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서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지혜와 명철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 16절에 보면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 앞에 금이 있고, 은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흥분되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그것이 내 것이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지혜와 명철 얻는 것이 금이나 은을 얻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21절-23절을 보시면도 지혜와 명철의 소중함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혜와 명철이 소중하고, 또 우리가 추구해야하지만, 지혜와 명철을 가짐에 있어서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만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이 구절을 표준새번역성경에서는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고 합니다. 또 공동 번역은 “거만엔 재난이 따르고, 불손엔 멸망이 따른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지혜를 쌓아서 명철하다 할지라도 만일 교만하면 나중에 멸망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에서 너무나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말과 행동이 교만한지 아닌지를 하나님의 저울추에 달아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게 교만하면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패망 원인도 결국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또 야고보서에서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만이란 무엇입니까? 교만이란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이 있습니다.
사탄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 유혹했던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사탄은 네가 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과 같이 높이 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이 땅에 교만이라는 죄가 들어왔습니다. 인간은 이 교만의 죄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높이 되어서 이 땅과 자신의 삶의 주인노릇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높이며,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렘13장 15절에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입니까?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내 마음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교만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만 가지로 너희에게 전하였거늘 너희가 그 말씀을 너희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도다”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이것을 영적인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눅18:9. ○또 자기를 (하나나 앞에서)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렇게 내가 교만한지 아닌지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은 이제 반드시 사람들 앞에서의 교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권면이나 사랑으로 하는 위로나, 또 성령으로 말미암은 교제나 서로 불쌍히 여기는 긍휼이나 자비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빌립보교인들은 그런 좋은 일들을 하면서 다른 사람은 자신보다 낮게 여기며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교만의 다른 이름)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고 라고 말씀합니다.
또 누가복음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사람 앞에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무시합니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런 교만의 결과는 패망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만의 결과가 비참하고 무서움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쉽게 교만에 빠집니까? 그 이유는 교만한 사람에게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9.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기서 보시면 “교만한 자와 함께 탈취물을 나누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갑질에 관한 이야기 많습니다. 이렇게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그들은 높은 위치에서 많은 것들을 탈취하여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보면 교만한 사람이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교만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가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교만하면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탈취물이 있기에 사람들은 쉽게 교만의 죄에 빠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지혜와 명철을 가져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명심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교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이 20절에 있습니다.
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여기서 말씀에 주의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마다 항상 그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혹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분은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반대로 교만에 관한 말씀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볼 때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고 늘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교만하지 않기 위에서는 나의 지식과 지혜, 경험, 물질 등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합니다. 그럴 때 참으로 하나님이 보실 때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지혜와 명철을 추구해야하되 조심해야할 두 번째는 우리의 입술입니다.
21.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
여기서 보시면 마음이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라도 입이 선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이 선한 자란 그 입술을 통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유익을 주고 행복을 주는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24절에 보시면 “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합니다.
꽃으로도 사람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지식과 지혜가 많아서 명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입술의 말이 선하지 아니하면 좋은 말로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와 함께 겸손한 마음과 선한 입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입술의 말이 선한 말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이 32절에 있습니다.
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말은 우리 마음의 표현입니다. 우리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가 우리 입술의 말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가 용사보다 낫고,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잘 다스리고 우리의 입술을 잘 다스리는 영적인 용사가 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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