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육기관수료예배를 맞아하여 여러분들에게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는 제목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슬픔으로 인한 울음이 계속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슬픔과 울음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슬픔의 인생으로 운명이 지어졌다고 오해를 합니다. 또 인생에 있어서 형통으로 인한 기쁨이 계속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형통과 기쁨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기쁨의 인생으로 운명이 지어졌다고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절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시면 인생의 저녁에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그것이 절대 영원하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저녁이 있으면 아침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에 울음이 있으면 반드시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영원한 슬픔이고 내 인생은 영원한 울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에 저녁이 기숙할지라도 반드시 우리 인생의 아침이 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아침에는 반드시 우리에게 기쁨이 올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편에서 다윗은 인생의 저녁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인생의 저녁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울음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인생의 아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아침의 기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여러분 이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의 삶이 저녁이었습니까? 그래서 울음이었습니까? 그렇다면 내 인생에도 아침이 올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같이 예배를 드리는 주일학교 학생들도 그동안 여러분의 삶이 저녁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아침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편의 말씀을 통해서 다윗이 왜 인생의 저녁을 경험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 다윗이 어떻게 인생의 저녁을 벗어나 아침을 경험하게 되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다윗이 왜 인생의 저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가 6절과 7절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6.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 7.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인생의 저녁을 경험하게 된 이유는 형통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형통과 편안은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항상 형통하면 교만합니다. 편안하면 교만합니다. 이것은 마치 공식과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교만입니까?
“내게 무엇이 있으니, 나는 이제 이것 때문에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가난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돈을 조금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내게 돈이 조금 있으니 이제 이것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어려움이 없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내가 낮은 자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내게 복을 주심으로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제 내가 이런 자리를 차지했으니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려움이 없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다윗도 결국 형통할 때, 편안할 때 이 교만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교만해지니까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축복을 받아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되자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방여인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이방종교도 받아들이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제일 조심하고 경계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가난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낮은 자리에 처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가 제일 조심하고 경계해야할 것은 “잘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잘 한다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나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자를 높여주시고, 교만한자를 대적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에게 은혜를 거두어가신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형통하게 되어 교만하게 되자 무엇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7.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은혜)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은혜를 거두어가시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형통하게 되어 교만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거두어가십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지켜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형통하여 교만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태산보다 더 큰 은혜를 거두어가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거두어 가신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두려움입니다. 불안입니다. 근심입니다. 영혼의 평안과 기쁨을 잃어버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림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잃어버리면, 그때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합니다. “오 하나님 정말 제가 교만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제 마음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라고 회개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절대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잃어버려도 절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언제 교만의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언제 교만의 죄를 회개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죽음과 같은 고통을 주실 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형통하여 교만하고,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고통을 주셨습니까? 2절과 3절입니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죽을 병에서 나를 고치셨다고 합니다. 나를 살리사 무덤 즉 죽음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고 합니다.
또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기서도 내가 질병으로 무덤 즉 죽음에 내려갈 때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며, 내가 죽어서 흙이 되면 내가 어떻게 주를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형통하여 교만에 빠지게 된 시편기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죽음에 내려가는 질병의 고통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에게 왜 인생의 저녁이 왔습니까?
형통함으로 인한 교만 때문입니다. 그 교만으로 인한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어두운 저녁이 왔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인생의 어두운 저녁을 극복하고,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까?
/올 한 해 여러분들의 인생이 어두운 저녁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새해에 어떻게 인생의 밝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울음이 변하여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슬픔이 변해서 기쁨의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인생의 저녁이 아침이 될 수 있습니까?
첫 번째는, 교만을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면 아침을 맞을 수 있습니다.
본문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여기서 보면 어떻게 인생의 저녁이 오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교만으로 인한 하나님의 노염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생의 아침이 오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은총 때문입니다.
/교만으로 인한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교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가 잠깐이고, 그의 은총은 영원하다고 하니까, 우리가 교만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노하셔도 잠깐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 은혜를 베푸신다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도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노염이 잠깐이고, 하나님의 은총이 영원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철저한 회개입니다.
/출애굽이 20장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다른 우상을 더 사랑하는 자에게 삼사 대까지 하나님의 진노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 삼사 대까지 진노하시다가 무조건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우상을 버리고 철저히 회개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 하나님은 잠깐의 진노를 버리시고, 영원한 은총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우리의 인생의 저녁이 아침이 될 수 있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면 됩니다. 혹시 내 삶이 형통함으로 교만했던 부분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깨닫고 빨리 돌이키면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은혜스럽고 가장 축복된 단어는 회개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든지 형통하면 잘되면 언제든지 교만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우리 교만한 우리 자신을 깨닫고 언제든지 겸손하게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깐의 노염을 푸시고, 천대까지의 영원한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하겠습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노염은 잠깐이고, 은총은 영원합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떻게 우리 인생의 저녁이 아침이 될 수 있습니까?
둘째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침을 맞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어두운 저녁에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2절과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보면 다윗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어떻게 고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또 10절과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여기서도 어떻게 주님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면,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띠우게 하셨습니까?
그것도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인생의 저녁이 아침이 되게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의 저녁에 가만히 있으면 운명적으로 아침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막연하게 “내 인생에 저녁이 있으면 언젠가는 아침이 될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절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의 저녁에 하나님께 울부짖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내 인생이 저녁의 인생에서 아침의 인생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내 눈에서 눈물을 딱으시고, 내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의 찬송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으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해야합니까?
그 이유가 1절에 있습니다.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인생의 저녁에서)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기서 보면 다윗은 인생의 저녁에서 끌어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 사탄 마귀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 삶이 원수 사탄 마귀가 기뻐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내가 인생의 저녁에서 나와서 아침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일 나 자신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저녁을 운명으로 생각하고 그냥 슬픔가운데서 살아가면 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뭐 그리 답답할 것이 있느냐, 그냥 슬프면 슬픈대로 살아가고, 좋지 않으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면 되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기필코 인생의 어두운 저녁에서 나와야합니까? 왜 우리가 슬픔과 눈물에서 나와서 기쁨과 찬송으로 살아가야합니까? 우리가 우울하고 낙심가운데 살고 슬픔가운데 살면 우리의 원수 사탄 마귀가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쁨과 감사와 찬양 가운데 살아야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삶을 보고 원수 사탄이 기뻐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이 저녁에서 끌어내서 아침이 되도록 하나님께 울부짖고 기도해야합니다.
//저는 교회를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교회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흐르는 교회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지금까지 온 교회입니다.
무엇보다 이 교회는 어떤 사람의 이름의 영광이 아니라 영화로우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절대 이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기필코 다시 일어서야겠습니다. 정말 우리의 아픔이 이제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괴로움이 하나님 앞에서 기쁨의 찬송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부흥을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아침을 주옵소서. 그래서 더 이상 사탄이 비웃는 교회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 교회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 한분만 영광을 받아주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예배를 드리는 학생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학생 여러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생 여러분 내가 누구입니까? 내가 어떤 존재입니까?
따라하겠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다”
/지난주에 장동건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마이웨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장동건이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일본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본군에 끌려갔지만, 그는 “나는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의 최고의 마라토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본군에 끌려가서도 일본군이 되지 않고 매일 마라톤 연습을 합니다. 또 소련군에게 끌려가서 이제 소련군인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말하기를 “나는 소련군이 아니다. 나는 조선 최고의 마라토너다”라고 하면서 혹한의 시베리아에서도 마라톤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독일군에게 끌려가서 독일 군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나는 독일군이 아니라 조선의 최고의 마라토너다”고 하면서 전장 속에서도 마라톤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포탄에 맞아서 죽으면서까지 일본 친구에게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면서 반드시 살아서 내 이름으로 마라톤을 해 달라고 합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는 살아가는가?” 를 생각했습니다.
학생 친구 여러분 나는 누구입니까?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합니까?
학생 친구 여러분?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거룩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만일 내 이름 내 명예 내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나는 아무렇게나 살아가도 됩니다. 그냥 슬픔과 괴로움을 운명처럼 여기며 자포자기하며 살아가도 됩니다.
그런데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위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의 삶이 혹 어두움 가운데 있습니다. 슬픔 가운데 있습니까? 낙심가운데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울부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는 인생의 어두운 밤에서 벗어나 내 인생에 밝은 아침을 주옵소서. 내 삶 가운데 우울과 낙담과 슬픔이 변하여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친구들의 삶이 원수 사탄 마귀가 기뻐하는 삶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우리 인생의 저녁이 아침이 될 수 있습니까?
세 번째는, 인생의 저녁에도 감사를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야 아침을 맞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은 인생의 저녁에도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마음)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우리는 우리인생의 아침이 와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의 저녁에도 감사를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면 도무지 감사할 것이 없는 인생의 저녁에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의 신들과 다른 거룩함입니다. 세상의 신들은 모두 죽은 신들입니다. 운명의 신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신들은 우리 인생의 세모나게 네모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의 신들과는 다른 지금도 살아계시고 인격적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의 인생을 저녁에서 아침으로 만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프고 괴롭고 눈물을 흘린 만큼 그 모든 것을 얼마든지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되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인생의 저녁을 울음으로 보내고 계십니까?
세상의 신들과는 다른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저녁에도 우리고 하여금 절대 잠잠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감사하게 하시고 찬송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인생이 저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만을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그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인생의 아침이 올 것입니다.
내 인생이 지금은 울음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곧 기뻐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인생의 어두움이 아무리 깊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밝은 아침을 주 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 여러분 학생 여러분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더욱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명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저녁에는 울음이 있을지라도 아침에는 반드시 기쁨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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