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경연구/로마서

거짓이 없는 사랑(롬12:9-13)

by 금빛돌 2021. 5. 8.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생활을 말하면서 제일 먼저 교회 생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절부터 교회 생활을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이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생각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생각은 교회를 판단하시고 평가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우리는 머리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생각을 하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모든 판단과 평가는 머리이신 예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대로 충성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교회가 여러 지체가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 생활에서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주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는 동일하지만,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은사의 다름이 절대 틀림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눈에 보이는 봉사를 좋아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것도 필요합니다.

만일 교회에서 마리아와 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말씀만 듣기만을 좋아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됩니다. 교회에서는 마리아도 필요하고 마르다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서 눈에 보이게 봉사하시는 분들만 필요하다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분들도 귀한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마치 내장기관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 눈에 보이게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들도 귀한 분들이고, 또 조용히 기도하시는 분들도 너무나 귀한 분들이십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랑에 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왜 갑자기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다가 사랑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사랑은 모든 은사의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기서 보시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은사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을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 큰 은사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 141절에서 고전 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은사)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합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자매들을 보면 요리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을 다 잘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따라서 병고침사의 은사, 사랑을 따라서 방언의 은사, 사랑을 따라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도들을 더 섬길 수 있는 더 큰 은사들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사랑을 따라서 은사를 구하면 살아야 하는데, 어떤 것이 사랑입니까?

이것에 대해서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전 13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니까 불의도 무조건 용납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또 사랑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선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짓을 용납하는 것은 절대 사랑이 아닙니다. 또 악을 용납하는 것도 절대 사랑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 말세에 나타날 현상으로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가 될 수록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불법이 성함으로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사랑은 무조건 용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과 법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을 무시할 때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동성애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사랑하면 무엇이라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슨 법이 필요하냐 하면서 무조건 사랑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요즘 예수를 믿는 젊은 남녀들이 결혼하기 전에 서로 동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랑하면 무조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것이 죄라고 말해주어여합니다. 그래서 그 죄에서 돌이키고 회개하게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자녀들이 결혼하기 전에 동거를 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죄라고 분명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서도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사랑이 더 풍성해 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의 사랑이 더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란 하나님이 주신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랑이란 “9. -악을 미워하고-” 하는데, 이것을 더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계속해서 악한 것을 몹시 미워하라입니다. 그래서 성경주석에서는 사랑이란 악에 대해서 타협의 여지를 두지 말고 철저히 배제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 사랑이란 선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 “9-선에 속하라 하는데, “-속하라 란 아교풀로 달라붙는 것처럼 떨어지지 않고 완전하게 달라붙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거짓이 없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또 무엇이 진정한 사랑입니까? 1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이 말씀을 더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형제애를 방편으로 하여 가족처럼 서로 간에 알뜰히 사랑하고가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 진정한 사랑입니까? 서로를 가족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족과 가족 아닌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탕자의 비유에 보면 집을 나간 탕자에게 진정한 가족은 누구였습니까? 아버지였습니다. 그의 형은 진정한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비유를 통해서 보았을 때 가족이란 무엇입니까?

가족이란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탕자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아버지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것이 가족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이 있을 때 진정으로 찾아 갈 수 있는 가족과 같은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사랑이란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것입니다.

10절 하반 절에서 “10-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라고 하는데, 이것을 영어성경에서는 “10-존경을 방편으로 하여 서로 더 낫게 여기라(NASBgive preference to one another in honor)”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를 존경함으로 낫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빌립보서에서는 겸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2:3-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겸손입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해지지 않는 이유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늘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그 다음에 11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여기서 보시면 사도바울은 거짓이 없는 사랑에 관해서 말하고, 또 우리가 가족 같이 사랑하기를 바라고, 또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사랑을 말하고 난 다음에 왜 갑자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합니까? 사랑에 관해서 말씀을 하다가 갑자기 열심을 다하여 주를 섬기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가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직장에 가고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열심을 다하여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람이 진정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관점에서는 부지런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오늘 말씀의 의미에서 보았을 때 이 사람은 절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말씀에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 하다는 말씀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 하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을 보면 정말 부지런합니다. 게으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게으릅니다. 부지런 하지 않습니다. 열심이 없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세상의 삶에 있어서는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이 있는데, 왜 주님과의 관계서는 그렇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주님과의 첫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처음 사랑이란 구원의 은혜로 인해서 감사하고 감격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내 삶 가운데 첫 번째로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또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이란 내 삶의 한부분이 아니라 내 삶의 전부를 드려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또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은 일보다 주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주님과의 관계보다 일이 더 앞서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는 모든 교회 일들이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일이 되지못하면--항상 그 일들은 소리가 납니다.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나중에 지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게으름을 이기고, 열심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은혜 받는 일에 더 열심을 내어야합니다. 예배 가운데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말씀가운데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기도와 찬양가운데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이렇게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이 되면, 우리는 열심을 다하여 주님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가족처럼 사랑 할 수 있습니다. 또 서로 존경함으로 사랑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사랑의 열심이 회복됨으로 형제를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환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들끼리 서로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수많은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환난이 있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의 소망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의 부활의 소망입니다. 또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는 소망입니다. 또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찬송가 95장에서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의 부활의 소망과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는 소망과 예수그리스도의 소망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떤 환난 가운데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환난 중에 참으며 라는 말은 환난을 피하지 않고, 환난 그 아래에 머문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환난을 피하지 말아야합니까? 왜 환난 가운데서 머물러 있어야합니까? 그 이유는 그 우리에게 있는 모든 환난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에게 있는 환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지성소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환난은 우리로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보시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환난을 주는 바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신 이유는 바로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전파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할 때 바로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지 않았다면 바로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더 완악하게 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환난을 거두어 달라는 것은 환난 가운데 나타날 하나님의 은혜를 거두어 달라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서 나타날 하나님의 능력을 거두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 가운데서 피하지 마시고 끝까지 머물러 계심으로 환난가운데서 환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하나님 믿습니다.)

또 환난가운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사시기 바랍니다.

13절입니다.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성도들의 쓸 것이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말합니다. 또 공급하라고 하는 말은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라 혹은 같이 겪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언인지에 항상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성도님들에게 지금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물질적인 부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성도님들에게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위로와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앞으로 잘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호의를 베풀어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거짓이 없는 참 사랑으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