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8절에 보면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물었습니다(마22:35,36). 바리새인들은 613가지의 율법 가운데 어떤 계명이 더 큰 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둘째도 그와 같으니 라고 하시는 것은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이 크고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마22:39-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보시면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마22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함과 같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8절에서 “8—남(이웃)을 사랑하는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우리에게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또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모든 계명이 다 들어있다고 해서 사랑하면 무엇이든지해도 됩니까? 사랑하면 간음해도 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면 간음하지 말아야합니다. 살인하지 말아야합니다. 도둑질 하지 말아야합니다. 탐내지 말아야합니다.
그런데 또 “나는 간음하지 않았다. 살인하지 않았다. 도둑질하지 않았다. 탐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미 사랑의 계명을 지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지 말라 고 하신 이유는 사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을 하지 말라” 고 하신 것은 사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으로 율법을 다 지킨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율법과 율법주의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란 율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613가지의 계명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율법적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율법적 규칙은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한 수단들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문제는 그 율법적 규칙이 목적이 되어서 율법의 참된 목적인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막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율법주의)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사랑)은 버리고 사람의 (율법주의)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율법주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사랑)을 잘 저버리는도다
율법과 율법주의의 차이는 사랑이 있고 없음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율법주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대로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되 사랑의 빚 진자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로마서에 보면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인 것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사도바울은 그가 복음을 전해야할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는 사도바울은 성령하나님께 빚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령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육신대로 살지 않고 성령을 쫓아서 살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가 되었습니까?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기서 우리라고 했을 때 사도바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떨 때 사랑하셨습니까? 아직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여러분 또 이 사랑은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 이 세상의 그 어떤 권세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이 사랑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된 사랑이었습니다.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래서 우리가 국가에 대해 세금으로 바칠 빚은 갚음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이 만큼 사랑하면 사랑의 빚을 다 감당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얼마나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가? 를 얼마나 크게 깨닫고 인식하며 살아가느냐 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이때 가롯유다가 어떻게 말합니까?
“요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액수의 향유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룟 유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까? 틀리다고 생각합니까?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맞는 말입니다. 당연히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그냥 붓는 것은 낭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깨뜨린 향유가 얼마나 되느냐가 아니라 과연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냐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오라비인 나사로의 생명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생명을 살려주셨는데, 300데나리온이 아깝겠습니까? 절대 아깝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려주심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신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여러분 만일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육신의 생명을 누가 살려준다면 몇 십조 되는 재산이 아깝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영생의 값어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300데나리온과 영생의 값어치는 도무지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룟유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룟유다는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감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은 30에 팔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큰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받은 줄 아십니까?
마18장 비유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일만 달란트의 용서와 사랑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일만 달란트가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한 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품삯이 10만으로 계산하면 한 달란트는 6천만원입니다.그러니까 일만달란트는 6조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6조에 해당되는 용서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비유에 보면 일만달란트 용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이 일백 데리나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일백 데나리온이 얼마입니까?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10만원라고 하면 1000만원입니다. 여러분 1000만원이 큰돈입니까? 예 엄청나게 큰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우리는 내가 하나님께 빚진 6조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빚진 1000만원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요기도회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는데, 지난주에 고신교회 회복을 위한 기도회에서 이찬수목사님께서 제일 강조하신 말씀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입니다. 고신교회가 회복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단순히 순교의 신앙의 회복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회복되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일 구원의 감격이 없이 열심히 일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했는데, 왜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시지 않는가? 왜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하는가? 라고 할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다 많은 헌금을 한다면 그 돈이 아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이 무조건 서로 사랑하라고 한다면, 그것만큼 부담스러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따라서 우리가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인 말씀이지만 여러분 단순히 먼저 내가 인간적으로 사랑해야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사랑해야겠다고 하면할수록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았느냐를 깨닫는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향하신 그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다 값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도 다 값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값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생각하면서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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