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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마태복음

열매로 확인되는 구원(마7:15-23)

by 금빛돌 2024. 7. 31.

오늘 본문은 산상설교의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종말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종말의 날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내가 매일 주여 주여 했지 않았습니까? 주님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까지 쫓아내지 않았습니까?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하노라 불법을 행하는자들이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보고 주여 주여 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큰 권능을 행하는 이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까? 이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열심히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아니면 별로 열심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열심히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며, 나를 떠나라고 할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시고, 나를 떠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말씀은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겠습니까?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종말 때 나는 너를 모른다, 나를 떠나라고 하는 말씀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여 주여 하면서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믿는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이런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어리석은 다 섯처녀도 재림의 주님을 신랑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가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어떻게 됩니까?

25: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여기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말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그 뒤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마지막에 어떻게 됩니까?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여기서도 바깥 어두운 데는 내쫓으라는 말씀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또 그 뒤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염소 편에 속한 사람도 누구보다 열심히 재림의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주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림의 주님을 사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5: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 염소 편에 속한 사람들은 누구보다 주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어떻게 됩니까?

영벌에 들어갑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누구보다 나는 예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종말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겠습니까?

그러면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잘못된 말씀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믿더라도 행함이 더하여 져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까? 천주교처럼 믿음 더하기 행함으로 구원이 이루어집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이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음에 행함이 더해져야지만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단의 가르침입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우리의 행함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떤 말씀입니까?

우리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지식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또 단순히 교회를 오래 다니고, 교회 일에 열심히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교회에 오래 다니고, 또 열심히 교회일을 한다고 해도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다는 말은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내 마음에 모셔들인다는 말입니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또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 마음 가운데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단순히 내 마음의 한 구석에 모신다는 말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들인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혹시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닙니까?

그러면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내가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얻는 참된 믿음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요한복음에 보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단순히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지입니다.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인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내 마음의 주인의 자리에 예수님을 모시고, 또 내가 생명이신 주님 안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면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열심히 교회의 일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심지어 선지자 노릇을 하거나, 어떤 큰 능력을 행하는 것을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 것을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무엇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진정으로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계십니까?

또한 여러분은 진정으로 생명이신 주님 안에 접붙임하여 계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이것도 말로만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고 말하면 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한다면 그 증거로서 열매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앞을 보시기 바랍니다.

5: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그 열매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산상설교의 말씀입니다. 산상설교는 우리의 노력과 힘으로 지켜질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산상설교의 열매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매의 수가 아닙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열매의 수가 아니라 열매의 종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우리는 마음이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교만 할 수 없습니다. 온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 강팍할 수 없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원수조차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할 때도 외식하면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제하는 것은 남에게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우리는 절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남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티를 들보처럼 보고, 남의 들보를 티처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의 좁은 문, 좁을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열매들이 완벽하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온유하고 조금만 사랑하고, 조금만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열매의 크기가 아닙니다. 양이 아닙니다. 열매의 종류입니다. 아무리 작고 시퍼런 사과라도 사과는 분명 사과입니다. 그러나 사과를 닮은 아름답고 큰 사과대추라도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대추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부족하지만,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닮은 열매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재림의 주님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주위에 가난한 사람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면 우리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을 예수님처럼 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도 사람을 잠시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미워하는 마음을 오래 가지고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곧 화해를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것이 쉽습니까? 미워하는 것이 쉽습니까?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쉽고 편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면서 나는 왜 사랑의 열매가 부족할까?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단순히 여러분들의 힘과 노력과 행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행위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믿음으로 예수님안에 더 거할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 날마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고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의 열매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구원을 확인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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