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이신 이시영박사님은 이번 코로나19에 대해서 6.25전쟁보다 더 무섭다고 하셨습니다. 전쟁은 전방과 후방이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전방과 후방이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우리 교회에서 가까운 중화 2동에서 코로나19 확진 자가 생겼습니다. 16세 여학생이라고 하는데, 동선이 나왔는데, 거의 우리 교인들이 다니시는 곳이었습니다. 이제 코로나19에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동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혹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더라도 절대 그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에 나타난 사탄의 생각이었습니다.
사탄은 오늘 본문 12절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보고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천사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 12절을 앞에 있는 11절과 연결시켜서 보시기 바랍니다. 11절을 보시면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네 모든 길이란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2절에서 하나님께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은 우리의 모든 인생의 길에서 우리를 거치게 하는 우리 인생의 걸림돌이 우리의 인생의 발걸음을 부딪히지 못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 11절의 말씀을 생략하고 12절만을 인용해서 실재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예수님을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하면 신천지와 비슷합니다. 신천지도 성경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성경공부가 거의 문맥을 무시한 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잘못된 성경해석의 결과가 오늘날 신천지와 같은 이단을 낳았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오늘 본문 3절을 잘못 해석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무조건 우리를 모든 전염병에서 걸리지 않게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중세시대에는 흑사병이 유행해서 그 당시 유럽인구의 30∼60%인 1억 명이 죽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중세교회는 단순히 성당에 나와서 열심히 미사만 드리면 그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흑사병을 더 유행시키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병을 퇴치하기 위해서 채찍질 고행단(Confraternities of Flagellant)을 만들어서 채찍질로 자신의 몸을 때리는 고행을 하여 죄를 씻으라고 강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채찍 고행단이 마을을 순례하면서 흑사병을 더 크게 전염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 흑사병에 대한 교회의 잘못된 대처가 중세교회를 멸망시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학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일반은총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인 의학을 통해서도 질병과 전염병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누구보다도 더 손 씻기를 잘 해야 합니다. 마스크 착용도 잘 해야 합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니까 마음대로 접촉해도 된다고 하는 것은 사탄의 시험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그래도 예배는 반드시 한 곳에 모여서 예배해야한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디에서 예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건 사마리아건 어디서 예배를 드리느냐가 아니라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지만 이 동영상 예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신령과 진리의 참된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시라고 하기도 하고 다윗의 시라고 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편 90편과 연결시켜 볼 때 모세의 시라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백성을 출애굽 시켜 광야의 길을 같이 걸어온 인물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걸어온 광야의 길은 수많은 위험이 있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 저와 모든 성도님들의 인생도 수많은 위험들이 있습니다.
어떤 위험들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새 사냥꾼은 새가 다니는 길에 올무를 놓습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새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을 죽이려고 바리새인들이 올무를 놓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우리가 한 발작이라도 걸음을 잘못 디디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우리가 넘어져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위에 심한 전염병의 위험이 있습니다. 여기서 심한 전염병이란 죽음에 이르게 할 전염병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격고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인간의 과학기술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바이러스로도 전 인류가 꼼짝도 하지 못하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염병이란 말이 원문으로 보면 중상모략하는 말이나 사람을 서로 죽이는 비방하는 말로도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염병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서로 죽이는 말들입니다. 우리 주위에 이런 전염병과 같은 말들의 위험이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5절과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5절을 보시면 밤에 찾아오는 공포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6절에 보시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서로 연결시켜서 보면 우리에게 밤마다 찾아오는 공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전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 19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염병에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염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와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염병과도 싸워야하지만 그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도 싸워야합니다.
/이와 같이 낮에는 전염병에 대한 위험이 있습니다. 밤에는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낮에는 우리를 향해서 날라드는 화살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에는 경제적 불황의 화살들이 우리를 향해서 날아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인생의 길에 어떤 위험들이 있습니까?
우리를 죽이려는 사탄의 올무들이 있습니다. 또한 죽음에 이르게 할 전염병의 위험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염병과 같은 말의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전염병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인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위험들 가운데 우리는 한없이 우울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침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이 심히 낙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께 나와서 찬양하거나 예배할 힘조차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보다 먼저 어려움을 당한 중국 어느 도시의 아파트의 광경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아파트에서 격리가 되어서 나가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밤마다 큰소리로 괴성을 지르는 광경이었습니다. 우리도 너무 오랫동안 밖을 나가지 못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도 우리와 같은 수많은 인생의 위험을 격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처럼 우울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침체되지 않습니다. 절대 낙심하지 않습니다. 의기소침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세는 수많은 인생의 위험가운데서 담대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또 10-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모세와 같이 인생의 수많은 위험가운데서도 모세와 같이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모세가 어떻게 수많은 인생의 위험가운데서도 평안하고 담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 모세는 인생의 수많은 위험가운데서 지존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수많은 인생의 위험가운데서도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1절에서 세는 “시91:1상.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모세는 하나님에 대하여 지존자라고 합니다. 지존자란 지극히 높으신 자란 뜻입니다. 모세는 수많은 인생의 위험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세가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자라고 고백을 하는데, 무엇에 대하여 지극히 높으신 자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모세가 겪는 인생의 수많은 위험보다 더 지극히 높으신 자라는 뜻입니다. 모세에게는 그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올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탄의 올무보다 더 높으신 분이십니다. 또 죽음에 이르게 할 전염병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음에 이르게 할 전염병보다 더 높으신 분이십니다. 또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염병의 두려움보다 더 높으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에게 날아오는 그 어떤 화살보다 더 높으신 분이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위험보다 더 높으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인생의 그 어떤 위험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어도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그런 인생의 위험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 어떤 인생의 위험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 모든 인생의 위험을 뛰어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들이 격고 있는 모든 인생의 위험들보다 더 높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격는 인생의 모든 위험을 능히 뛰어 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고 모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능히 이기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존자이며 전능 자라시는 신앙고백만이 아닙니다. 모세는 그가 당하고 있는 인생의 모든 위험보다 위에 계시는 그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여 있습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룻기에 보면 룻은 모압 지방에 잠시 거류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룻은 모압 지방에 거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인생의 수많은 위험들 가운데 그 모든 문제들 보다 위에 계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거류하고 계십니까? 거주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거류자로 계십니까? 아니면 거주자로 계십니까?
/여러분은 이번 한 주간 동안 무엇에 거주하여 계셨습니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에 거주하여 사셨습니까? 아니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수많은 위험들에 거주하여 사셨습니까?
/우리에게 수많은 두려움이 있고, 또 위험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 모든 위험보다 더 높이 계신 지존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잠시 거류하는 거류자가 아니라 거주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인생의 모든 위험 앞에서 지존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여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사는 자에게는 어떤 은혜가 주어집니까? 9절부터 13절까지 같이 한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거주)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모세는 수많은 인생의 위험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인생의 위험가운데서도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대사에 “계획이 있습니까?” 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수많은 위험이 있어도 그 가운데 계획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계획들을 지금도 이루시는 분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하나님을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의 요새가 되시고, 내가 믿고 계속해서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내가 믿고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 그에게 그 어떤 은혜가 주어졌습니까? 3절부터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 째로 모세는 수많은 인생의 위험가운데서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수많은 인생의 위험가운데서도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가를 높이리라
/모세가 인생의 수많은 위험들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모세는 수많은 인생의 위험들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수많은 인생의 위험들 가운데 그를 건져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인생의 위험들이 있어도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인생의 위험들이 있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바르게 알고 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높여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우리가 방역과 예방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하나님께 더 기도하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과 위험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모든 환난과 위험에서 건져주셔서 반드시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 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렇게 수많은 인생의 위험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장수함으로 만족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우리를 모든 질병과 화와 재앙과 위험에서의 구원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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