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장면입니다. 마가복음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라고 고백한 후에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막10:45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에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창세기4장10에 보면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은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이 말씀에 보면 아벨의 피에도 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 아벨의 피의 소리는 억울하게 죽은 자의 소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단순한 사건으로만 보아서는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분명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패션 오브 크리이스트”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를 보고 화장실에 갔는데, 어떤 분이 옆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슨 영화가 이래,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마 그 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인 것 같았습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그 곳에 서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단순히 그 십자가의 사건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1)첫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섭고도 엄중한 하나님의 공의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공의가 없는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공의가 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옥도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전에 먼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절대 그냥 넘어가는 분이 아닙니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을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공의가 없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 “없는 것으로 하자, 한번 봐 줄게 ”라고 말씀하시면 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공의가 없이 사랑만 있는 분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을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예수님을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2)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또한 그 무서운 하나님의 공의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만 되신다고 한다면, 죄에 대한 모든 심판을 우리 인간들에게 돌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돌아갈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돌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심판을 자신의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에게 돌리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구에 가면 서문교회라고 있습니다. 그 교회에 이상민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대구에서 유명한 이성헌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중학교 때 이성헌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성헌 목사님의 아들 이상민 목사는 청년시절에 목사님의 골칫거리였습니다. 목사님의 아들이지만 매일 술친구들과 같이 놀러 다녔습니다. 심지어 그 교회 권사님의 집에 찾아가서 술값을 달라고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학교 앞에서는 친구들의 돈을 뜯어내는 그런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날도 술친구들이 상민이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상민이는 그 술친구들을 따라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 이성헌 목사님께서 “만일 네가 나가면 내가 너의 다리에 피가 나도록 때릴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상민이는 술친구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이성헌 목사님은 아들 상민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종아리를 걷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상민이의 종아리를 힘을 다해서 때렸습니다. 피가 튀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들 상민이의 다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의 다리를 때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다리를 때린 것입니다. 아들 상민은 그 아버지의 피를 보고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바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만일 아버지가 아들이 잘못한 것을 보고도 그냥 넘어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로서 공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또 만일 그 회초리를 아들에게 때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의 공의는 나타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다리를 때림으로 아버지의 공의를 나타내었고, 또 그 공의를 뛰어넘는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공의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제는 내가 무슨 죄를 지어도 괜찮다” 고 생각하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에 대해서는 어떻게든지 심판을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백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무서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가 생각이 났을 때 때 반드시 그 죄에 대해서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그 어떤 죄라도 사랑으로 용서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일1: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3)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로 갈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막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찢을 수 없는 10-15센티의 굉장히 두꺼운 휘장입니다. 이것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찢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10:1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기자는 그 자신이 아무리 율법대로 잘 살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피를 힘입지 않고는 성소에 들어갈 담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양심으로 볼 때는 도무지 하나님께 나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양심을 의지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의 양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네가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니, 그러니 너의 모든 죄를 완전히 다 씻고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우리가 양심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어지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려 하면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갈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양심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으로 보았을 때 도무지 하나님께 나갈 담력이 생기지 않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힘입어 날마다 뻔뻔스럽게 하나님께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4)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탄의 죽음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범죄 한 이후로 사탄은 이 땅에서 인간으로 죄를 짓게 합니다. 또 그 죄에 대한 값으로 사망을 우리에게 선물로 줍니다. 이것이 사탄이 이 땅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죄와 사망으로 이 땅에서 왕 노릇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에게는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탄의 가장 큰 공격 무기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사건입니다. 더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탄의 심장에 칼을 꽂으신 사건입니다. 심장에 칼이 꽂힌 사람은 이미 죽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죽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사탄의 운명이 이와 같습니다.
//사탄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심장에 칼이 꽂혔기에 이미 죽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아직도 역사하고 있는 것은 그가 완전히 죽을 날을 남겨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미 사탄의 권세는 패하여졌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미 죽었습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아합니다. 죽어가고 있는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낙심하라, 좌절하라, 실망하라, 죄를 지어라, 두려워하라, 더 이상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지 않는다, 너는 절대 안 된다, 희망이 없다”는 말을 말합니다. 이것은 죽어가고 있는 사탄의 소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탄의 죽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제절대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너는 낙심하지 말라, 좌절하지 말라, 실망하지 말라, 죄를 짓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니는 너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탄의 죽음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의 종노릇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을 쫓아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죽음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고후5장14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수님의 죽음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죽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교회가 멀어서 가까운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앞에는 희미하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드리기 전에 항상 “그 십자가에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묵상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묵상할 때마다 항상 제 마음 가운데 평안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에 대한 나의 죽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롬6:11에서는 “이와 같이 너희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 안에 세상에 대한 모든 욕망들의 죽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의 욕망)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죽었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의 옛 자아가 죽었음을 날마다 인정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6)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요12장 26절에 보면 “누구든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할 길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첫 말씀이 우리에게 “아버지여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23:34).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셨지만,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그를 죽인 바리새인들조차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너희가 죽더라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2)또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죄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만합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내 탓이라고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죄가 내 탓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모든 것을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기며 살라고 하십니다.
구상 시인의 “자수(自手)”라는 시가 있습니다.
“자수(구상)/그 어린애를 치어 죽인 운전수도 바로 저구요, 그 여인을 교살한 下手人(하수인)도 바로 저구요, 그 銀行(은행) 갱 逃走犯(도주범)도 바로 저구요, <2행 생략)>
실은 지금까지 迷宮(미궁)에 빠진 사건이란 사건의 正犯(정범)이야말로 바로 저올시다.
범행 동기요, 글쎄? 가난과 無知(무지)와 역사와 惡循還(악순환),
아니, 저의 안을 흐르는 카인의 피가 저런 죄를 저질렀다고나 할까요?
이제 기꺼이 포승을 받으며 조용히 絞首臺(교수대)에 오르렵니다.
최후에 할 말이 없느냐구요? 솔직히 말하면 죽는 이 순간에도 저는 최소한 4천만과 共犯(공범)이라는 이 느낌을 버리지 못해 안타까운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것이 다 내 탓이라”고 여기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삶입니다.
또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 자기가 지고 갈 십자가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어떤 분은 가정에서 남편이 자기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가정에서 자녀가 자기 십자가 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교회가 자기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어려운 사람과의 관계가 자기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경제적인 문제가 자기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자기 십자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질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구레네 시몬입니다.
막15:21에서“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라고
오늘 본문에서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런데 그 구레네 시몬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6:13을 보면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여기서 보면 구레네 시몬의 아들인 루포가 하나님의 특별히 택하심을 받은 사역자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가리켜 사도바울은 내 영적인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성경학자는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초대 안디옥교회 지도자 가운데 “니게르라 하는 시몬”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바로 구레네 시몬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시몬은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그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그의 자녀도 하나님 앞에서 훌륭한 영적인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구레네 시몬과 같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예수를 믿는 아내 때문에 처음에는 억지로 교회를 다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처음에는 억지로 지는 십자가로 느껴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모 때문에 억지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일을 하는 것도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진다 하더라도 기쁨으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억지라라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오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의 자녀들이 엄청난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십자가는 인간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회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탄의 죽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옛 자아의 죽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십자가는 영광에 이르는 길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억지라라도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더불어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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