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7절에 보시면 예수님의 이런 고통스러운 광경을 보면서 많은 무리, 특히 예루살렘의 많은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28절에 나옵니다.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여기서 보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장차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멸망을 할 때 마리아라고 이름 하는 여인이 자신의 자녀를 요리해서 먹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ad70년경에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40년 뒤에 예루살렘은 로마 황제 티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래서 29절에 예루살렘의 멸망의 때에는 도리어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또 30절에 보면 그때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도리어 산이 우리 위에 무너져서 덮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특히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여기서 푸른 나무는 예수님 자신을 가립니다. 즉 푸른 나무와 같이 죄가 없으신 예수님 자신도 고난을 당하는데, 마른 나무와 같은 죄가 있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어찌 더 큰 고난을 당하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어떤 것입니까?
예루살렘 사람들이 장차 당할 고통이었습니다.
특히 다음세대들이 당할 고통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정말 울어야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음세대들의 신앙입니다.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가 되면 우리 자녀들의 세대가 과연 우리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우리가 울어야할 것은 다음세대들의 신앙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을 생각하면서 정말 울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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