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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에베소서

에베소서강해(15)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엡2:1-7)

by 금빛돌 2022. 6. 4.

제주도

여러분 풍성한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결핍한 것이 좋습니까?

당연히 풍성한 것이 좋습니다.

에베소서보면 계속해서 풍성한 것과 충만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여기서 보면 교회는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교회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충만이라는 말이 영적으로 풍성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교회가 예수님에게 베풀어주셨던 하나님의 그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또한 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교회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될 때 비로서 이 세상이 하니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은 결핍은 죄악입니다.

인간이 범죄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원래는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것으로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했기에 아내를 볼때 내 뼈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여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인간은 하나님의 충만한 것으로 충만하게 살지 않고, 자신의 제한된 자원으로 사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탕자와 같습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의지하고 순종함으로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았습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버지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15: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그런데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어떻게 말합니까?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는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악이 무엇입니까? 그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충만하심대로 살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거지 근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부족하고 결핍이 되면 그 부족한대로 그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무엇인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항상 있지만 결핍한 것이 문제입니다. 즉 충만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우리에게는 나름대로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랑이 항상 부족한데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충만이 무엇입니까?

여기에 컵이 있습니다. 컵 속에 물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충만입니까?

물이 100프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컵 속에 물이 계속해서 흘러넘치는 상태입니다.

///왜 여기서 흘러넘치는 것이 중요합니까?

만일 컵 속에 물이 흘러넘치게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빈 공간이 생깁니다.

그 컵 속의 빈 공간으로 우리의 죄악이 틈을 탑니다.

또 흘러넘치지 않으면 컵 속에 물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다고 했을 때도 만일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치게 충만하지 않으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또 만일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다고 했을 때도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게 충만하지 않으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특별히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그냥 사랑이 아니고 그 큰 사랑입니다.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또 그냥 은혜가 아니고 은혜의 지극히 풍성하심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고, 충만하신 분이시고, 흘러넘치는 분이십니다.

---7절에 보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게 풍성하고 충만하게 오는 여러세대 즉 사람들에게 나타나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적당하게 있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흘러넘치게 있어야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있는데, 적당하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데, 그것이 흘러넘치도록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지 않고 촐랑촐랑하게 있으니 어떻습니까?

조그마한 일이 있어도 금방 흥분합니다. 큰소리를 칩니다. 인간 냄새를 풍깁니다.

모든 일을 은혜와 사랑으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은혜가 흘러 넘치게 있지 못함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삶속에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흘러넘치게 누릴 수 있습니까? 이점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에게 문제의 원인을 두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충만하게 임하고, 나에게는 덜 충만하게 임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흘러넘치게 부어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흘러넘치게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흘러넘치도록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은혜를 받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 2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장에는 우리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21절에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음을 강조합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또 우리가 구원을 받기 전에는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였던 자였음을 강조합니다.

또 우리가 이 세상 풍조를 따라고 공중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영인 마귀를 따르던 자였음을 강조합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면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음을 강조합니다.

왜 엡 2장에서 우리가 죄인이었음을 강조합니까? 왜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음을 강조합니까? 왜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음을 강조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를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다는 것을 잊으며 살기 쉽기 때문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은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느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은 누구보다 하나님앞 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합니다. 은혜가 충만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나를 향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보다 내가 한 일들만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 놀라워가 아니라-----하니님 적어도 제가 이렇게 했는데 왜 내게 이런 복을 주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 공로주의에 빠집니다.

---이런 공로주의에 빠지면 그 사람에게는 전혀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가 잘나서 당연히 내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께 더 달라고 합니다.

또 이런 사람은 항상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하지 못하는가 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예수님당시에 예수님을 가장 괴롭혔던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나와도 형식적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니 전혀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참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날마다 하나님께 나가면 갈수록 실제 내 삶은 점점 더 깨끗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밝은 빛 앞으로 나가면 갈수록 내가 더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 이렇게 내가 하나님 앞에 더 큰 죄인임을 깨달을수록-어떻게 이런 나를 사랑하셨는가? 어떻게 이런 나에게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찬송가 305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래서 이제 내게 아무 것이 없어도 그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합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 풍성하게 흘러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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