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시편은 시73편과 내용이 거의 비슷합니다. 시73편에 보면 시편기자는 먼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베풀어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기자가 본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무 어려움이 없는 형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죽기 직전까지 아무 어려움도 없고, 고통도 없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습니다. 요즘 이런 말이 있습니다. “9988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아가 2,3일 잠깐 시름하다가 죽는 것이 복이라 합니다.
여기서 죽기 전에 2,3일 아픈 것도 아파야 자녀들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3일 아프다가 죽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가 현실가운데 본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도 전혀 고통도 없고, 이 땅을 사는 동안에 남들보다 더 건강하고, 고난도 없고, 재앙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더욱더 교만하여 하나님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아주 악독하게 약한 사람을 압제하고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욕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물을 마시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내게 벌을 내려서 물을 마실 때 목이 막혀 죽게 해 보시오”라고 외쳐도 하나님은 그 사람이 물을 마실 동안 전혀 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믿고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신은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나의 신앙의 발걸음이 거의 실족할 번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번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 시편에서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 주위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행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7절에 보면 이렇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은 형통하며, 또 자신의 악한 계획들을 잘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또 12절과 14절과 32절에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의인들을 치고 괴롭히고, 심지어 칼로 죽이려 합니다.
또 16절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 의인들은 물질적으로 소유가 적은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은 물질이 풍부합니다.
또 35절에 보면 이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 큰 세력을 이루고 잎이 무성한 푸른 나무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불의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두 가지 마음입니다.
한 가지는 먼저 의분입니다(8절).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불평이라고 하는데, 이 불평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의분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저 악인들은 망해야 하는데 왜 망하지 않습니까? 왜 이 땅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당장 저들을 멸하시고,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더 큰 복을 주셔야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의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마음은 반대로 그 악인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악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왜 심판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그들을 은근히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 나도 저들처럼 편안하고 형통하게 살게 하지 않습니까? 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 두 가지 마음을 염두 해 두고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말을 합니까?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의분)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부러워하지) 말지어다”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불의한 현실에 대해서 의분을 가질 수 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의분도 필요합니다. 무조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외식하는 자들에 대해서 의분을 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분을 내는 것은 좋은데,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대부분 처음에는 의분으로 시작했는데, 그 의분이 그 사람에게 대한 일방적인 증오가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증오가 나중에 더 큰 악으로 발전하여, 그 악한 사람보다 더 악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7절과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의)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그래서 의분도 버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의분이 나중에 더 큰 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불의한 부자들에 대해서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모든 가진 자들에 대해서 무조건 증오하여 그들보다 더 큰 악을 품을 수 있습니다.
---불의하게 돈을 벌고 부자가 된 사람들도 악합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해서 의분을 낸다 하면서 무조건 부자를 보면서 증오하는 것도 악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불평도 의분도 내지 말게 하시고, 부러워하지도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에 대해서 의분도 내지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2절에 나와 있습니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우리는 여름철 자연에 무성한 풀과 체소들을 봅니다. 지금 보면 무성하며, 온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곧 시들고 말 것입니다. 악인들의 형통함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또 예레미야서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한 사람들의 형통함은 마치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다고 합니다(렘17장). 사막의 떨기나무도 메마른 사막가운데서 잎이 무성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 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바람이 불면 잎이 부딪혀 불이 나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이 그렇습니다.
또 시73편에는 악인의 형통함이 마치 높은 미끄럼틀위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미끄럼틀위에 있으니까 높아 보이고 모두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그 높은 미끄럼틀은 멸망을 가는 미끄럼틀입니다. 악인의 형통함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한 사람들의 형통함을 불평하거나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한 사람들이 형통하고, 또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불의한 현실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1)불의한 현실 가운데서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합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우리는 이런 불의한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무엇을 믿고 신뢰해야합니까?
그것은 하박국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합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하나님을 대적하는악인의)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2장 3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 살아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아래 24-26절에 보면“시37:24. 그(하나님을 믿는 의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시37:27.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28.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정의를 사랑하는)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의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이런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도 여전히 우리가 보는 현실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때 하박국은 어떻게 말합니까?
“합2:4. ○보라 (불의한 현실가운데) 그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하나님을 믿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이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현실에서 모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아서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비록 현실가운데는 그렇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을 멸망시키실 것을 믿고--------끝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화)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주지사인 아혹은 이슬람 국가에서 보기 드물게 기독교인으로서 주지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데, 무슬림 국가에서 기독교인이 대통령 유력 후보가 되니 무슬림들이 곱게 놔둘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아혹을 꼬투리 잡아 신성모독죄로 고소했는데 아혹은 이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저를 믿어주세요. 여러분들이 저의 이름을 헐뜯는다 해도, 저의 권위는 여전히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주지사의 권위는 하나님께 부여받은 것이라고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어요. 하나님께서 주 정부의 권한을 제게 주셨다면, 무슨 수를 써서 저를 몰아내려 한다 해도, 저는 여전히 여러분들의 주지사로 남을 것입니다. 진정들 하세요. 여러분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의 사람들이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역시 하나님을 믿어요! 정말로요! 그래서 제가 결코 자리를 잃어버릴 걱정을 하지 않는 겁니다. 제가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저는 결코 두렵지 않아요. 제가 죽어서 갈 곳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제가 뭘 믿어야 하는지를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이 자리를 잃을 것을 왜 두려워하지 않는지 아세요? 이 자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왜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아세요? 제가 천국으로 갈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야할 처소가 예비 되어 있고, 먹을 것도 걱정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저는 예수를 따르는 자입니다. 그의 약속은 굉장히 명확합니다. 예수님은 제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증해주셨어요. 제가 갈 처소가 예비 되어있고, 먹을 것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저의 믿음의 확증들입니다. 그것이 제가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불의한 현실가운데서도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끝까지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여--그 성실하심과 신실하심을 날마다 맛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또 불의한 현실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아야합니다.
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제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 더 한 단계 높은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 괴롭힘을 당하고 사방에 욱여쌈을 당하는 답답한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살아가야합니다.
----이것도 우리의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불의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감정상으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감정상으로는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기뻐해야겠다는 의지적 결단입니다. 아자 하나님으로 기뻐합시다ㅡ 아자--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은 목회는 아픔과 행복의 혼합이라고 했습니다. 목회는 너무 큰 황폐(devastation)와 너무 큰 기쁨(delight)이 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 목회자가 행복하지 않으면 교인들이 행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존 파이퍼는 “내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하고 기뻐할 때, 하나님은 내 안에서 가장 크게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든 인생도 아픔과 행복의 혼합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것 같은데, 그 속에도 아픔이 있습니다. 또 아픔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속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항상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런 인생가운데서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그것이 인생의 참된 행복이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의한 현실가운데서도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4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 어떤 불의한 현실가운데서도 하나님으로 항상 만족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또 불의한 현실가운데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5,6).
5-6절입니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기서 맡긴다는 말은 “옮겨 놓는다. 내려놓는다, 굴려버린다”는 말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올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산을 올라가면 갈수록 숨이 차고 그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합니다. 그리고 산 밑으로 굴려 버려야합니다. 그러면 가볍게 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내 모든 삶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원망스럽고 불평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까?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내려놓으시고, 산 아래로 굴려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심지어 사람에 대한 판단조차도 다 주님의 발 앞에 내려놓으시고, 다 산 아래로 굴려버리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도 다 주님께 내려놓으시고 산 아래로 굴려 버리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가 가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자녀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다 주님께 내려놓으시고, 산 아래로 굴려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 기독교가 세상에 조롱을 받고 핍박을 받는데, 이 문제도 다 하나님께 내려놓으시고, 산 아래로 굴려버리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에게 억울하고 답답하고 남들에게 오해를 받는 문제들이 있습니까? 그 모든 문제들도 다 주님께 내려놓으시고, 산 아래로 굴려버리시기 바랍니다.
---예화-어떤 사람이 한 밤중에 길을 가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나무에 걸려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손을 놓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밤새도록 불안하여 떨면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미명에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을 내려놓으세요, 손을 내려놓으세요”. 그래도 불안해서 손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빛이 더 밝아졌는데, 보니까 자기 발 바로 밑에 땅이 있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손을 내려놓으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불안해서 손을 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너의 모든 짐을 다 내려놓아라, 내게 굴려버려라. 네가 잡고 있는 그 손을 내려놓으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억지로 고생하면 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저가 이루시고, 또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면 --굴려버리면--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또 네 의를 빛같이, 정오의 환한 빛같이 하시리라 고 하십니다. 이 의는 우리의 정당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면--하나님께서 우리의 정당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밝은 빛처럼 명명백백하게 밝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7절입니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우리는 현실에 억울하고 답답한 문제를 다 주님께 맡기고 ---악한 자의 형통함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야합니다. 그리고 참고 기다려야합니다.
/여기서 잠잠히 기다린다는 말은 낙담과 절망가운데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과 기대감으로 하나님을 잠잠히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실이 아무리 절망스럽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미래의 기대감속에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불의한 현실을 가운데서도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결국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불의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현실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울에게 선을 베푸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에 욱여쌈을 당하는 것 같은 억울한 많은 일들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힘으로 이 세상을 이겨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불의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 상대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우리에게 불의를 행하고 상처를 준다 해도 여호와를 의뢰함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하나님을 믿는 선한 삶이 이 땅에서도 승리하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불의한 현실가운데서---하면서 살아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1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잠시 후에 하나님께서 모든 악인들을 내 삶의 주위에서 다 없어지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여기서 온유한 자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또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공의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자입니다.
결국 이 온유한 자가 이 땅을 차지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땅이란 우리가 보는 이 땅만 아니라, 우리가 얻게 될 사람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이 땅에서도 축복을 받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또 이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는 것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은 얻음으로 더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는 삶을 살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불의한 현실가운데서도 불의가 아니라 정의가, 악이 아니라 선이,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승리하게 될 것을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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