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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중심주제/성경공부 자료

마음에 품은 칼(마5:17-21)

by 금빛돌 2017. 4. 1.

예수님은 마 513절에서 16절에서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팔복의 인격을 가져야합니다.

또 우리의 의가 이 세상에서 제일 의롭다고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나아야합니다(21).

그러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부터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으로 분노하고 미워하는 것조차도 살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21. 옛 사람(구약시대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한다는 말은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분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분노가 결국 사람을 죽이게 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보면 분노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분노의 대상을 형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2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란 아주 가까운 사이를 가리킵니다.

이런 분노의 감정은 남이나 멀리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전체의 80프로 정도의 부부가 마음속에 숨겨놓거나 쌓아 놓고 있는 분노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아내 혹은 남편, 자녀, 가까운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뿌리는 가까운 형제에 대한 분노의 감정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분노를 잘 내겠습니까?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분노를 내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거나 나를 인격적으로 모욕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처를 받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으로 분노를 내게 됩니다.

2)또 우리 분노하게 되는 원인은 내가 바라고 기대했던 욕구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 주위에서 나에게 자주 분노하는 사람들을 보십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 무언가 이루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무언가 나에게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쉽게 화를 냅니다. 그런데 헨리나우엔은 자신의 생각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분노하는 경우는 자신의 생각이 남보다 더 우월하다고 하는 생각하는 교만이 깔려있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더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정받지 않았을 때 크게 분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잘 다스리고 이길 수 있습니까?

1)분노의 감정에는 내가 악에 대한 심판자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심판자에 되어서 악을 심판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악에 대한 모든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19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심판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심판자가 되어서 분노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사랑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해야 합니다.

2)또 우리가 분노를 이길 수 있는 길은 복수하려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용서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용서라는 말은 체포된 상태에서 풀어준다(,아페시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서는 분노의 당사자와 대상자 모두를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롭게 풀어주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3)또 사람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분노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분노하는 대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기대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오직 사랑해야할 대상입니다. 우리의 기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기대를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 때문에 분노할 필요가 없습니다.

4)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그 어떤 인간의 생각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는 교만을 버려야합니다. 하나님은 나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내 생각이 절대적이라는 교만한 생각을 버릴 때 우리는 분노를 이길 수 있습니다.

5)그런데 분노는 무조건 참고 있으면 화병이 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분노를 내려놓아야합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의 분노를 사람들 앞에서도 풀어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에게 분노를 풀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나의 모든 억울한 감정을 다 받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합니다.

어떤 크리스찬 정신과의사가 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강의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먹고 자는 본능을 담당하는 뇌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성을 담당하는 뇌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감정을 담다하는 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성의 뇌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랑하고 용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정의 뇌입니다. 내가 이성적으로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감정적으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정신과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당신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지 않습니까? 라고 해서는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먼저 그 사람의 감정의 뇌를 잘 이해해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분노의 감정을 잘 받아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공동체를 통해서 그 사람의 상처의 감정을 잘 풀어주면, 이성의 뇌가 작동하여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차원에서 우리 모두 전교인 수양회를 갔으면 합니다. 수양회에 가서 서로 좋지 않은 사람들을 억지로 화해를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거기서 함께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또 함께 서로 웃고 놀 때 우리의 감정들이 풀어집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있는 이성의 뇌가 작동하여 어느 누구라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이런 차원에서 우리교회가 자주 여행을 갔으면 합니다. 작년에 어떤 교회에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께서 하는 말씀은 성지순례여행을 하면서 서로 간에 많은 힐링이 되었다했습니다.

우리는 여행이라고 하면 어디에 갈 것인가? 또 어디서 어떤 것을 먹을 것인가? 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일 좋은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가는 여행지입니다. 또 제일 좋은 식당은 어디입니까?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가는 식당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성경을 펴놓고 이성의 뇌만을 사용해서 사랑해한다 용서해야한다는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여행을 하면서 같이 먹고 자고 웃으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감정들이 풀어집니다. 열방대학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열방대학에서 했던 강의나 프로그램을 교회에서 하면 거의 잘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열방대학에서는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 년에 한번쯤은 여기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혹 우리 안에 상처가 있고 분노의 감정이 있으면 함께 뛰놀면서 풀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수양회가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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