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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창세기

창세기강해(25)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창16장1-16)

by 금빛돌 2022. 1. 22.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도 신앙이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 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당장 그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자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나님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이 아니라 이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이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믿으니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에게 의문이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말씀은 믿겠는데 가나안땅에 대한 약속은 어떻게 믿을 수가 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의 횃불이 지나가는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대신하여 쪼갠 고기처럼 피흘려죽더라도 나는 네게 대한 이 말씀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나안땅을 차지하는 일정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네 자손이 애굽으로 갔다가 400년이 지난 후에 이 땅으로 돌아와 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만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은 환상을 보기도 했습니다. 또 전쟁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사래는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환상도 보지 못했습니다. 체험도 못했습니다.

단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남편이 성경은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여보 하나님께서 내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모든 일이 잘 될거야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말합니다 그런데 나는 뭐야 당신은 말씀을 통해서 확신을 가졌지만 나는 아직 그런 확신이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사래가 이와 같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많은 자손을 이루려면 아브라함 혼자 하지 못합니다. 사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래는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남편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그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다고 되지 않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들어도 그 말씀이 내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같은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래가 그와 같습니다. 사래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1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1.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갈대아우르에서 나올 때부터 자녀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따라서 가나안땅에 와서 10년을 기다렸는데도 출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여종이 있었습니다. 그 여종은 애굽사람이고 하갈이었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많은 재물과 노예를 얻었는데 그때 얻은 종이었습니다(성구).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사래는 10년을 기다려도 자녀가 없자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과연 이 말이 맞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래의 출산을 허락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출산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래는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고 합니다.

내 생애에 나를 통해 자녀를 보는 것은 끝났다 그러니 아브라함에게 내 여종에게 들어가 자녀를 낳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고대근동 당시의 풍습이었습니다. 본처가 자녀를 낳지 못하면 여종을 통해서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녀가 내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사래는 많은 자녀가 있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녀를 낳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지 방법은 어떤 것이든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5장에서 하나님께서 네 몸을 통해서 난 자를 통해서 많은 자녀를 주신다고 하셨기에 여종을 통해서 자녀를 낳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한 이유는 아브라함과 사래가 가나안땅에 온지 10년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절을 보이기 바랍니다.

3.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그래서 10년의 시간동안 아브라함과 사래가 너무 오래 기다렸기에 너무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여종을 통해서라도 자녀를 낳으려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4.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이제 갑과 을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래가 갑이었는데 하갈이 임신하자 하갈이 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갈은 주인 사래를 멸시합니다. 멸시한다는 것은 먼지처럼 가볍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래가 어떻게 말합니까?

5.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어떻게 말합니까?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그러니까 “6-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고 합니다.

하갈의 이름의 뜻이 도망하는 자인데 하갈이 사래에게서 도망합니다.

그러니까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13절에서 하갈은 내가 하나님을 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묻습니다.

8.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그러니까 또 여호와의 사자가 어떻게 말합니까?

9.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그리고 또 말씀합니다.

10.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통해서도 많은 자녀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11.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고통소리도 들으시고 이스마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여러분 이 이스마엘이 누구입니까? 지금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의 조상입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크게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말씀대로 들 나귀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들을 치고 또 이들은 자신의 모든 형제와 대항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이슬람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두 파로 나누어져서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슬람사람들은 그의 형제인 이삭의 후손들과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과 이삭이 15년만 더 참고 기다렸으면 지금의 중동전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래가 기다리지 못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결국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아닙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6.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왜 여기서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라고 합니까? 그이유가 창171절에 있습니다.

17:1.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라함이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3년 동안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기다리지 못한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형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무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서로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신앙의 최고의 정점은 기다림이라고 했습니다. 또 신앙은 기다림과의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기다림을 인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히1036절에서는 10:36.너희에게 인내(기다림)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기까지 25년을 기다려야했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후 왕이 되기까지 15년을 기다려야했습니다 하박국도 유다나라에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20년 이상 기다려야했습니다. 욥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야고보서에서 5:11.보라 인내하는 자(기다리는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기다림)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또 기다리는 자에게 기도의 응답을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401절에 40:1.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릴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모든 복과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다려야합니까?

1)조급함을 버려야합니다.

조급함은 사탄의 초청장입니다. 딤후 3장에 말세에 사람들은 조급하다고 합니다(딤후3:4). 조급하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급함을 버리기 위해 우리마음에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41절에서 4:1.내 의의 하나님이여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내 부르짖음을 들으소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그럽게 하셨사오니"너그럽게 하소서"라고 해야합니다또 그 다음에서도 “내게 은혜를 베푸사” 가 아니라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여기서 “나를 너그럽게 해 달라는 말은 내 마음에 여유를 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마음에 조급한 마음이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조급해서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 일을 당장 인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주여 내 마음에 여유를 주옵소서, 내 마음이 조급하지 않고 느긋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우리마음이 조급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아무리 여유를 가지려고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지금내 마음에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여유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울려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낙심하여 넘어져 있을 때 나를 일으켜주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려도 응답이 없을 때 나를 지치지 않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응답이 없더라도 나를 여유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오직 믿음으로 기다려야합니다.

여러분 기독교적 기다림과 유교식 기다림과 불교식 기다림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유교식 기다림은 이빨을 깨물면서 참을 인자를 마음에 천번 만번 세기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 불교식 기다림은 아무 소망이 없이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적 기다림은 기쁨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401절에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카바인데, 이것은 아무 소망 없이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빨을 깨물고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기다림이란 어떤 일이 일이 이루질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기쁨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말하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앞으로 잘 될 것을 믿고 미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장차 모든 것을 이루실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말씀을 듣고 이루실 줄을 믿고 미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데 현실에서 정반대의 말이 들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셨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사래가 말합니다. 여보 우리가 10년이나 기다리지 않았어 그러니 우리는 안 돼 그러니 내 여종을 통해서 자녀를 낳자는 말이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5장에서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시러 가는 길에 어떤 말이 듣렸습니까?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이때 두려워하고 있는 야이로에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딸이 죽었다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또 여기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은 이중 명령으로 모두 현재진행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믿기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현실가운데서 죽음의 소식이 있어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지금까지 나를 향해 지니고 있었던 그 믿음을 현재가운데도 계속해서 지니고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또 이것은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5:36. 예수께서는 이 말(딸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시고 회당장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신앙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현실은 우리가 믿었던 것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때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런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는 성도님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불의한 현실이고 불신앙의 현실이지만, 현실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그 약속이 수년이 지나도 보이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오직 믿음으로 소망가운데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기다려야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이 이스마엘 자손들이 아랍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서 하갈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스마엘을 이 땅에 태어나지 않게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중동전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태어나게 하시고, 왜 그로 번성하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하갈의 고통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아니라 하더라도-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셨고--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그들을 긍휼이 여겨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하갈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하갈을 불쌍히 여겨주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택하신 백성이 아닌 자도 긍휼이 여겨주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에 대해서 더 긍휼히 여겨주지 아니하시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그냥 긍휼하심이 아니라긍휼이 풍성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4).

그래서 엡24절에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갈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하갈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더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고통소리와 신음소리를 반드시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있을 때 그들의 고통하며 신음하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했습니다--그래서 출225절에 보면 2: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돌보시고 기억하셨다는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의 고통소리를 들이시고, 단순히 그들을 생각만 하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서 기억하셨다는 말은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같이하시면서----------이제 그 고통의 현장에 하나님께서 직접 함께해주시겠다는 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원시켜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해주셔서------그들과 직접 함께 해 주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여러분들이 지금이 순간 다른 사람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까? 신음소리가 있습니까? 그때 여러분들은 무엇을 기억해야합니까? 저위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들의 그 고통을 들이시고, 같이 아파하시고, 괴로워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고통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나도 지금 너와 함께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해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머리털 끝 하나라도 다 세시는 분이십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조그마한 생각--고통--억울함도 다 감지하시는 분이십니다-----그 하나님께서 이 비천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조차도 들으시고 함께 아파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단순히 아파하시는 것만 아닙니다---그 고통의 현장에 하나님께서 친히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그냥 함께하시는 것만이 아닙니다----고통의 현장에 우리의 신음소리를 들이시고, 우리와 함께 하셔서 그 고통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고통하며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에게 태를 열어주셨습니다-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신음하며 고통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갈이 구원받지 않은 자라도 자녀를 위하여 고통하며 눈물 흘릴 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셨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녀를 위하여 고통하며 눈물로 기도할 때 더 긍휼히 여겨주시기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 현실은 하나님께서 당장 응답해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기다리시고 또 기다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신 것이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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