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라고 하는 이유는 초대교회가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로 방언의 역사가 있었고, 또 병 고침의 역사가 있었고, 수천 명씩 구원받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역사로 물질적으로 유무상통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사람들조차도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는 성령 충만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죄를 소멸하시는 모습과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종종 성령하나님을 알라딘의 마술램프에서 나오는 지니 처럼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는 분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민감한 영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제일 먼저 일어났던 역사는 회개의 역사였습니다. 회개함으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초대교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행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그의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당시 초대교회 분위기였습니다.
행4장 32절에 보시면 “행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33절부터 보시면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초대교회 사람들이 자신의 밭과 집을 팔아 판값을 사도들 앞에 가져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모두 복음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때 어느 누가 소유를 다 팔라 고 한 적도 없습니다. 또 자신의 모든 재산을 교회에 바치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사도들의 앞에 내놓았습니까? 이 세상의 그 어떤 물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왜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았겠습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입니다. 앞에서 바나바도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도 바나바와 같이 사도들과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소유를 팔았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일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은혜가 없이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일의 댓가를 생각합니다. “내가 이 만큼 일했는데, 이런 댓가를 받아야한다. 내가 이런 일을 했으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은혜로 자신의 소유를 내놓지 않으니까 이제는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2절에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고 합니다.
아나니아부부가 자신의 모든 소유를 주님께 다 내놓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헌금은 절대 강요가 아닙니다. 내가 소유를 팔아서 모두 바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유를 팔아서 얼마는 남기고 사도들에게 내놓아도 됩니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속인 죄입니다. 정직하게 이것이 내 모든 소유가 아니라 소유의 일부입니다 고 하면 되는데, 이것이 나의 소유전부입니다 고 사람들을 속인 죄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자신이 누구보다 더 성령충만하고 헌신적인 사람인 것을 나타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사도베드로가 어떻게 말합니까?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사탄이 가득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탄이 가득하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과 대조가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바로 사탄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으로 충만한 사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속이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사람을 속인 것이 성령을 속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 성령을 속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속인 것이 성령님을 속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으로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것을 공동번역에서는 “4. 팔기 전에도 그 땅은 당신 것이었고 판 뒤에도 그 돈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오?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품었소? 당신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성령하나님은 심판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를 죽게 하십니다.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초대교회와 같이 앉은뱅이도 일어나게 해 주시고, 또 눈먼 자로 눈을 뜨게 해주시고, 모든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떤 역사도 일어나야합니까? 사람을 속이고 성령을 속인 자가 죽는 역사도 일어나야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초대교회와 같이 병이 낫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또 죄에 대해서 심판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두려움이 없이 살아가야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와 같이 기적은 역사가 없어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합니다. 또 초대교회와 같은 이런 심판의 역사가 없어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합니다.
성령의 역사 뒤에는 항상 큰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입니다. 무엇보다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사람을 속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보다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고백합니까?
시51: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를 받지 아니하십니다. 형식적인 헌신도 받지 않습니다. 은혜가 없이 인간적인 댓가를 바라는 봉사를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삶 가운데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의 제사입니다. 회개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을 속이고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이 당장 목숨을 거두어가는 것도 있지만, 은혜를 거두어가는 것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죄대로 그대로 내어 버려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당장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은 지금도 살펴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고 합니다.
여러분 성령충만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심을 죄가 소멸이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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