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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우영우에 열광 할까?

by 금빛돌 2022. 7. 19.

왜 우리는 우영우에 열광 할까?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유튜브에 짧게 올라온 것을 보다가 정식으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내용을 다 수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따뜻한 공감을 느낀다. 

 

그러면 왜 우리는 우영우에 열광할까? 

그 이유는 첫째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함 때문이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절대 상대방의 장애와 같은 약점을 넘어가지 않는다. 마치 정글과 같은 현실에서 우리가 장애와 같은 약점이 있을 때 먹잇감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대한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한다. 그리고 위장한다. 그러다보니 너무 피곤하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 때가 많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배우들은 그렇지 않다. 우영우의 약점을 가지고 물어뜯지 않는다. 또 이용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약함 속에 있는 강함을 발견한다. 또 약함을 도와준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현실가운데서 사람들에게 이런 따뜻한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영우에 열광한다.

둘째, 선악에 대한 대립이 없다. 우리 사회는 적폐논쟁이 치열하다. 적폐를 내걸고 나온 사람들조차도 적폐가 되고 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옳음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적폐로 몰아세운다.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숨고 싶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옳음의 시선에서 내가 적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누가 특별히 적폐의 대상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긴장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영우에 열광한다.

셋째, 희망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와 같은 약점들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내가 가진 약점들 때문에 희망을 가지지 못한다. 그런데 역시 드라마다. 드라마는 현실을 초월한다. 그래서 현실상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나도 비록 약점이 있지만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 같다.

그런데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내용들도 있다. 2화에서 기독교인이란 사회적 강자의 대변자로 나온다. 무엇보다 장애만 아니라 동성애도 장애와 같이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사회적 강자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 세상이 기독교인들을 보는 현실이니까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성애조차도 차별 없이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은 받아 들 일수 없다. 그것은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반성은  장애인과 같은 자들을 이렇게 따뜻한 시선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복음적 삶이 아닌가? 또 교회가 그런 모습을 세상에 보여줌으로 충격적 감동을 주어야하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의 기독교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살면 언제든지 이런 충격적 감동을 세상에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복음만이 사람의 약점에 대해서 차별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또 복음만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임을 고백하기에 내 의로움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적폐로 몰지 않기 때문이다. 또 복음만이 우리의 약함이 도리어 하나님 앞에서 희망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이 복음으로 열광하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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