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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행복한 인생(창45:9)

by 금빛돌 2014. 12. 31.

제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인생은 아름다워 이지만그 영화의 내용은 전혀 아름다운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귀도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독일군 나치에게 잡혀서 딸과 함께 죽으러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딸아 지금 우리는 전쟁놀이를 하고 있단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전쟁놀이에게 말을 잘 들으면 1000점을 따게 된 단다. 그래서 독일군에게 잡혀 가는 상황도 아이는 전쟁놀이로 생각합니다. 독일을 군을 피해서 숨을 때도 전쟁놀이를 하듯이 숨습니다. 그때 아이가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아버지가 점수를 줍니다. 마지막에 결국 그 아버지는 독가스실로 들어갑니다. 그때도 아버지는 이것 전쟁놀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독가스실로 들어가면서도 놀이를 하듯이 웃으면 들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독가스실에서 죽게 됩니다. 분명 내용은 비극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제목은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제가 잘 아는 어떤 여전도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항상 웃는 분이십니다. 연세가 거의 60이 되셨는데도 항상 웃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보면 전혀 어려움이 없이 사신 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종이 박스로 바람을 막아주는 그런 곳에 아이들과 같이 지낸 적도 있다고 합니다. 또 반찬이 없어서 간장으로 반찬을 대신할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항상 웃으면서 얘들아 우리 집에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이야, 이렇게 바람도 막아주지 안니”. 또 그러면서 아무 것도 없는 밥상위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애들아 오늘은 어떤 반찬을 먹을까? 사랑반찬을 먹을까 희락반찬을 먹을까 화평반찬을 먹을까 오늘 하나님께서 너무 맛있는 반찬을 많이 주셨구나이렇게 하면서 아이들을 길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자녀들이 한 자녀도 어긋난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먼 곳에 있지만,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효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까? 불행한 인생입니까? 우리 인생이 행복하냐는 아니냐는 내가 살아온 객관적인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내가 좋은 환경에 살았다 하더라도 내가 불행하게 해석을 하면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살았더라도 행복하게 해석하면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운 인생인가 아닌가 행복한 인생인가 아닌가는 객관적 사실에 있지 않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도 해석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의 사건과 일들과 아픔들을 격습니다.

때 우리가 진정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모든 사건들과 상처들과 아픔들을 세상적이고 인간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해야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단순히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만 해서는 감사하고 찬송해서는 되지 않습니다.그래서 교회에서는 감사하고 찬송을 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원망,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진정한 감사와 찬송은 가정에서 또한 우리의 삶속에서 나와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두고 하나남께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을 인간적인 관점이 아니라 신앙적 관점에서 해석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라의 삶속에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한해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행복하고 복된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행복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주권의 관점에서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

시편 166절에 보면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실제로 다윗이 있었던 그 땅 자체가 아름답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왕으로 제일 먼저 통치하게 하신 곳이 헤브론 땅이었습니다(삼하5:3-5). 그런데 그 헤브론 땅은 이스라엘의 열 정탐꾼이 가나안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악평을 했던 땅입니다. 또 수14장에서 갈렙이 사람들이 들어가기 싫어하는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라고 했을 때 그 산지가 바로 헤브론 땅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그 헤브론 구역을 아름다운 곳이라고 합니까? 그것은 단순히 환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윗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모든 것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십니까?

우리가 단순히 환경만을 바라보고, 또 남들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처럼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내게 주신 것이라고 해석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주신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아름다운 구역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아내나 남편을 볼 때도 이렇게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연에 의해서 만났다고 하고, 또 단순히 내가 좋아서 만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내게 싫으면 아내라도 남편이라도 싫어 보이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내 남편을 만나게 해주시고, 내 아내를 만나게 해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원토록 내 남편이 아내가 아름답데 보입니다.

/어떤 여 집사님이 갑자가 장동건을 봤냐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누구 이야기인줄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 신랑이 장동건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 장동건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게 보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어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교회입니까? 다른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내게 주신 이 교회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교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원망하고 불평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짓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못하는 죄고, 원망 불평하는 죄다. 그것은 천국으로 달음질하는 발을 상하게 하는 바위와 같다. 원망 불평의 악한 생각이 기승을 부리는 한 그 어떤 낙원도 존재할 수 없다. 거기서 풍기는 악취는 동산의 모든 꽃들에게 독을 줄 뿐이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으로 해석할 때 거기에 참된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도 우리에게 이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사람은 요셉의 형들입니다. 그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고, 또 요셉을 애굽으로 팔았던 사람들입니다.

또 요셉은 어떻습니까? 요셉은 형들 때문에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고향에서 좇겨나서 이방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만일 이 장면에서 요셉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해석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왜 형님들이 나를 팔았습니까? 내가 형님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나를 이리로 보내셨다고 해석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들 앞서서 나를 애굽으로 인도하셨다고 해석합니다.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판 것을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또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간 것도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또 감옥에 가게 된 것도 떡 맡은 관원을 만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또 떡 맡은 관원을 만나게 된 것도 그를 통해서 애굽 왕 바로를 만나고, 꿈을 해석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합니다.

---요셉이 이렇게 인생을 하나님의 주권의 관점에서 해석하니까 그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또 요셉은 형들에게 대한 상처나 미움의 감정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이렇게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할 때 우리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고, 또한 감사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한 때 내가 비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전에 대장금이라는 드리마를 보면서 많은 은혜와 위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나를 장금이로 생각하고. 장금이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결국에는 작가는 장금이를 잘되는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에 나도 저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지만 절대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 작가는 반드시 주인공을 살려주고--나중에 더 잘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을 바라볼 때 이렇게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작가가 되시고 주관자가 되십니다---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비극의 주인공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절대 우리 인생을 두고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인생을 잘되게 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편136편에 보면 시편기자는 매절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고 있습니다. 26절에서 26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편기지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모든 세상과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데, 그 하나님은 결코 나쁜 분이 아니라.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어제나 오늘이나동일하시고 또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선하심과 인자심을 믿는다면-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 가정이나 작장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격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때도 모든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을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주관하심을 더욱더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항상 낙심하라 기도를 중단하라--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너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니라--이런 사탄의 음성에 절대 귀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시고, 쉬지말고 기도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또 우리가 어떻게 우리 인생을 신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까?

2)우리가 우리 인생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우리는 성화의 관점에서 우리인생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도 잃어버리고, 또 자식도 잃어버리고, 또 육신의 건강도 잃어버렸습니다. 욥의 아내는 욥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2:9).

또 욥의 친구들은 욥의 인생을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인과응보의 관점-죄의 관점에서 인생을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욥이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욥의 인생을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어떻게 인생을 해석하고 있습니까?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로다

욥은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주권의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또 욥은 “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욥이 자신의 인생을 성화의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단순히 죽어서 천국가고, 또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만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를 더 아름답게 성화시키셔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 선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잘되는 선도 있지만, 문맥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게 하심으로 우리를 정금같이 다듬으시고 빚으셔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30:20).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예수님을 닮은 과정으로 바라보고 해석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이나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깍으시고 낮추셔서 예수님의 형상을 닮게 하신다고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우리 인생이 힘들어도 욥처럼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 인생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 할 때 우리 인생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

3)또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 인생을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이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만나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느끼고 체험하는 데는 세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저 산속에서 도를 딱고 있는 할아버지처럼 멀리 느껴지는 단계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그 하나님이 나의 삶과는 저 멀리 산속에 계시다고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진노하시고 벌주시고 꾸짖는 하나님으로만 느끼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지만--하나님이 너무 무서워서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좋아하지는 않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이제 저 멀리계시는 것 같고--내게 두려움만을 주는 하나님께서 이제 내 삶의 아버지처럼 느껴지는 단계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다---고백하고 느끼는 단계입니다-이때는 하나님이 무섭기만 하지 않고 내게 편안하고 좋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할 때 내 모든 걱정 근심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우리에게 정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처럼 느껴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내 친구처럼 느껴지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친구가 무엇입니까? 친구는 사랑하는 관계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도 이 세상의 모든 것(명예 권세 성공 비전 일)보다 하나님을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같이 됩니다. -

-날마다 하나님께 내 삶속에서 내게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내 삶속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한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주님을 내 삶속에서 알아가는 이 기쁨을 통해서 이 세상의 즐거움과 기쁨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때 우리 인생은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한 해동안 모든 것은 신앙의 관점으로 해석하셔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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