-16까지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에 우리들이 서로 화평하게 되었고, 하나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둘로 하나를 만드사 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둘은 원래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또한 서로 떨어져 있는 우리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는 우리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로 만드셨습니까?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한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사이 원수 된 것-즉 중간에 막힌 담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이것은 15절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15절에 계명의 율법이라고 합니다.
즉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서로 갈라놓게 하고, 원수되게 하여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한 것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그것은 구원 얻는 조건으로서의 율법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원 얻는 조건으로서 율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적인 조항들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고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율법적인 조항들을 지키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구원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원 얻는 조건으로서 율법을 십자가로 폐하셨습니다. 구원 얻은 우리에게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조건으로서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이제 율법은 구원 얻는 조건으로서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율법적 규칙을 지키고, 또 어떤 사람은 못 지킵니다. 그러면 그 율법 때문에 구원 얻는 사람과 얻지 못하는 사람이 서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 얻는 조건으로서 율법은 우리 사이를 서로 갈라놓은 원수가 되고 담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구원 얻는 조건으로서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이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
//이제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이제 같은 성도들이고, 하나님나라의 같은 백성들이고,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한 가족이고, 한 몸입니다.
또 이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 이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늘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흘러넘치는 구원의 은혜의 감격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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