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일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제일 먼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느헤미야로 말하면 그가 모시고 있는 페르시아 왕인 아닥사스다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일을 할 때 첫째는 하나님이고, 그 다음에는 윗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성이다 그러니 성벽을 다시 건설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라 그래서 무조건 성벽을 건설하라” 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느헤미야는 “나는 유다 총독이다.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을 가지고 왔다. 너희들은 이제 내일부터 무조건 예루살렘 성을 건설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렇게 강압적으로 일을 시켰다면 유다백성은 억지로는 일을 했을지라도 자발적으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유다백성들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합니까?
아무 것도 하지 싫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처음 성벽을 건설하다가 중단한지 13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것보다 더 크게 무너져 있는 것이 유다백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느헤미야는 일을 하자고 하기 전에 먼저 유다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11절부터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절을 보시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가서 사흘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혼자 가만히 있습니다. 그리고 12절부터 16절을 보시면 소수의 사람들과만 함께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살펴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6절을 보시면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살피는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유다 총독으로 유다 모든 사람들과 제사장 귀족 또 지도자들을 모아서 거창한 행사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조용하게 허물어진 성벽만을 직접적으로 살펴보는 일을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귀로만 들었던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을 그가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허물어진 성벽을 돌아다니면서 그 동안 유다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무너진 성벽을 통해서 외부의 적들로 인해서 그들이 얼마나 큰 수치를 당했는지? 또 성벽을 쌓다가 실패하여 낙심해 있는 유다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도 일을 하기 전에 제일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 성도들의 아픔을 얼마나 내가 같이 마음으로 공감하고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루살렘 성을 조용히 살펴보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17절에서 이렇게 유다백성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여기서도 보시면 느헤미야는 너희가 당한 곤경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 라고 합니다. 이 말은 너희가 건축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 우리가 함께 같이 건축하자” 는 말입니다. 이렇게 다시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 말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까? 예루살렘 성이 황폐되고 무너진 것 때문에 너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그 수치를 나도 마음으로 같이 느끼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는가 하는 것을 나도 함께 느끼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이제 이런 수치를 당하지 말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동기부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고유한 자존감이 있습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을 다릅니다. 자존심은 단순하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우리가 당연히 한 인간으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인간으로 당연히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절대 수치스럽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한다면 그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느헤미야는 단순히 성벽을 건설하자고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성벽을 건설하여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한 인간으로서 수치를 당하지 말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수치를 당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성벽을 건설하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자존감이 필요합니까? 이제 우리 교회가 더 이상 어려움이 있는 교회라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교회문제들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존감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가 부흥되고 있는 이야기만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인 동기부여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신앙적인 동기부여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18절에 있습니다.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이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를 도우신 일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느2장 4절에서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했을 때 느헤미야가 잠시 하늘의 하나님께 묵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느2장 8절에 보면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왕이 허락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왕입니다. 또 그는 성벽건설을 막았던 왕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와 함께 하시므로 왕이 이 모든 일을 허락하였다는 것을 간증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일어나 건축하자라는 말을 누가 했습니까? 느헤이먀가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했습니다. 일어나 건축하자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힘을 내어서 모도 힘을 내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교회 엘리베이트 공사를 시작하자고 한 것은 당회가 아니었습니다. 방규오장로님께서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 후에 노회 때 하장로님과 제가 가까운 성산교회에서 엘리베이트 공사와 리모델링공사를 보고 와서 우리 교회도 해야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제 우리 교회가 엘리베이트 공사를 하려고 결정했다고 하는 그 날에 오후 예배 때 어떤 사모님이 오셔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때 그 사모님이 폐가 좋지 않아서 교회 계단오르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간증을 통해서 우리 온 교회 교인들이 정말 이제 엘리베이트 공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사실 걱정이 되는 것은 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후 어떤 집사님이 5000만원을 엘리베이트 공사에 헌금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분명 이 일에 하나님의 분명히 선한 손이 함께 하는 것을 우리 모두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일을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는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와 함께 하는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이 모두 힘을 내어서 이 하나님의 선한 일에 모두 힘을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이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느헤미야서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재건하는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일을 하는 것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느헤미야서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하기 전에 느헤미야가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합니다.
1)느헤미야는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단순히 사람들의 마음만 움직인다면 그 일을 절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러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제일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느헤미야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하였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이렇게 된 모든 상황을 다른 누구의 죄가 아니라 그 자신의 죄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게 된 그 어떤 원인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조상들의 죄 때문에 예루살렘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나와 우리 조상들이 죄를 지었습니다. 나와 우리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씀을 다시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정말 회개합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바로 저의 죄 때문입니다. 제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오니 하나님 저의 죄를 용서하여주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즘 언론을 통해서 정인이라는 아동을 학대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온 국민들의 공분을 쌓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아이를 입양한 부부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버지도 목사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독실한 기독교인의 집안에서 입양한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 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생각하면서도 함께 같이 공분을 하면서 느헤미야를 생각했습니다. 느헤미야라면 어떻게 했을까? 단순히 그 사람에 대해서 비판만하고 공분만 했을까? 또 단순히 세상 사람들처럼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만을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느헤미야였다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와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그 아이를 죽였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죽였습니다. 하나님 나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였습니다.
2)두 번째 느헤미야는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느헤미야로 말하면 그가 모시고 있는 페르시아 왕인 아닥사스다 왕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당장에 예루살렘에 달려가서 유다백성들을 선동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비참하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힘을 내어 성벽을 건설하자고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4달 동안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을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하는 것을 중단시킨 사람이 바로 아닥사스다 왕입니다. 왜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 성벽건설을 중단시켰습니까? 그 이유는 강 서쪽 총독들이 거짓으로 모함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벽을 건설하면 왕을 배반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하면 자신의 왕권에 도전이 될까 하여서 성벽건설을 중단시켰습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절대 아닥사스다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가 만세수를 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도 절대 충성하는 신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내 죽은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벽이 무너져서 건설하려고 한다고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다민족의 성인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것과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벽이 무너졌다고 하는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아닥사스다 왕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만일 우리 민족이 있는 성벽이 무너졌으니 건설하게 해 달라고 했다면 아닥사스다 왕은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조상의 묘가 있는 성을 건설하려고 한다고 하니까 아닥사스다 왕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첫째는 하나님이고, 그 다음에는 윗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그리고 이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야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성이다 그러니 성벽을 다시 건설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라 그래서 무조건 성벽을 건설하라” 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느헤미야는 “나는 유다 총독이다.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을 가지고 왔다. 너희들은 이제 내일부터 무조건 예루살렘 성을 건설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렇게 강압적으로 일을 시켰다면 유다백성은 억지로는 일을 했을지라도 자발적으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유다백성들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합니까?
아무 것도 하지 싫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처음 성벽을 건설하다가 외부의 박해가 있어서 성벽건설을 중단한지 13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것보다 더 크게 무너져 있는 것이 유다백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느헤미야는 일을 하자고 하기 전에 먼저 유다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11절부터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절을 보시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가서 사흘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혼자 가만히 있습니다. 그리고 12절부터 16절을 보시면 소수의 사람들과만 함께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살펴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6절을 보시면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살피는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유다 총독으로 유다 모든 사람들과 제사장 귀족 또 지도자들을 모아서 거창한 행사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조용하게 허물어진 성벽만을 직접적으로 살펴보는 일을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귀로만 들었던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을 그가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허물어진 성벽을 돌아다니면서 그 동안 유다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무너진 성벽을 통해서 외부의 적들로 인해서 그들이 얼마나 큰 수치를 당했는지? 또 성벽을 쌓다가 실패하여 낙심해 있는 유다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도들을 돌아볼 때도 제일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얼마나 내가 같이 마음으로 공감하고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정인이 학대 사건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 부모들이 단순히 입양을 일로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죽기 한 달 전에 입양을 했다는 것을 교육방송을 통해서 공개하며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정말 그 아이를 가슴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아픔을 마음으로 더 깊이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유다백성들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루살렘 성을 조용히 살펴보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17절에서 이렇게 유다백성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여기서도 보시면 느헤미야는 너희가 당한 곤경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 라고 합니다. 이 말은 너희가 건축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 우리가 함께 같이 건축하자” 는 말입니다. 이렇게 다시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 말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까? 예루살렘 성이 황폐되고 무너진 것 때문에 너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그 수치를 나도 마음으로 같이 느끼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는가 하는 것을 나도 함께 느끼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이제 이런 수치를 당하지 말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동기부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고유한 자존감이 있습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을 다릅니다. 자존심은 단순하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우리가 당연히 한 인간으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인간으로 당연히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절대 수치스럽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한다면 그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느헤미야는 단순히 성벽을 건설하자고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성벽을 건설하여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한 인간으로서 수치를 당하지 말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수치를 당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성벽을 건설하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인 동기부여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신앙적인 동기부여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18절에 있습니다.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이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를 도우신 일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느2장 4절에서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했을 때 느헤미야가 잠시 하늘의 하나님께 묵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느2장 8절에 보면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왕이 허락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왕입니다. 또 그는 성벽건설을 막았던 왕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와 함께 하시므로 왕이 이 모든 일을 허락하였다는 것을 간증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스스로 하는 말이 건축하자 모두 함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합니다. 또 지혜를 가지고 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합니다. 그리고 함께 공감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힘을 내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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