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에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부정했습니다.
여러분 만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부정하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면 우리 죄를 대신 지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래서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19: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이 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입니다. 요즘으로 하면 금요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큰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꺾어 달라고 합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 당시에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십자가에서 두 손을 못으로 박습니다. 그리고 발은 서로 포개어 십자가에 못으로 박습니다. 이렇게 하면 피가 흐릅니다. 그러면 먼저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을 쉬기 위해서 머리를 들고 가슴을 위로 올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숨을 쉬기 위해서 머리를 들고 가슴을 위로 올리면 못 박힌 손과 발에 찢어지는 고통을 받습니다. 그래서 다시 머리를 숙이면 숨을 쉬지 못합니다.
숨을 쉬기 위해서 다리에 힘을 주고 머리를 들면 손과 발에 고통이 있습니다.
손과 발이 너무 아파서 머리를 숙이면 숨을 쉬지 못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이 다리를 꺾어 달라고 합니까? 다리를 꺾으면 몸을 위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숨을 쉬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질식사를 합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을 빨리 죽이기 위해서 다리를 꺾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빌라도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습니다. 그래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여 죽였습니다.
그리고 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군인들이 예수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으셨습니까?
요19장 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서 머리를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머리를 숙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숨을 쉬지 못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요10: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8. 이를(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3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그런데 왜 한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릅니까?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창으로 발을 찌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옆구리를 찌릅니까? 이것은 심장을 찌르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질식사를 하면 심장에서 물과 피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군인들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심장을 찔렀습니다.
당시에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에서 살려주면 그도 같이 십자가에 죽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옆구리를 통해서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러니까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3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물과 피를 흘리신 것을 직접 본 자가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증언이 참입니다. 그래서 너희로 예수님께서 정말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을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놀랍게도 성경의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3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유대인들과 빌라도는 예수님의 뼈를 꺾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는 그 뻐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는 성경을 응하게 함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민9:12. --그(유월절 어린 양의)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만이면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고 죽으신 것은 중요한 성경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했습니다(고전5:7).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죄가 다 사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날마다 담대히 나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짐으로 죽음의 사자가 우리를 지나가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계의 저주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 안에 있으면 모든 저주가 우리를 지나가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3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유대인과 빌라도는 예수님의 뼈를 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수님께서는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도 성경의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스가랴서 보면 “슥12:10--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장 7절을 보시면 “계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옆구리가 창으로 찔리신 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를 찌른 자들이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옆구리가 창으로 찔리시지만 장차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재림하셔서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 다시 예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1서 5장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일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여기서 보시면 예수님은 물과 피로 임하신 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만 아니라 물을 쏟아내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피곤함을 느끼고 계십니까? 영적인 갈급함을 느끼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밤새도록 예수님의 십자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목마른 우리 영혼의 생수와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피곤해도 십자가 앞에만 나가면 삶의 활력을 얻습니다. 지친 영혼이 새 힘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한 주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흐르는 생수의 강으로 영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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