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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말라기

말라기 강해② 경외하게 하려 함이니라(말2:1-9)

by 금빛돌 2017. 3. 17.

1장에서 열심히 예배를 드리지만 부정한 예물을 드리는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를 번거럽고 귀찮은 것으로 여기는 제사장들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를 가볍게 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배를 드릴 바에는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10). 그리고 참된 예배를 회복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버리고 이방인들을 통해서 참된 예배가 회복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1:11). 이렇게 예배를 번거롭고 귀찮은 것으로 여기고 가볍게 여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경홀히 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큰 임금이시요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가 공경하고 경외하고 두려워해야할 분이십니다.

/이 말라기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자녀들에게 공부를 가르칩니까? 여러분 우리가 왜 이 교회에 왔습니까?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 우리가 왜 성경을 공부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만일 우리가 아무리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또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또 열심히 성경공부를 한다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은 더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레위(제사장의 직분을 맡은 지파)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생명과 평강의 약속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생명과 평강의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말라기 시대 때 예배를 담당했던 제사장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을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1절과 2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여기서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너희가 참된 예배를 회복하지 않으면 내가 성전 문을 닫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 문을 닫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너희의 예배와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이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그냥 형식적인 종교예식이 아닙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만 잘 드려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또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하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난 다음에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이여 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큰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여 이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서 그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성전 문을 받겠다는 말을 무슨 말입니까? 더 이상 너희의 예배와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정말 회개하고 또 회개해야합니다.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은 어떠했습니까?

너희의 예배와 기도를 이 성전에서 더 이상 들어주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당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는 당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절에 보시면 너희가 하나님은 온전히 경외하면 내가 생명과 평강을 복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끊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합니다. 여기서 그 제사장의 자손들을 꾸짖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그들의 생명보다 귀한 자녀들의 생명조차도 끊어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여기서 자손이란 말은 팔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팔로 하는 사역조차도 끊어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그리고 절기의 희생의 똥을 얼굴에 바를 것이라고 합니다. 제사 때 드리는 희생 제물의 똥을 모두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똥을 제사장들의 얼굴에 바른다는 것은 결국 제사장들을 희생제물의 똥과 같이 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시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신 목적도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평강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과 평강의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생명이란 우리가 육신적으로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영육 간에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도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원하고 계십니다. 구약시대의 평강이란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을 다 제거하신 평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을 제거하신 평강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신약시대 평강은 그 모든 환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김으로 누리는 마음의 평강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절망과 죽음이 가득 찬 세상입니다. 그리고 환난의 소문만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 주시는 참된 생명과 평강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1)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고 두려워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어떤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죄를 짓다가 나중에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처럼 현실가운데서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교만과 죄에 대해서 가만히 계시지 않고 심판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은밀하게 우리의 영혼에 내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영혼은 하나님께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그래서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처럼 하나님께서 그 어떤 말씀을 하셔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두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영혼의 심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의 심판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빼앗아 버리십니다. 4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고 두려워 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만을 두려워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더 두렵습니까? 아니면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더 두렵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죄에 대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때만 아니라, 없을 때도 죄 그 자체만을 두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죄라고 하는 것이 크고 거창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행동이, 말이 과연 하나님이 보실 때 기뻐하시는 일인가 하나님께 날마다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행하는 모든 일들이 죄입니다.

당장 그 죄에 대한 심판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그 일 자체를 죄로 여기고, 그 죄를 멀리하고, 그 죄를 두려워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이 무서워서 두려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존경하여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을 무서워합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김정은을 경외하는 지도자라고 말하지만. 마음으로 김정은을 절대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이 무서워서 두려워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너무 놀라워서 존경하여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때 무리들이 보고 어떻게 말합니까? 98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머리나 지식으로 아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난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존경함으로 경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그리고 그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났던 체험이 있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만났고, 그 체험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제 삶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사랑하고 계시며, 또 지금도 일하고 계시며 역사하고 계시며,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에 정말 하나님이 두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단순히 무서워서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무나 놀랍고 놀라워서 하나님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시고, 체험하시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존경함으로 두려워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1)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의 예배와 기도를 듣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 마음가운데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내게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그 말씀을 내 마음가운데 담아두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이 누구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 좋은 말씀만 하지 않습니다. 말라기와 같이 어떨 때는 우리에게 듣기 싫은 경고의 말씀을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이 말씀이 나를 살리고 축복하기 위한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중하게 생각함으로 그 말씀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내가 순종할 수 있으면 순종하고,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이론이고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은 인간적인 경험과 생각으로만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창세기2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기쁜 마음으로 온전히 즉시 순종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또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죄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향하여는 더 철저하게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관용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행동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죄까지 철저하게 살펴보아야합니다. 그래서 혹시 내 속에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미워하는 마음이 나 생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 때부터 철저하게 회개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죄에 대한 그물망을 넓히지 말고, 더 촘촘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각으로도 짓는 죄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죄에 대해서 더 촘촘하게 살아야하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야합니다. 죄에 대한 그물망을 촘촘하게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적용한다면, 바리새주의가 됩니다. 성경에서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죄에 그물망을 촘촘하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죄에 대해서 수십 가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데 적용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나 자신의 티는 들보처럼 보는 철저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지만 남의 들보는 티처럼 볼 수 있는 사랑과 관용이 있기를 바랍니다(.7:5).

3)또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라고 하니까,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삶이 아닙니다. 요한일서에서는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고 말합니다(1:8, 9). 그러니까 우리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먼저 우리 양심으로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또한 주위에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회개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그 죄를 자백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크기보다는 그 죄를 어떻게 철저히 회개하였는가를 먼저 보십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을 비교했을 때도 다윗이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 죄를 뉘우쳤을 뿐 철저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해서 철저히 회개하여 더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날마다 회개 하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또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날마다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1:7).

내가 어떤 뜻을 세웠다하더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날마다 하나님께 물어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야합니까? 왜 기도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참된 권위에 대해서 두려워할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맞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을 철저히 버려야합니다.

/또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의 권위에 대해서도 인정할 줄 알아야합니다. 사무엘하1장에서 사울 왕을 죽인 사람에 대해서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삼하1: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세 왕 이야기에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요압이 다윗에게 불만을 가지고 당신은 왜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그를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고 합니다. 그때 다윗은 내가 사울의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오히려 내가 그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나는 왕들을 미쳐 버리게 하는 그 길을 택하지 않겠소라고 말합니다. 또 여기서 권위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소위 말하는 목사의 권위 중직의 권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때 그 모든 직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권위를 인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면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4:19).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십니까? 그러면 사람에게서 오는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 본문 말 316-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말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을(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를 분별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말을 들으시고,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해 두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가 되면 언젠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기록하신 것을 기억하셨다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서 반드시 보상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특별한 소유물이란 세굴라는 말로서 하나님의 보물, 보배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중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더 보배롭게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주심으로, 사람들에게서도 보배롭고 존귀히 여김을 받으시기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보배롭고 존귀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세굴라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자신의 친 아들을 아낌과 같이 아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친아들과 예수님과 같이 친밀하게 대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감을 경험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말4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의로운 해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심령의 상처들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그리스도로 통하여 여러분들의 육신과 심령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현실적인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와 같이 기뻐 뛰는 자가 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언224절에서는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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