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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중심주제/성경공부 자료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마6:12)(설교)

by 금빛돌 2017. 4. 1.

오늘은 인간을 위한 두 번째 기도제목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마태복음 6장에 나타난 주기도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일 강조하시는 기도가 어떤 기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오늘의 이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69절부터 나오는 주기도문이 몇 절에서 끝이 납니까? 우리가 외우는 주기도문은 13절까지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보면 13절 뒤에 두 절이 더 있습니다.

6: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에 나타난 주기도문에서 제일 중요한 기도는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기도입니다.

즉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해야 내가 너희들의 죄를 용서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우리에게 잘못을 한 사람들의 과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이 주기도문에서 제일 중요한 기도입니다.

그러면 먼저 왜 우리가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까?

3:13절에서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서로 용서하라)”

그러니까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우리가 일만 달란트의 죄를 주님께로부터 용서받았기에 우리도 서로 용서해 주어야합니다. 여러분 일만 달란트가 얼마입니까? 금 한 달란트가 18억원으로 보아서 18조원정도 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일만 달란트를 용서받은 사람이 일백데리온(??얼마)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래서 우리가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죄에서 용서를 받았기에 우리도 서로 용서 해주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용서하라는 말씀을 많이 듣는데 용서가 너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용서에 대한 오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용서에 대한 오해는 용서를 화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다릅니다. 화해는 두 사람이 서로 용서를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해는 한 사람이라도 응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용서는 화해가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용서를 받아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일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용서를 화해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의 용서를 받아주지 않는데 왜 내가 용서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고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서란 상대방이 용서해주지 않아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둘째, 용서에 대한 오해는 용서란 악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악을 제거하고 응징하기 위해서 용서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용서에 대한 오해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악을 응징하기 위해서 복수를 택했습니까? 그렇게 복수를 선택한 결과 더 많은 악이 제거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복수를 한다고 하면서 인간들은 그들이 당한 것 이상으로 더 큰 악들을 저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죄를 응징하고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를 응징하고 없애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복수가 아니라 용서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향해 복수의 칼날들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내 탓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모두 내 탓이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모든 죄를 덮어쓰시고, 용서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악을 응징하시고 죄를 없애신 방법입니다. 용서해 주는 것이 결코 죄를 조장하고, 악을 더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만이 죄를 죽이고, 악을 응징하고, 얼었던 심령도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셋째, 용서에 대한 오해는 용서란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용서하면 내가 손해 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용서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때 제일 먼저 누구를 위하여 우리를 용서하신 줄 아십니까? 하나님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4325. (하나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하여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은 누구인줄 아십니까? 일방적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것도 억울한데,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아서 내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용서해 주어야합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해 주어야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합니다. 그때 그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상처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고 해서 용서하지 않고 계속 마음에 담아두면, 그것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습니다. 이것이 사탄이 우리에게 노리는 점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분노하라고 합니다. 또 정죄하라고 합니다. 또 서로 비난하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끊임없는 용서의 화살을 사탄의 진지에 날려야합니다. 그러면 사탄의 그 어떤 시험이 와도 시험에 들지 않고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한다면 나를 위해서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용서에 대한 오해는 용서를 믿음의 문제로 생각합니다(171-10).

17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용서하기 위해서 더 큰 믿음을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용서는 믿음이 커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으로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인과 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용서는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순종해야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용서란 내가 믿음이 작다 하더라도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순종해야할 문제입니다. 또 종에게는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인이 명하는 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용서란 믿음의 문제도 아니고, 감정의 문제도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정직을 선택하시려고 합니까? 아니면 순종을 선택하시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용서는 믿음이나 감정이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정말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믿는다면 내 감정과는 관계없이 용서에 대해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순종하여 용서하면 용서의 감정은 따라서 옵니다. 용서는 믿음이나 감정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다섯째, 용서에 대한 오해는 용서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니까 사람에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용서란 하나님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용서하는 자에게 어떤 은혜가 주어집니까?

이와 같이 우리가 서로 용서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들을 베풀어주십니다.

용서란 단어의 뜻은 풀어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용서란 나의 상처에서 나를 풀어줍니다.

왜 내 마음 가운데 상처가 있습니까? 그것은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용서하면 내 마음의 상처와 가시는 하나씩 제거가 됩니다. 그래서 용서란 나의 상처에서 나를 풀어줍니다.

2)용서란 나를 과거의 감옥에서 풀어줍니다.

용서는 한 사람의 죄수를 석방시켜주는 일입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의 감옥에 메여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용서는 나를 과거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미래에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3)용서란 하늘에서 잠긴 축복의 문을 풀어줍니다.

땅에서 메일 것이요, 땅에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용서하면 하늘의 문이 풀어 열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 땅에서 내게 잘못한 모든 사람들의 과실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4)용서란 땅에서 잠긴 축복의 문을 풀어줍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를 용서했습니다.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 아들 이름을 므낫세 즉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둘째 아들 에브라임 즉 풍성이라는 자녀를 주셨습니다. 용서할 때 이 땅의 풍성한 축복을 주십니다.

5)용서란 모든 관계를 풀어줍니다.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십니다(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그래서 용서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됩니다. 또 용서할 때 나의 상처에서 치유를 받습니다. 그래서 용서하면 나와의 관계가 회복 됩니다. 또 용서할 때 화해의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용서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 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가장 큰 본능은 복수입니다. 그러나 죄에서 용서받은 은혜를 받은 자는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야합니다. 용서함으로 모든 것이 풀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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