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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창세기

창세기강해(24)전쟁 같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창14:1-24)

by 금빛돌 2022. 1. 8.

창14장은 아브라함이 롯을 떠나보낸 후 롯이 있는 이 세상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분문에 나타난 이 세상나라는 매일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같은 삶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이 세상이 서로 죽이는 전쟁과 같은 삶입니까? 그 이유는 서로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서로 주인 노릇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치열한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쟁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전쟁 같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롯이 간 이 세상나라는 끊임없는 전쟁이 있는 나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1절과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1절에 북쪽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4왕과 2절에 남쪽 가나안에 있는 5왕이 싸웁니다.

남쪽에 있는 5왕이 북쪽에 있는 4왕과 싸우기 위해서 3절에 싯딤 골짜기 곧 염해 즉 사해에 모여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최초의 중동 전쟁이었습니다.

이들이 싸우는 이유가 4절에 있습니다.

4.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남쪽에 있는 5왕이 북쪽에 있는 그돌라오멜 왕을 12년 동안 섬기다가 13년째 배반을 합니다.

그러니까 북쪽에 있는 그돌라오멜 왕이 자신과 함께 있던 3왕들과 함께 그동안 조금씩 반란의 기미가 보였던 부족들을 먼저 칩니다. 이것이 5절에서 7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남쪽에 반란을 일으킨 4왕을 치기 위해서 준비를 합니다.

/그러니까 8절에 남쪽에 있는 5왕들이 싯딤 골짜기 즉 사해에서 북쪽에 있는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4왕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진을 칩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북쪽에 있는 4왕이 남쪽에 있는 5왕과 맞서 싸웁니다.

그런데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싯딤 골짜기 즉 사해 지역은 남쪽 왕들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남쪽 왕들은 이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청구덩이가 많은 지역에서는 남쪽 왕들이 유리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남쪽 왕들이 북쪽 왕들과 싸우다가 쫓겨나서 역청구덩이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산을 도망갑니다. 그래서 북쪽에 그돌라오멜 왕을 중심으로 한 4왕이 승리합니다.

그리고 11절과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북쪽에 있는) 네 왕이 (남쪽에 있는)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왜 당시에 전쟁이 일어났습니까? 표면적으로 보면 그 이유는 서로 주인노릇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더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없는 자의 것을 빼앗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당시에 세상에서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있었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롯은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풍요로움을 선택했습니다. 롯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더라도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재물을 가지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죄악의 도시라도 소돔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고, 가졌던 재물도 다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물질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오늘 본문에 보면 물질적으로도 점점 더 풍성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이 되면 우리가 이 땅에서 롯과 같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의 노예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롯은 세상속의 삶에서 실패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전쟁과 같은 이 세상 속에서의 삶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를 잃지 말아야합니다.

13절 상반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도망한 자가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전쟁의 상황을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간 이야기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아브라함이 아모리 족속 헤브론의 마므레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13장18절에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보는 땅을 다녀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땅 밟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수풀에 거주하면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서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가 있는 때도 아브라함은 여전히 헤브론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롯이 전쟁을 겪는 중에 아브라함이 헤브론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에 거주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헤브론 마므레 수풀에서 하나님과 뜨거운 교제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한 첫 번째 비결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고, 또 하나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사람입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사람은 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감정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또 사람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이런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의 바람을 따라서 갈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복 있는 사람은 이렇게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상황에 따라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나무는 바람이 불면 흔들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절대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뿌리를 땅에 깊이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와 같은 사람도 가뭄을 격기도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나무가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산속에 있는 나무를 보셨습니까? 왜 그 산속의 나무가 온갖 비바람을 맞고도 굳건히 서 있는 줄 아십니까? 나무는 아프면 아플수록 더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인생에 아픔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아픔에 반응하지 마시고, 아프면 아플수록 하나님께 더 깊이 뿌리를 내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비바람이 불면 불 수록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더 깊이 뿌리를 박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문제를 따라서 이러 저리 날아가는 겨가 되지 마시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하나님께 더 깊이 뿌리를 내리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민할 시간보다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잠이 오지 않으신다면 밤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으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으면 하루 종일 성경을 읽으시든지, 하루 종일 성경말씀을 필사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를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평안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그리스도 말미암은 기쁨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이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바람이 불면 불 수록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전쟁 같은 이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전쟁이 일어나는 가운데서 단순히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교제만하고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3절을 다시 보시면 아브라함은 전쟁일 일어나는 가운데 헤브론 마므레에서 하나님과 교제한 것만 아니라 마르레 수풀 근처에 사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동맹을 맺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여기서 보면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리고 훈련한 자가 318명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교제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집에서 사람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싸움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카가 사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고 단까지 쫓아갑니다.

그리고 15절과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5.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우리가운데 “나는 하나님만 좋아, 더 이상 세상의 문제에 휘말리지 않을 거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신앙의 한쪽면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변화산위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변화 산에서 제자들은 영광스러우신 예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하면서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 더 이상 이 세상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은 데리고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마음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를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집에서 318명의 사람을 기르고 훈련시킨 것처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대적할 이 세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상대한 북쪽에 그돌라오멜 왕을 중심으로한 4왕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북쪽에 있는 모든 부족들을 무찌르고, 남쪽에 있는 5왕들을 무찌르고 이길 정도로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기드온의 300용사가 싸워야할 미디안의 연합군은 13만 5천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훈련이 있어야겠습니까? 그것은 기도와 말씀의 훈련입니다.

변화산상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하던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오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귀신들린 아이를 둔 아버지와 제자들 사이에 큰 논쟁이 일어납니다. 왜 이 아이에게 붙은 귀신이 물러가지 않느냐는 논쟁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귀신을 물리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초대교회는 깊은 절망과 무능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오직 유일한 희망은 성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어떻게 했습니까?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만 힘을 썼습니다.

/초대교회가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문제가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오직 한 마음으로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왜 한 마음이었습니까?박함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아니면 우리가 희망이 없다는 절박함입니다. 오직 기도가 아니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는 아브라함에 싸워야했던 그돌라오멜 왕과 같은 이 세상이 있습니다. 기드온이 싸워야할 미디안의 13만 5천명과 같은 이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318명의 기도의 용사들입니다. 그리고 오직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318명의 기도의 용사와 말씀의 용사가 되어 우리 앞에 있는 이 세상과 더불어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 전쟁 같은 이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이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합니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이기고 돌아왔을 때 그 앞에 소돔 왕과 멜기세덱 왕이 맞이했습니다.

여러분 이때 아브라함의 생각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의 힘으로 북방 왕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돌아온 모든 전리품들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든 왕들에게 환영을 받고 높임을 받을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 왕이 어떻게 말합니까?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여기서 보면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이신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단순히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도 모든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왕들이 서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높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제일 높으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멜기세덱은 그 하나님께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늘과 땅 즉 이 모든 세상의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 싸움의 배후에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싸움의 배후에서 그를 대신하여 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대적을 물리치셔서 아브라함의 손에 주셨습니다. 그래서 네가 가지고 온 모든 전리품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찬양받고 높아질 것이 아니라 너를 대신하여 싸워서 이기게 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20-(맬기세덕에 말을)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여기서 성경에서 처음으로 십일조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십일조는 절대 율법이 아닙니다. 또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고 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여기서 십일조는 아브라함의 신앙고백입니다.

어떤 신앙고백입니까?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단순히 저의 하나님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늘과 땅 이 모든 세상의 주권을 가지신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단순히 내가 기도하는 자리에만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내가 살아가는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 저는 내가 열심히 싸움을 잘해서 이 싸움에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싸워주셔서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가 가진 이 모든 승전물들은 어느 하나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예물을 통하여 하나님 영광을 받아주시옵소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는 신앙고백으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십분의 일은 단순히 열 개 중에 한 개가 아닙니다. 십분의 일은 십 분의 구를 대신하고 대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분의 일은 아브라함에게 있는 모든 것을 드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십분의 일에서 일은 성경에서 가장 귀한 것, 최고의 것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 최고의 것을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바로 이 멜기세덱이 구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이 모든 것을 드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18절에서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온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떡과 포도주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시는 살과 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이 환영을 하면서 떡과 포도주를 준 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우리를 위하여 살과 피를 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은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나타내는 멜기세덱에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은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장 귀한 살과 피를 주신 예수님에게 나의 가장 귀한 것, 나의 전부를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십일조는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도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살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멜기세덱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소돔왕도 나옵니다.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네가 가진 모든 것은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왕인 내가 주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세상왕인 내가 주는 이 모든 물품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말합니까?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세상 왕이 주는 것이라면 실 한 오라기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세상 왕이 나를 부요하게 했다는 말을 듣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제 이 세상 속에서의 모든 삶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인정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부요하게하고 존귀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속에서의 여러분들의 모든 삶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여러분들의 기도의 자리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모든 삶 가운데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들 자녀를 결혼시키는 문제, 내가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모든 문제, 또 나의 노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그 모든 문제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방패가 되시고, 주인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온전히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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