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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역대하

갑옷솔기와 같은 인생(대하18장28-19장11)

by 금빛돌 2020. 10. 28.

오늘 본문은 유다왕 여호사밧왕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호사밧왕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한 왕인 아합왕과 사돈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아람군대가 처 들어왔을 때 동맹을 맺어서 함께 물리치고자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미가야를 통해서 그 싸움에 나가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28절에 이스라엘왕 아합과 유다왕 여호사밧은 길르앗라못으로 올라가서 아람군대와 싸움입니다.

이때 아합은 자기 혼자서 살고자 변장하고 전쟁터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에서는 당신은 왕복을 입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왕이 이스라엘왕으로 변장하고 아합은 일반병사로 변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아갑니다. 그때 아람 왕이 그의 병거 지휘관들에게 너희는 다른 작은 자나 큰 자나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이스라엘과과만 싸우라 즉 이스라엘 왕만 죽라고 합니다. 그때 병거 지휘관들이 이스라엘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인줄 알고, 그를 죽이라고 합니다. 이때 여호사밧왕은 소리를 지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셔서 그들을 감동시켜서 떠나가게 하십니다. 결국 병거 지휘관들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이 아닌 것을 알고 돌아갑니다.

옛날 전쟁에서 싸울 때 정확하게 사람을 겨냥하고 싸우지 않습니다. 무조건 화살을 쏘아 날립니다. 그래서 수백발 수천발의 화살이 날아가다가 우연하게 그 화살에 맞아서 죽은 경우가 있습니다. 옛날 교련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사격장에서 군인들이 사격연습을 하다가 그 앞에 들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관이 사격중지를 시키고, 그 들개를 향해서 사격을 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겠습니다. 수많은 총탄을 날렸지만 날 뛰는 들개를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전쟁에서는 영화와 같이 누구에게 정확하게 화살을 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3.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의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나를 진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겼는데 일반병사로 변장을 한 아합 왕의 갑옷솔기를 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아합 왕은 그 갑옷 솔기에 화살을 맞아서 바참하게 죽게 됩니다.

/아합왕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입니다. 가장 사악한 부인이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하나님보시기에 모든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와 동맹을 맺어서 싸움에 갑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살고 여호사밧을 죽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한 병사가 아무 생각 없이 쏜 화살에 갑옷 솔기를 비참하게 죽게 하십니다.

이 아합왕이 오늘 본문에서 죽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일반병사로 위장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스라엘왕의 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화살이 날라 와도 그 왕의 갑옷이 그를 지켜줄 줄 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우연히 쏜 화살에 갑옷 솔기가 맞아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갑옷솔기가 무엇입니까? 갑옷은 금속이나 뚜거운 가죽으로 만듭니다. 그러서 화살이 뚤지 못합니다. 그런데 갑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금속이나 가죽을 실로 이어야합니다. 이때 실로 어어진 부분에 틈이 생깁니다. 이 틈이 바로 갑옷 솔기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인생이란 왕의 갑옷이 아니라 갑옷솔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아합왕처럼 왕의 갑옷만 입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그 갑옷의 솔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심코 쏜 화살 한발에 맞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으로 그 생명을 살릴 수 없었습니다. 인류가 그렇게 많은 과학기술을 쌓아도 작은 바이러스에 무참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본질은 왕의 갑옷이 아니라 갑옷솔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인생의 본질이 왕의 갑옷이라고 여기고 그 갑옷이 그를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니다. 그러나 그 왕의 갑옷을 그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본질은 갑옷이 아니라 갑옷 솔기입니다.

더욱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이 세상의 그 어떤 왕의 견고한 갑옷도 그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여호사밧은 잠시 어리석게 그 악한 자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192절에서 대하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고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악을 행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여 그의 편에 서 있는 것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는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편에 서 있는 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 왕은 잠시 아합 왕을 도와서 그와 함께한 일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을 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스라엘왕의 옷을 입었지만 그를 도와주셔서 살게 하십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 인생은 갑옷이 아니라 갑옷 솔기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큰 부자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한 순간에 불어가시면 그 어떤 왕의 갑옷도 그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록 한 순간에 실수를 해서 악한 자를 돕는 길에 들어섰다가 그의 마음에 중심에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돌아보아주십니다.

이 세상의 돈과 권력, 사람들의 인기와 찬사, 이 모든 것이 왕의 갑옷입니다.

여러분 이것들이 결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인생은 갑옷솔기와 같습니다. 인생의 본질은 강함이 아니라 약함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로도 갑옷을 삼지 마시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시고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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