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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가시 감사(고후12:7-10)

by 금빛돌 2016. 7. 1.

모든 사람에게는 다 하나씩 아니면 그 이상의 인생의 가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내 가시는 당신 보다 더 크고 힘들다고 말하지만 가시가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가시는 다 고통스럽고 어렵습니다. 내게 있는 큰 가시의 고통이나-다른 사람에 있는 작은 가시의 고통이나 느끼는 고통은 모두 같습니다. 그래서 가시의 고통이 나는 크다 너는 작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가시의 고통은 모두 같습니다.

또 이 가시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한 순간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가시가 없을 때는 죽은 후입니다. 죽을 때 까지 우리의 삶의 가시는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시간에 사무엘하를 보고 이제 열왕기상을 보고 있습니다. 사무엘하에서 다윗은 마지막에 그의 아들 압살롬을 통해서 큰 고통을 격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고통이 사라지게 되니까 삼하22장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1장을 보면 이제 다윗은 나이가 들어서 이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 마지막에 그의 마지막 남은 아들인 아도니아의 반란을 통한 고통을 격습니다.

그래서 시편119: 75절에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게 하심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은 너무나 성실하시고 부지런하셔서 다윗에게 어느 한 순간도 다윗을 가만히 두지 아니하시고, 성실하게 그를 괴롭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렵고 힘든 한 가시를 통과 합니다. 그런데 또 그것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가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가시는 우리가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가시가 있습니다.

/또 우리의 삶의 가시는 단 한가지로만 말할 수 없고 너무나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로 인한 가시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가시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탄이 주는 영적 시험(낙심)의 가시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이와같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시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바울도 우리와 같은 인생의 가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육체의 가시라고 말합니다.

이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두통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바울을 끊임없이 죽이려 했던 유대인의 무리들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안질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간질병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유력한 두 가지 견해는 안질과 간질병 입니다.

안질에 대해서는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난후 그의 눈이 상하였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또 갈44절에 보면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그의 눈에서 이상한 것이 나온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갑자기 발작 증세를 일으킨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시험거리였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육체의 가시가 100프로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7절에 보면 바울은 그것을 사단의 사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말은 바울에게 있어서 이 육체의 가시는 인간적으로 말하면 살 소망까지 끊고 싶은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려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있어서 이런 가시가 잇다는 것은 바울 개인적으로, 사역적인 측면에서 치명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8절에 보면 이것에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주께 세 번씩이나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세 번 기도 했다는 것은 단순히 40일 특별기도회와 같은 것을 세 번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이것을 없게 해달라고 세 번 기도했다는 것은 바울이 할 수 있는 모든 기도를 다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전혀 기도의 응답의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9절에 보면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심지어 이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를 두고 이제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미에 왜 가시가 있느냐고 불평합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가시에 장미를 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입니까?

여러분들은 장미에 가시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원망하시고 불평하십니까?

아니면 가시 속에서도 장미를 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일 년에 감사절이 두변씩 있습니다. 맥추감사절 상반기를 돌아보면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상반기를 돌아보면 우리의 삶 가운데는 장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가시도 있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장미에 가시를 보느냐 아니면 가시 가운데 장미를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오늘 맥추감사절로 드립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이 없이--계시가 없이 우리 자연인의 생각으로만 생각하면--우리는 항상 우리의 삶의 가시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자연적인 생각대로 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자연적인 본성대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가시를 볼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시각에서 본다면--우리는 오히려 가시 속에서 장미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처럼 우리의 가시를 두고도 --하나남께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고, 또 심지어 바울처럼 그 가시를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속에 가시를 통해서도 어떻게 감사할수 있는 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우리의 삶 가운데 끊임없는 가시는 우리가 한 순간도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안전책 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멸망 직전의 이스라엘이 나옵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이 계속되는 어려움을 당하다가 서서히 멸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명하기 직전인 bc8세기 때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정치 경제적 종교적으로 가장 크게 번성할 때 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큰 고통과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생존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살까라고 하는 번영이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47절 저희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하리라고 합니다.

55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 교만의 죄악을 인하여이스라엘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가지로 넘어지리라

즉 이스라엘은 아무 어려움이 없이 가장 큰 꼭대가에 올라가 있다가 교만하여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는데, 다윗에게 성실하게 고난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는데, 왜 다윗에게 한순간도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고난을 주셨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이란 그 어느 누구도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지 않습니다. 극심한 고난가운데 있다가 잠시 그 고난이 없어지면 인간은 금방 교만하고 나태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성실히 사랑하심으로 다윗에게 평생 끊이지 않는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윗으로 평생 한 순간도 교만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왜 우리에게 그렇게 끊임없는 고난을 주십니까? 그 이유는 그 고난이 없으면 절대 하나님 앞에 간절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에게 이런 고난을 당하게 하신 이유는 고난을 통해서 더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항상 생각해야합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작은 가시들이 끊임없이 잇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없이 무조건 잘되고 높이 되다가--교만하면 한 순간에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 삶의 가시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어느 한순간도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안전책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그 가시들은 여러분들의 삶의 큰 위기를 막아주시기 위한 안전책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가사를 허락하심으로 어느 한순간도 교만하지 않도록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또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시들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나아가게 하기위한 나침반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가시가 있을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느냐입니다.

7장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다고 합니다. 비둘기는 항상 자기가 돌아갈 집으로 돌아가야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어리석은 비둘기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유다와 이스라엘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애굽과 앗수르로 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이 의지햇던 애굽과 앗수르에 의해서 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 가시가 잇을 때--그 가시 속으로 들어갑니다.

또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가시가 있을 때--하나님께로 가기 보다는 사람을 의지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의 가시가 잇을 때--그 자신의 세계속으로 들어갑니디.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목적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시들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이나 세상이나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하나님께로 가기 위한 나침반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시가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께 더 기도하고--하나님께 더 의지해야합니다.

-그러면 그 가시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향한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남께서는 가시 속에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더 선한 손길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마지막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온전하게 임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9절에 보면 내 능력이란 누구의 능력을 말합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28장에 보면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권세가 어떻게 우리 안에서 온전히 다 나타내고 발휘될 수 있습니까?

--육체의 가시로 인한 우리의 약함 속에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능력과 권세를 온전히 발휘하고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우리가 인생의 가시들로 인해서 할수 없다고 하는 부분에서 온전히 역사하십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생애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내가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이는 그 약한 곳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려 함이라--내가 약한 것들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

즉 사도바울이 가졌던 모든 능력은 육체의 가시로 인한 그의 약함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강한데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면 결코 온전히 주님께 영광이 되지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육체의 가시로 인해 약하고 할 수 없는 그곳에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오직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며--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참 신기한 것은 한때 하나님게 스임받았던 종들이 다 이런 약함을 가지고 있었던 분입닏-한경직 목사님-김창인 목사님 옥한흠 목사님 같은 분들은 젊었을때 페병을 앓았던 분들이었습니다--스펄전 목사님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고 또 평생 통풍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격었고, 발작이 일어날때마다 지옥에 갔다 오는 고통을 격었고, 결국 통풍 때문에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칼빈은 다 아시디시피 25가지의 병을 가지고 살면서 걸어다는 병원이라고 불려졌습니다-웨슬레의 부인은 세게 3대 악처중의 한명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젊은 시절 제일 좋아했던 프란시스 쉐이퍼는 암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고, 기장 측에서 제일 큰 교회를 이루었던 별세신앙을 부르짖엇던 이중표 목사님은 평생 암과 투병하시다가 암으로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들어보았습니다-하나님 제발 내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도 좋사오니 내게 이 가시를 제거해주십시오--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시는 우리 마음대로 할수 없는 것입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시들에 대해서 바울처럼 오히려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종은 칠때 종이 되고, 장작은 타오를때 불인 것처럼 -우리의 삶속의 가시는 감사할 때 온전한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속에 뽑아버리고 싶은--정말 사탄의 사자처럼 느껴지는 가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가시를 가지고 원망하지 말고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100만번 감사라는책을 썼다고 합니다-그런데 그 책의 내용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감사합니다-이 말만 백만 번적혀있었다고 합니다--결국 그 책을 출판할 출판사가 없어서 출판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사업가의 마음을 이해야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가시가 있습니가 어려움이 있습니까 거림돌이 있습니다-염려가 있습닏--무조건 하나님께 감사 감사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감사속에서 여러분들을 더 겸손하게 만드시고, 하나님께로 나가게 하시고---또 예수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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