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가족들이 이제 애굽 땅으로 갔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가족들이 애굽에 오면 미리 있을 땅을 예비해두었습니다. 그곳이 고센 땅입니다. 고센 땅은 애굽의 동북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보면 변방입니다. 그러면 왜 요셉이 이 고센 땅을 자신들의 가족들이 있을 땅으로 택했겠습니까? 애굽은 종교가 다신교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신앙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애굽의 변방인 고센 땅을 선택했습니다. 또 이 고센 땅은 목초지입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목축업을 합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은 농업을 합니다. 또 애굽 사람들은 목축업을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고센 땅은 애굽 사람들과 직업사 별로 부딪힐 일이 없는 땅입니다. 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센 땅은 나중에 가나안 땅으로 가기에 제일 가까운 땅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가족들이 있을 땅으로 고센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고센 땅에 거주하려면 애굽 왕 바로의 허락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가족들이 바로를 만나면 바로에게 자신들이 목축업을 하기 때문에 고센 땅에 거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가족들이 바로를 만나기 전에 먼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창46: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의 가족들이 바로를 만나서 자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1절을 보시면 요셉이 바로에게 우리 가족들이 가나안 땅에서 와서 지금 고센 땅에 있습니다 고 합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요셉은 형들 중에서 다섯 명만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입니다. 왜 다섯 명인가 하면 5라는 숫자는 애굽 사람들이 좋아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냐민에게 형들보다 5배의 음식을 주었고(창43:34), 또 형들은 한 벌의 옷을 주는데, 베냐민은 다섯 벌의 옷을 주었습니다(창45:22). 또 애굽에 풍년이 들었을 때 곡식의 오분의 일을 거둡니다(창41:34). 그래서 바로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다섯 명의 형들을 바로에게 보입니다.
그러니까 바로가 형들에게 묻습니다.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이것은 요셉이 바로의 질문을 예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이야기한대로 우리들은 대대로 목축업을 하였고 우리는 목자들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4절에 보시면 요셉의 형들은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형들은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다고 합니다. 거류와 거주는 다릅니다. 형들은 이 곳에 영원히 거주할 땅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잠시 거류하고자 왔습니다 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바로는 형들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요셉에게 대답을 합니다(5). 바로는 요셉에게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라고 합니다(5). 그리고 형들 중에서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바로의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고 합니다(6). 그러니까 야곱의 가족들은 그들이 있을 땅만 얻은 것이 아니라 바로의 가축을 관리는 일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7절을 보시면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합니다.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보시면 야곱이 바로 앞에서 서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합니까?
야곱은 바로를 축복하는 일을 먼저 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바로는 야곱에게 네 나이가 얼마냐고 묻습니다(8).
그러니까 9절에서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합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내 인생은 나그네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그네 길 세월이 백삼십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에 비교하면 내 나이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바로에게 나는 그동안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험악하다는 원어로 “라아”라는 단어인데, “나쁘다” 는 말입니다. 이 말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거나 정신적 고통스럽거나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울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130년을 살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사실 야곱은 그동안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도 장자가 되고 싶어서 형의 발꿈치를 잡았지만, 결국 장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것 때문에 형에게 쫓겨서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살았습니다. 그곳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수고했지만 외삼촌으로부터 10번씩이나 속임을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라헬을 사랑해서 7년을 수고했지만, 그가 먼저 얻은 아내는 그가 사랑하지 않는 레아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밖에 없는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일도 겪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 르우벤이 자신의 첩을 범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가 제일 사랑하던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22년 동안 요셉이 죽은 줄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바로에게 자신은 그동안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바로를 계속해서 축복합니다.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은 바로를 처음 만났을 때도 바로를 축복하였고, 나올 때도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가족들이 거주할 애굽의 좋은 땅을 주는데 그곳을 라암셋이라고 합니다. 라암셋은 고센 땅으로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가 있을 때 부르던 이름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요셉은 17살까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고 살았습니다. 지금 야곱의 나이가 130살입니다. 야곱은 147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17년 동안 돌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셉은 노년의 야곱을 17년 동안 봉양하여 섬겼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잠시 머무르는 곳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나안 땅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애굽은 이 세상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애굽 즉 세상으로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이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이 세상은 우리가 잠시 머무르는 곳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이 바로에게 “창47:4하—이 곳(애굽/이 세상)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변방)에 살게 하소서”고 합니다.
여기서 거류하다는 말이 “잠시 머무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야곱도 바로에게 그가 이 세상에 살아왔던 시간들을 “내 나그네 길의 세월”라고 합니다. “나그네”라는 말도 “거류하다”는 말과 같은 말로서 “잠시 머무름”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그네의 길의 세월”이라는 말은 “잠시 머무르는 시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100년을 살더라도 이 세상은 잠시 머무르는 곳입니다.
또 100년을 살더라도 그 모든 시간들은 잠시 머무르는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헛되다 고 합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말은 바람 또는 입김이라는 말입니다. 또 안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바람을 잡을 수 있습니까? 공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치 바람과 같아서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습니다. 또 안개와 같습니다. 아침에 안개가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그 안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가 나면 안개는 금방 사라집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2:10-11을 읽어보겠습니다.
“전2:10 (내가 젊었을 때)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 그 후(인생의 말년에) 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솔로몬은 젊었을 때 그가 마음으로 원하던 모든 것들, 눈으로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말년에 돌아보니까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솔로몬은 모든 것을 다 가져보았지만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에는 해아래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말을 29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허무주의로 살라는 말씀입니까? 또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산속에서 무소유로 살라는 말씀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의 헛됨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재에 더 충실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9:7-10을 보시기 바랍니다.
전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전도서는 절대 허무주의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단순히 무소유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모든 것이 허무하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살라 고 하지 않습니다.
/내게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을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옷이 비싸고 좋은 옷이 아니더라도 깨끗하게 입고 살아가고,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희게 되어도 향 기름을 바르듯이 단정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우울해 하지 말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어도 현재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과 함께 즐겁게 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직장이 비록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고 만족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2장 2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2:24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현재) 자기 일에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일은 다시 없다. 내가보니, 이것 역시 하나님의 손이 정하신 대로다.(아가페쉬운성경)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머물 곳은 어떤 곳입니까? 고센 땅과 같이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세상의 변방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알아주는 곳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이 더 낫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이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더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어떻게 해서 400년 동안 신앙을 잘 지킬 수 있어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변방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잠시 머무를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하지 마시고, 고센 땅과 같이 언제든지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변방에서 살더라도 우리의 신앙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천국 본향을 바라보면서 항상 감사하시며 찬송하시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축복의 통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단순히 인사치레로 바로를 축복하지 않습니다. 바로를 처음 만났을 때도 바로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비록 내가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말해도 나올 때는 바로를 축복하고 나옵니다. 왜 야곱이 이렇게 바로를 두 번씩이나 축복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이렇게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이 야곱을 부르신 목적인 것을 야곱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창12장 2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까?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지금 그가 애굽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창12장 3절을 보시면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사람들)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야곱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야곱은 바로에게 땅을 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바로를 축복합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는 것은 어떤 뜻이 있습니까? 바로 왕이시여 비록 지금 내가 당신에게 땅과 곡식을 구하려 왔지만 그 모든 복은 사실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나왔습니다. 당신이 내게 복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당신이 복을 받은 것은 나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왕이시여 당신이 내게 땅을 주시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을 축복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아래에서 보면 흉년이 더 할수록 바로가 더 많은 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는 축복의 통로가 될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을 하는 것은 내가 당신보다 더 높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가 더 높습니까? 야곱이 더 높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바로가 더 높습니다. 바로는 당시 세계 최대 강대국의 왕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가나안 땅에서 족장입니다. 그리고 지금 야곱은 지금 바로에게 땅과 곡식을 구하러 왔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바로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히브리서 7장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히7: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에 보면 누가 더 높은 자입니까? 축복을 받는 자가 아니라 축복을 하는 자가 더 높은 자입니다. 이것이 대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평생을 복을 받으려고 살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복을 받으려 했습니다. 하나님과 싸워서라도 복을 받으려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축복을 받기 전에 먼저 축복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운데 누가 높은 자입니까? 축복을 받는 자가 아니라 축복을 하는 자가 높은 자입니다.
/그래서 벧전 3장 9절에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누구를 만나시든지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을 계속해서 받으시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우리가 험악한 세월을 살았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바로에게 그동안 살아왔던 삶인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말하는 것 때문에 위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도 험악한 세월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의 삶이 험악한 세월이었습니까?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면 내가 뜻했던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곱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내가 너와 함께 하였다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 삶은 내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여러분의 삶을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가 험한 세월을 살았지만 내 삶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삶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삶은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내 삶은 절대 불행하지 아닙니다. 내 삶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복된 삶입니다.
그래서 비록 험악한 인생을 살더라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서라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함으로 날마다 하늘나라를 경험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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