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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로마서

그러면 우리는 나으냐(롬3:9)

by 금빛돌 2016. 10. 1.


복음전도에 대한 사도바울의 두 가지 태도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의무감이고 또 하나는 자원감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먼저 의무감으로 전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사도바울은 복음을 의무감만으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자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5절에서 내가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16절에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7절에서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까?

그 이유는 인간의 의로는 하나님의 높으신 의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의에 올라갈 수 없는 인간의 상태를 성경에서는 불의라고 말합니다. 불의란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완전한 의를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보시기에 인간들의 불완전한 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불완전한 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불완전한 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은 지금도 이 불의한 인간과 세상에 대하여 진노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이 세상은 마치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아래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지옥의 불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고 계시다면 당장 저 북한의 김정은과 같은 불의한 사람들을 불로 심판해야하지 않는가?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의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1장에서 불의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간섭하지 아니하시고 그냥 내어버려두심입니다. 즉 인간이 죄를 짓고 완고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진노요 심판입니다.

2장에서는 하나님은 인자하심으로 불의한 자들이 회개하기를 오래참고 계신다고 했습니다(2:4). 또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에 대한 심판은 지금도 계속해서 쌓아놓고 계신다고 했습니다(2:5). 그러시다가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들의 은밀한 죄까지도 완전히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2:16). 그런데 이 심판은 언제라고 했습니까?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해 오실 때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김정이가 이 땅에서 잘 산다하더라도 결국 죽으면 그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역사와 세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심판과 진노를 쌓아놓고 계시다고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이 세상에는 인간의 불완전한 의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1)그래도 이 세상에는 착하고 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종교를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진노하고 계십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훌륭한 종교인이 있습니다. 또 성철스님과 같이 평생을 수도한 종교인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누구보다 더 착하고 의롭게 살았지 않습니까? 또 평생을 하나님이나 신을 찾으며 살았지 않습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종교인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8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사람들에게 하늘로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19절에서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종교심)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란 종교심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 그 어디를 가더라도 종교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라고 말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남몰래 미신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과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서는 인간은 그 어떤 신이라도 찾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마음가운데 희미하게 라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종교심을 주셨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20절에 보시면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을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모든 것들이 다 신의 작품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가운데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종교심을 주셨습니다. 또 자연만물을 통해서 희마하게나마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 언제 당신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습니까? 어떻게 당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알리시지도 않으시고 왜 우리에게 진노하시고 심판하십니까?”라고 핑계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가운데 종교심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게하시고 찾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자연만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종교심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인간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21. (종교심과 자연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인들이 부처상을 만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가운데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을 알만한 종교심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인간 석가모니의 우상으로 바꾸어 섬기고 있습니다.

/강화도에 가면 전등사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에 원숭이우상들이 있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원숭이우상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까? 그것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만한 종교심을 주셨는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동물 원숭이의 우상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이슬람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종교심을 주셨는데, 사람들은 자비의 하나님을 폭력의 알라신으로 바꾸어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왔기에 결국 모든 종교는 다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교다원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얼마 전에 어떤 기독교출판사에서 알라라는 책이 나왔는데, 이슬람의 알라신이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출발점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고 하는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만한 종교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처상으로 바꾸고, 마리아상으로 바꾸고, 원숭이상으로 바꾸고, 사람을 서로 죽이게 만드는 알라신으로 바꾸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종교심은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종교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종교는 원래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종교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 바꾸어서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 종교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종교로도 하나님의 높으신 의의 기준에 도달 할 수 없습니다. 성철스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평생을 수도만 했지만, 마지막 죽을 때 열반 송에서 그의 죄가 불교의 신화의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인 수미산까지 미쳐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수도를 했지만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종교로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또 인간이 가진 종교심의 한계가 무엇이겠습니까? 종교심을 가진 인간들은 결국 사람을 인간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깁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 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25. 이는 그들이(종교심을 가진 인간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사람)을 조물주(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렇게 하나님을 주신 종교심을 가지고 인간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되니까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동성애입니다.

26. 이 때문에(인간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여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동성애)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동성에 자체가 그릇됨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을 받은 것입니다)

작년 조계종에서 초파일에 누구를 초청한줄 아십니까? 김조광수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동성애 결혼식을 올린 사람입니다. 결국 동성애는 인간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에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합니다.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사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결국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롬1:28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2. 그들이 이같은 일(불의한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인 종교심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종교심을 가지고 하나님 대신에 다른 종교를 섬기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주신 종교심을 가지고 인간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종교심조차도 버리고,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불의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종교심을 주셨지만, 그 어떤 종교심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해야합니까?

이 복음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이 복음을 믿음으로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자랑하고 증거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래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정도로 도덕적으로 옳은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면 과연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라고 합니다.

여기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여기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132절에 나오는 불의한 사람들을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앞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런 불의한 일을 행하지도 않습니다.

또 그 불의한 일들을 옳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동성애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동성애와 같은 일을 하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1장에 나오는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정도로 도덕적이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사람들의 문제, 또는 이 사람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죄가 없다고) 핑계(변명)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서 판단하고 비난을 하고 정죄를 하지만, 결국 그 사람도 언젠가는 같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야당일 때 신랄하게 여당을 비판합니다. 그런데 야당이 여당이 되면 결국 같은 일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 많은 세대들을 신랄하게 비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결국 같은 일을 합니다.

/또 나는 롬1장과 같은 불의한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판단하는 사람의 가장 큰 죄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이 사람의 가장 큰 죄는 상대적인 옳음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1절에서 남을 판단한다는 말(크리논)은 그냥 단순히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남을 판단한다는 말은 상대방을 혹심하게 비난하고 심판하고(14:3,4,10), 정죄하고, 벌을 내리려고(벧전 4:5) 계속해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남을 판단한다(크리논)는 말은 베드로전서4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크리나이)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불의한 자와는 다르게 의롭게 살아가는 자이지만, 불의한 자에 대해서 하나님의 위치에 계속해서 정죄하고 심판하는 자입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실 때 첫째는 의롭지 못한 죄였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는 사랑이 없는 죄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불의한 죄가 더 큽니까? 사랑이 없는 죄가 더 큽니까?

모두 같은 죄입니다. 불의한 자나 그 불의한 자를 심판하고 정죄하는 사랑이 없는 자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같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결국 불의한 자를 판단하려는 자도 롬23절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또 남을 판단할 정도로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여기서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른 자는 롬21절에 나오는 남을 판단할 정도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어디 있습니까? 내 편의 논리입니다. 내 편, 내 당이면 무조건 정의롭고 옳습니다. 그러나 내 편, 내 당이 아니면 무조건 불의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니까 남을 판단할 정도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들을 판단할 정도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저 불의한 자들과 다르게 살기에 나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4. 혹 네(남을 판단할 정도로 의롭다고 하는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비판하고도 같은 죄를 짓는 죄, 남을 판단하면서 사랑이 없는 죄, 내 편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죄에 대하여)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남들과는 다르게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3)그런데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 세상의 여러 민족 가운데서 제일 지혜롭고, 또 의롭다고 생각하는 민족이 어느 민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대민족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상의 민족가운데서 1등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대인들이 인간 1등인 이유는 그들이 구약 시대 때 먼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인들의 죄에 대해서 롬217절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2: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분간하지만),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유대인)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롬 118-32까지는 종교심을 가진 사람들의 죄를 보았습니다. 또 롬 21-16까지는 이방인 중에서 남을 판단할 정도로 도덕적인 사람들의 죄를 보았습니다.

또 롬2:17-3:8까지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일 피할 수 없습니다.

4)그러면 여러분 교회를 다니는 우리는 과연 그들과 다른 사람들입니까? 결코 아닙니다(9).

그래서 9절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누구입니까? 이 글을 쓰는 바울입니다. 또 이 글을 읽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또 또 이 로마서를 읽는 우리 모두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종교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죄가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같은 죄가 있습니다.

/전도를 하러 가면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죄가 더 많지 않느냐고 합니다. 우리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예 맞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죄인이기에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필요 합니다고 말해야합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운데 그 어떤 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북한의 김정은을 비판하고, 동성애자를 비판하고, 세상의 불의한 자를 비판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도 그들과 같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복음이 제일 필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누가 제일 먼저 복음을 들어야합니까?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절대 우리의 행함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더 착하게 살아서 그것 때문에 구원받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착한 자의 구원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용서받은 자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 보실 때 예수를 믿는 나도 저 세상의 사람들과 죄인임을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세상에 복음이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가 직접 전할 수 없다면 교회로 인도하여 그들로 이 십자가의 복음을 듣게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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