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는데,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믿음의 완성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육신의 복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드니까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애굽에서 바로에게 책망 듣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창13장에서 먼저 물질의 풍성함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셔도 땅 밟기를 하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를 택합니다. 그런데 롯은 하나님보다 육신의 복을 더 우선시했지만 결과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조카롯을 구하러 집에서 기르고 훈련한 사람 318명을 데리고 갑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큰 승리를 거두고 많은 승전물을 거둡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힘으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이 십일조를 바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승전물들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드립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이 세상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믿음에 있어서 처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복 때문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나중에 육신의 복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승리한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절대 완성품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미완성품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공사 중입니다. 우리는 모두 만들 가는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내 믿음이 부족하다고 절대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내 믿음이 이제 다 완성이 되었다고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항상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완성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도 어떻게 완성을 향해서 나갈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더 나갈 수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째,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가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해야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여기서 “이후에”란 아브라함이 세상 왕들과 싸움에서 승리한 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후에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 후에 라는 말입니다. 이후에 아브라함에게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교제만 할 때는 몰랐는데, 전쟁을 치러보니까 이 세상은 한 순간도 끊임없는 치열한 전쟁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자신의 힘으로 승리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북쪽의 그돌라오멜 왕을 이긴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는 아브라함이 그 왕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집에서 기르고 훈련한 사람이 있었지만 알고 보니 그들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자녀가 없습니다. 당시 자녀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시127:4). 그런데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무기가 될 만한 자녀가 한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브라함은 미래에 북방 왕이 다시 처 들어와 보복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큰 민족 많은 자손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한 자녀도 있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아브라함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 가운데서 이루어질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도 두려움 가운데 있으니까 2절과 3절에서 어떻게 말합니까?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라함은 두려움 가운데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없는 것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라고 합니다. 또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종이 엘리에셀을 자녀로 삼아서 상속자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나님께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두려움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보다 내게 지금 당장 주지 아니하신 것만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 지금 내게 이것도 없고 이것도 없습니다. 하면서 하나님 내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두려움이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네 방패란 앞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주셔서 그돌라오멜의 손에서 그를 지켜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싸워주심으로 아브라함에게 큰 상급 즉 승전물을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너의 방패였던 것처럼 현재에도 너의 방패고 미래에도 너의 방패가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과거에 너의 상급이었던 것처럼 현재에도 너의 상급이 되어주며, 미래에도 너의 상급이 되어주겠다는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방패가 되면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무엇에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까? 우리를 사탄의 정죄에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너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이때 누가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까? 성령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을 보혜사라고 했을 때 보혜사의 가장 중요한 뜻은 변호사라는 뜻은 변호사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끊임없이 우리를 정죄할 때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또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재앙에서 지금도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시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은 우리는 절대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재앙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와 손 방패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또 1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아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하나님은 두려워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종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종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되어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의 몸을 통해서 난 자가 상속자가 됨으로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 더 쉽겠습니까?
종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 더 쉽습니다. 또 지금 당장 시작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100세 때 또 불임여성인 사라를 통해서 난 이삭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려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앞으로 시간적으로 15년이 더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할 때 전혀 불가능한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십니까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무에서 유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간적인 힘으로는 한 자녀도 나올 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녀가 있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합니까?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기서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로마서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롬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무)을 있는 것(유)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자녀를 낳을수 없는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하늘의 별같이 많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믿음으로)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해서 나가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싸워주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세상과 사탄보다 문제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도 능히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하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한 걸을 더 나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가기 위해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지해야합니다.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또 이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2장과 13장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말합니까?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이것은 고대근동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 모습입니다. 고대근동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 먼저 짐승을 잡아서 죽여서 쪼갭니다. 그리고 약속의 두 당사자가 쪼갠 고기사이로 같이 지나갑니다.
이것은 만일 동등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서로에 대한 약속을 어기면 쪼갠 고기처럼 죽게 될 것이라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만일 주인과 종이 서로 약속을 하면 종이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가게 합니다. 그래서 만일 종이 약속을 어기면 종이 쪼갠 고기처럼 죽게 된다는 의식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어떤 관계입니까? 동등한 관계가 아니고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누가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가야합니까? 아브라함이 지나가야합니다.
그런데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주인과 종의 관계라면 아브라함이 지나가야하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횃불이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갑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종의 자리까지 내려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배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쪼갠 고기처럼 피 흘려 죽으시더라도 우리에게 대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완성을 향해서 나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열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의 열심이 아니라 나의 열심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헌신이 아니라 너를 향한 나의 헌신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 어디를 봐도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그 어디를 보더라도 나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저 사람은 보니까 잘되는데 왜 나를 하는 일마다 어렵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반드시 내가 네 삶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내가 절대 너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네가 낙심하여 쓰러질지라도 나는 너를 끝까지 붙들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죽기까지 너를 사랑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너의 믿음을 더 완성시켜 나가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어렵습니까? 정말 힘이 드십니다.
인생에 어려운 순간마다 주님 약속을 다시 마음속에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약속에 신실하신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함으로 여러분들의 믿음을 더 완성시켜 나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째,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가기 위해서 고난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다음에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애굽으로 갔다가 거기서 괴로움을 당하다가 400년 만에 다시 이 가나안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가나안땅을 주시려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이 가나안땅에서 아무 일없이 400년을 있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기근으로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거기서 한 두 해도 아니고 430년을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편안하게 있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다가 430년 만에 돌아오게 하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어떻게 보냈습니까? 그들은 430년 동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손에 잡히는 것도 없었습니다. 애굽에 있는 중간세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아버지 때 할아버지 때도 그들에게는 가나안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할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내 자녀와 손자 때에도 가나안땅을 차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430년의 끝에서는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자녀를 잃어버리는 극심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같은 고난을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약속하시고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그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키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고난가운데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키십니까? 출1장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출1:7. 이스라엘 자손은 (고난가운데)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늘의 별과 같은 자녀를 수많은 자녀를 언제 만들어 주십니까?
그것은 애굽에서 극심한 고난이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출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출1장 20을 절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출1:20. (고난이 더 심하면 심할수록)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고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이스라엘백성들로 더 번성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고난은 절대 우리로 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우리도 더 번성하게 하시고 우리로 더 강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난가운데 더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출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고난)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여러분 왜 오로지 기도입니까?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 한해도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 더 힘쓸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쓰기 많은 분들이 동참하셨습니다. 2월부터 70일 특새가 있습니다. 이 기간 중에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만 힘쓰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부르짖음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이때 어떻게 말씀 하고 있습니까?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ㅡ여기서 “기억하사” 란 잊어버리고 잊다가 기도할 때 기억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약속을 계속 기억하셨다가 부르짖을 때 기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430년 동안 한순간도 하나님의 약속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내 위에 아버지 할아버지 때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내 아들 손주 때까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약속이 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어주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고난이 있습니까? 고난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왜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우리로 죄 지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시면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고 하십니다.
/만일 가나안 땅에 있었으면 이스라엘백성은 가나안 사람들처럼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까? 우리로 죄 지을 틈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 고난은 하나님의 더 크신 능력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 최대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애굽보다 더 강하고 크신 필로 그들 물리치시고 이기셨습니다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그래서 여러분 고난 중에도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가운데서 한 순간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잊지 않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쇠는 더 연단을 받을수록 단단해지는 것처럼 믿음도 고난가운데서 더 단단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고난은 우리로 더 기도와 말씀에만 집중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해서 오로지 기도와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난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루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 나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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