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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사도행전

사도행전강해(15)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노라(행4:13-31)

by 금빛돌 2022. 5. 27.

장미 공원(중랑구)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낫게 한 일로 베드로와 요한은 옥에 갇혔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그 사람을 낫게 한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말씀을 전한 것 때문에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동문서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행했느냐 하지 말고 너희가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질문하면 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을 보고 그들은 놀랍니다.

그래서 13절을 보시면 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들의 말이 맞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부 출신들입니다. 학문에서도 뛰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겁이 많던 베드로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또 사도요한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요한은 우레의 아들로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우레는 천둥입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감정적이고 과격했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감정적이었던 요한은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변했습니까? 그것은 오직 성령체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하고 나니까 비겁함이 담대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무식함이 말씀의 풍성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성령체험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충만하게 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당시 종교인들이 아무리 제자들의 잘못을 추궁하려고 해도 잘못이 없습니다. 또 그들 곁에 병에서 나는 사람이 함께 서 있습니다. 그래서 14절에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15절에 “15. 명하여 (산헤드린)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라고 합니다. 더 이상 잡고 있을 수 없어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서로 의론하여 말합니다. 16절에서 18절에 보면 감옥에서 보내 줄 것이니 더 이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말합니까? 19절입니다.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너희들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아무리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해도 말씀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사도들이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까?

그 이유는 20절에 있습니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떤 새 신자가 코로나 때문에 너무 어렵다고 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타민 c를 고용량으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아십니까? 저는 몇 달 동안 비타민 c를 먹으면서 위장병이 나았고, 피곤 것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론적으로 비타민c박사님인 이왕재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고, 또 많은 의사와 약사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먹으면서 몸으로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직접 체험하고 나니까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왜 이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낫는 것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이 사람을 낫게 한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체험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심을 보고 듣고 체험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담대하게 말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21절에 “21.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들이 감옥에서 놓이게 되자 동료들에게 찾아갑니다.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사도들은 감옥에 있을 때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들에게 했던 말을 전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더 이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에 대한 경고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모든 자들에게 대한 경고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들이 너희들도 다 죽일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초대교회는 위기의 상황 가운데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리 높여 기도합니다.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이에게 기도합니다.

왜 이런 기도를 하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의 권세가 크다 하더라도 하나님보다 크지 않습니다.

또 그들을 위협하는 사탄의 권세가 크다 하더라도 하나님보다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시편 2편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고 합니다.

이것은 시편 2편에 있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지금 이 세상 열방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족속들이 헛된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열방과 족속들은 절대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와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항상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왕 헤롯과 로마의 총독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눅2312절에서 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예수님을 죽이는)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고 합니다.

또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정부를 대적하는 자들이었고, 사두개인들은 그들과 하나가 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는 데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7절애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대적하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에 하나가 된 것은 그들의 뜻도 있지만 배후에 하나님의 뜻과 예정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8절에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죽였지만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합니다.

주님이여 이제도 저들이 우리를 위하고 있음을 살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가운데서 더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 때문에 감옥에 갔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입니다. 또 감옥에서 어떤 말을 들었습니까? 더 이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천지의 대 주제이신 주님이여 이 세상의 그 어떤 위협이 있어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30절입니다.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주님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이 낫는 기적이 있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병이 낫는 기적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병이 낫는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라 고했습니다. 그래서 병이 낫지 않아도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그 자체가 이미 기적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1절입니다.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빌다라고 하는 말은 부족하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빌어야합니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또 우리에게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가 부족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빌고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여기서 빌다는 말은 내가 부족함으로 하나님께 붙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부족하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붙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족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했을 때 땅이 진동하였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오순절에 임하였던 성령하나님이 또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도한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다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체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모두 성령충만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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