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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말라기

말라기강해(1)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말1:1-5)

by 금빛돌 2023. 4. 21.

 

여러분 혹시 말라기가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통 말라기라고 하면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이기 때문에 말라기라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라기는 선지자의 이름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나의 사자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간 후 세 번의 포로귀환이 있었다. 1차 포로 귀환 때는 스룹바벨이 중심이었고, 2차 포로 귀환 때는 에스라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3차 포로 귀환 때는 느헤미야를 통한 성벽건설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그동안 느헤미야서를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말라기의 기록 시기는 3차 포로귀환 후 성전과 성벽이 다 재건된 후 느헤미야가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간 후 이스라엘은 다시 신앙이 헤이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포로 귀환 후 성전과 성벽이 다 재건이 되었고, 느헤미야를 통한 신앙의 부흥과 개혁이 있었지만 그들의 상황을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 민족이었고(페르시아의 총독이 통치), 그들의 개인적인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아습니다.

/학개 2장을 보면 성전의 기초가 놓이던 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축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성전을 짓기 전에는 곡식종자가 창고에 있었고,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이제 성전의 기초가 놓이던 날 그 날 부터 개인적인 살림살이가 나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2: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또 하나님께서 이방의 모든 세력을 다 무너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학개2:22.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강대국인 페르시아 총독이 지배하는 한 지방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그것이 12절에 기록이 되어 있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왜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기준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랑입니다. .

2절하반절과 3절 상반절을 보시면 “2-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가장 큰 근거는 형 에서를 버리고, 동생인 야곱을 선택하신 사랑입니다. 사실 인간적인 조건으로는 형 에서가 아버지가 받았던 구원의 축복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서를 버리시고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구워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에서를 버리시고 야곱을 사랑하여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특별히 로마서 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시는 그가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 아무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했습니다(9). 그리고 에서와 야곱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더라도 에서가 더 좋아보였습니다. 에서는 남자다웠고,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삭조차 에서가 구원의 축복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에서를 버리고(미워하고), 야곱만 사랑하셨습니까? 그것은 인간적으로는 조건으로는 야곱이 사랑받고, 선택받아 구원받을만한 아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야곱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인 이스라엘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계속해서 범죄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의 매로 치면서도 지금까지 보호하셔서 생존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서(에돔)은 어떠합니까?

에서의 후예인 에돔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3절과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에서(에돔)은 그들의 죄악대로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공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돔은 312b.c. 이후 나바트인에 의해 역사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택하신 백성이기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항상 육신적인 삶이 잘되고 못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개인적인 형편과 나라의 사정이 좋지 않은 현실을 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고, 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이나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기준과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우리도 우리의 육신적인 형편의 잘 됨에 두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의 육신적인 형편이 좋아지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과연 나를 사랑하시느가 하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육신적인 형편을 더 좋게 하십니다. 지금 성도님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의 육신적인 형편을 더 좋게 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지금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기준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기준을 단순히 우리의 육신적인 형편이 좋아지고 나빠짐에만 두면 우리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조금 좋아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지만, 내가 조금만 어려운 일을 당하면 금방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시 한번 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지금도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무엇때문입니까? 단순히 내 육신적인 형편이 더 좋아졌기때문입니까?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처럼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다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제일 중요한 근거는 우리를 만세 전부터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구원의 사랑이다. 그리고 우리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공의대로 갚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금까지 보호하신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만 사랑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육신적인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회에 나올 필요가 무엇입니까? 왜 자녀의 질병문제, 결혼 문제 취업문제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육신적인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로마서 8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래서 여러분 자녀문제를 위해서 얼마든지 기도하십시오, 경제적인 문제로 얼마든지 기도하십시오 내 육신적인 형편을 위해서 얼마든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때도 우리를 무엇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를 당장 들어주지 아니하신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당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신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아들을 내어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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