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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일어나 함께 가자(아2:10-14)

by 금빛돌 2016. 6. 19.

오늘 읽은 이 아가서는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아가서가 단순히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과의 인간적인 사랑만을 이야기한다면 이 성경책에 기록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솔로몬왕과 술람미여인의 사랑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잠언서를 성소의 뜰에 비유를 했습니다. 또 전도서를 성소에 비유를 했습니합니다. 그리고 아가서를 하나님과 은밀한 만남의 장소인 지성소에 비유를 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지성소로 초청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 사랑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니다.

오늘 말씀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사랑의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보시고 나의 사랑이라 하시고, 어여쁜 자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무슨 사랑할 만 것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이것에 대해서 아가서 1장을 읽어보겠습니다.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여기서 보면 술람미 여인의 피부가 어떠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검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게달의 장막같다고 합니다. 게달의 장막이란 사막에 베드윈 족속의 천막을 말합니다. 우리가 tv를 통해서 보면 사막에 베드윈 족들의 천막이 나옵니다. 그것은 아주 검고 표면이 거칠고 낡은 천막입니다. 그러니까 술람미여인은 피부가 검을 뿐 아니라, 거친 천막과 같습니다.

//그러면 이 술람미 여인의 피부가 왜 이렇게 검고 거칠게 되었습니까? 원래부터 이 여인의 피부가 검고 거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술람미여인의 피부가 검고 거칠게 된 이유를 그 다음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이 말씀에 보면 술람미 여인이 피부가 검게 된 것은 햇볕에 많이 쬐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햇볕에 많이 쬐였습니까? 그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즉 술람미 여인의 오빠들이 자신들이 지킬 포도원을 지키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술람미여인은 자신의 포도원조차도 자치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오빠들이 많으면 여동생을 지켜 줍니다. 그런데 왜 이 오빠들이 자신의 포도원까지 지키게 해서 동생의 피부가 검고 거칠게 만들었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아마 그 오빠들이 친 오빠가 아니고 배다른 오빠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술람미여인은 가정에서 여러 가지 일로 어렵고 힘들 일을 격고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았을때는 도무지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술람미여인은 얼마든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절망가운데 살 수 있었습니다.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참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예루살렘 궁에 사는 여인들에게 어떻게 당당하게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까?

1:5. 예루살렘 딸들아(예루살렘의 궁에 사는 여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피부가) 검으나 (내면은) 아름다우니 (피부가) 게달의 장막(베드윈족의 천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아름답구나)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술람미여인은 절대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빅터 프랑클은 우리 인생을 절벽으로 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절벽으로 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에 대한 배경락 목사님의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살아가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세상천지에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사랑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밤새 혼자서 눈물 흘리며 유서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살 소망이 끊어지는 순간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1905~1997)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한때 그는 잘나갔습니다. 32살 나이에 자신의 클리닉을 개설할 때만 해도 그러했습니다. 무려 3만 명의 자살 위험성이 있는 여성들을 치료했으니 의사로서 긍지도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나치가 오스트리아에 침공하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마디로 끝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유대인이었던 그의 가족은 나치 수용소를 전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용소를 네 번이나 옮기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제일 먼저 늙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틸리는 베르겐-벨센 수용소에서, 어머니 엘사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동생 월터는 강제 노역 중에 사망했습니다. 누구도 살아갈 소망이 없는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용소 안은 실존적 공허그 자체였습니다. 거기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는 많은 동료 수감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자신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희망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도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삶의 의지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매일매일 힘들고 고단한 삶이지만, 생존 의지를 키워나가는 사람들은 살았습니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본능적으로 수감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살 소망을 찾았습니다.

그는 어떤 철학자가 했던 말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말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루 한 컵의 물이 배급되면, 반만 마시고 나머지로 세수와 면도를 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했습니다. 턱에는 여기저기 면도하다 상처가 났지만, 그의 눈은 삶의 의지로 불타올랐습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성공과 명예가 아니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운명에 위대한 용기로 맞서는 것이라고 빅터프랑크는 말합니다. 영화 라운드업에서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Abebe Bikila, 1932~1973)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2번 연속 우승하였습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 목이 부러지고, 척추가 손상되었습니다.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아베베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두 다리는 무력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두 팔이 있었습니다. 그는 팔의 힘을 기르며 양궁, 탁구, 눈썰매 등에 매진했습니다. 1970년 노르웨이 25km 휠체어 눈썰매크로스컨트리대회에서 그는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도 비극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올림픽에서 우승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내가 사고를 당했던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내가 성공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나는 나의 비극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이 두 상황을 삶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저 다른 사람을 따라 넓은 길로 가는 것을 성경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라 합니다. 힘들고 어렵다면서, 한 명의 진실한 친구를 찾기 힘들다면서 푸념만 하고 생각 없이 살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항상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찾으면, 당신은 지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은 또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대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빅터 프랭클)

이와같이 술람미 여인은 상황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술람미여인은 자신의 외모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술람미여인은 피부가 검고 거칠게 될 정도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신앙적으로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왕궁에 사는 여인들을 향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나는 비록 피부는 검지만 나의 내면은 아름답다 비록 내 얼굴이 거칠지라도 솔로몬왕의 휘장처럼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예루살렘 왕궁의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 솔로몬이 이 술람미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고난가운데 내면적인 아름다움과 기죽지 않는 당당함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술람미 여인을 예전에 보았던 여 청년이 생각이 납니다. 20년 전에 제가 어느 교회 청년회를 담당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교회 분위기는 나이가 30살이 되면 여청년들이 다 결혼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때 여 청년의 가장 친한 정희라는 친구조차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 청년은 교회에서 유일하게 남은 노처녀였습니다. 권사님들과 모든 교인들이 그 여청년의 결혼을 걱정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청년은 전혀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청년회에 빠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그때마다 후배들이 놀립니다. “누나 아직 결혼 안 했어 아직 혼자야 왜 아직 청년회에 와이렇게 말하면 천연덕스럽게 왜 난 청년회 오면 안 돼라고 하면서 오히려 농담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다가 다니던 직장에서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매를 위로해주려고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자매는 지난주 들었던 말씀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리며 말씀의 은혜를 저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셨군요라고 하면서 지금 너무 마음이 기쁘고 평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를 아르바이트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그때 그 자매의 피부를 보니까 정말 오늘 말씀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의 피부와 같이 게달의 장막과 같았습니다. 화장을 해도 화장이 먹지 않는 피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흑기사와 같은 청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매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가 무엇이 좋아서 결혼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청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그 자매와 만나는 순간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그 자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여자가 어떻게 얼굴이 저렇게 되기까지 열심히 살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에 다크서클과 여드름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신앙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생 사랑해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 청년이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 가정세미나를 하러왔던 서상복집사님입니다. 영천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지금은 이제 부산에서 가정 사역 전문가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매일 매일 예수님 다음으로 자신의 부인을 제일로 사랑한다 고백하고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보시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결코 우리의 외모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고난가운데서라도 지키는 신앙의 아름다움입니다. 고난 가운데 성숙된 내면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보시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아가서 22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하나님은 온실 속에서 피는 수만의 장미보다 가시나무가운데 자라는 한 송이의 백합화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오래전에 알던 어떤 자매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중학교 선생님인데 교단에서 갑자가 쓰러졌습니다. 병원에 가보니까 소뇌수축증이라는 희귀병이었습니다. 결국 학교 강단에서도 사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목사님 왜 우리 형제들 6명이 다 멀쩡한데 왜 저만 이런 일을 당해야합니까? 저는 그 문자를 받고 며칠 동안 그 자매를 위해서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나만 이런 고난을 격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줄 아십니까?

나는 가시밭의 백합화를 보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 전에 제가 제 블로그에 쓴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데 고통을 주셨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까 이해가 된다. 만일 나에게 그런 고통이 없었으면 내가 과연 더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을까? 만일 나에게 그런 고통이 없었으면 하나님의 은밀한 사랑의 침소에 들어갔을까? 고난과 고통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장이었다. 나는 그 초청장을 받았을때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당신의 은밀한 사랑의 골방으로 나를 부르신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야 말로 이 모든 고난과 고통의 이유였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 우리의 신앙이 더 아름답게 성숙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 우리의 인격이 좀 더 예수님을 닮는 인격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술람미 여인처럼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내가 고난을 받으나 나의 내면은 아름다우며, 비록 내가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은밀한 사랑의 지성소에 살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사랑하는 우리에게 어떤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2:10.(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기서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절대 우리 혼자서 일어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 우리 인간들끼리 서로 힘을 합해서 함께 일어나자는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해 주셔서--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일어나 함께 가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과 함께 일어나 가자고 말씀하십니까?

이제 겨울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비도 그쳤기 때문입니다. 지면에는 꽃이 피기 시작하였고, 새가 노래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고통의 시간인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봄이 되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먼저 자연적으로 봄이 되었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봄이 되었다는 말은 자연적으로 봄이 되었다는 말만 아닙니다.

여기서 봄이 되었다는 말은 이제 우리 인생에 있어서 겨울은 가고 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7:14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형통한 날만 있게 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은 곤고한 날만 있게 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십니다. 자연에도 봄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봄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까?

만일 지금 우리 인생이 겨울이라면 그것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인생이 겨울이라면 반드시 우리 인생에 봄날이 온다는 것입니다-이 사실을 믿으기 바랍니다(같이 합시다-내 인생의 봄날은 온다-주여 믿습니다).

인생의 봄날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열매가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지에 눈이 녹아 있습니다. 가지에 물이 올라있습니다. 이제 꽃봉오리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열매가 없지만 생명을 머금고 있기에 언젠가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동안 겨울이었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사업에도 봄날이 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인생의 겨울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여러분 인생에도 봄날이 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인생에 봄날을 오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일어설 수 있습니다.

---또 봄이 되었다는 말은 신앙에 있어서도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로이든 존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부흥을 주시기 전에 먼저 영적인 침체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부흥이전에 영적 침체를 주십니까?

영적 침체가운데 우리에게 영적 목마름과 갈급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영적 목마름과 갈급함을 통하여 영적 봄날을 주십니다.

//이제 영적인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제 새로운 성령의 기운을 베풀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파도파기를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시려 굳이 나 혼자서만 내려가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시려 할 때 우리가 힘을 합해서 같이 일어나야합니다.

//이번에 81415일 전교인수양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 수양회 주제가 일어나 함께 가자입니다. 주제찬송은 찬송가 428장 내영혼의 햇빛비치니 입니다. 우리교회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전교인수양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 수양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모두가 다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에게 더 큰 영적 부흥을 베풀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은 우리의 안락한 보금자리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대신에 자신의 가정 속에 갇혀서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아이만 붙들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대신에 tv나 오락에 갇혀서 나오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대신에 침실의 세계에 갇혀 있습니다. 어려워도 잠만 잡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대신에 나의 자아라고 하는 은밀한 곳에 나 자신을 감추고 있습니다. 너무 힘이 들기에 나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곳에서 안식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안락한 곳에서 예배의 처소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배의 처소에서 우리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소리를 듣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형식적으로 예배의 자리에만 나와서 우리의 얼굴만을 내밀고, 소리만 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은밀하신 지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주님을 만나는 희락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봄날이 되었으니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육신의 보금자리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의 부르짖는 음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에 다 응답하시는 동부제일교회 아름다운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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