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리차드 포스터의 이름 없는 삶이란 기도를 매일 암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절대 유명하게 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그 만족 속에 참된 깊이를 깨닫게 하옵소서.
높아져 평안을 잃어버리거나 남들에게 눈치를 보는 그런 삶을 살지 말게 하옵소서.
언제나 주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내세에 소망을 두는 그런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내가 하루라도 빨리 없어져서 주님의 영광을 볼 날을 고대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작은 영혼에게 내 삶을 전부 바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 기도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절대 유명하게 되지 않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저는 예전에 한 때 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라고 속으로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매일 마음속으로 하나님이여 저로 하여금 절대 그 어느 누구에게 라도 내 이름이 알려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이여 나로 절대 유명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사람이 유명해지고, 이름이 알려지면 그 사람은 금방 교만해집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냥 착각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알려지고 유명해져서 사람이 교만해지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한 때 이름만 말해도 청년들이 구름떼처럼 모이게 했던 목사님은 지금 성추행문제로 노회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또 찬양사역으로 인기를 끌었던 목사님은 몇 천억 교회를 짓고, 나중에 논문 표절과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들은 한때 정말 유명한 목사님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차세대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라도 이름이 올랐던 목사님들입니다. 또 많은 목사님들이 그분들처럼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 목사님들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고, 예수님의 제자라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정말 부끄러워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바울은 보시기 바랍니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여기서 사도바울은 지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어느 누구에게 권면을 하려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사도바울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또 그가 지금 무엇을 자랑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어떻게 말합니까?
“그러나 내게는” 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 다음으로 유명한 사도바울 자신에 관한한 간증이며 고백입니다.
그는 무엇을 간증하면 고백하고 있습니까?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합니다.
사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인간적으로 자랑할 것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빌3:5절에서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겼고, 또 배설물로 여겼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나니까,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고 나니까 그 모든 것이 다 배설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오직 내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는 켤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저도 한때는 언약이다 하나님나라다 성경신학이다 성경의 중심주제다 하면서 제가 성경을 누구보다 더 잘 꿰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그 모든 성경의 주제들 중에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제일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세상에 대한 욕망과 인간적인 모든 자랑을 죽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예수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에 대하여 나의 이름을 자랑하려고 하는 마음의 죽음을 뜻합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가 세상에서 유명해지려고 하는 마음의 죽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 안에 있는 모든 인간적인 자랑들을 죽게 만들고, 오직 내안에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내 안에 세상적인 모든 자랑들이 죽었다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날마다 우리를 어떻게 유혹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에게 유혹을 했던 것처럼 네가 내게 절하면 천한 만국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네게 주겠다라고 유혹을 합니다(마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을 하십니까?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으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절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준다고 하는 것은 사탄의 시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 대신에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추구하는 것들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탄은 날마다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주겠다, 내가 너를 유명하게 하겠다, 네 이름을 높여 주겠다 라고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탄은 우리에게 종교적인 명성의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서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또 높은 명성을 가지기를 원하는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운데서는 세상의 명성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이제 신앙의 세계 안에서 내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사탄의 유혹입니다.
마4장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이 성전꼭대기에서 시편91편의 말씀을 가지고 뛰어내려서 전혀 그 발이 상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 위대한 분이시다” 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순식간에 유명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예수님이 성전에서 뛰어내려야합니까?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단순히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엄청난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기적들은 사람들을 사랑하기위해서 베푸신 기적들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무의미하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베푼 기적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과 또 신앙의 세계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는 모든 것은 다 사탄의 유혹이고 시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세상의모든 욕망들이 죽었지만, 사탄의 미혹과 시험들 때문에 우리는 매일 이렇게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로 절대 이 세상에 유명한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내가 이 세상에서 철저히 이름없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철저히 목견의 삶이 되어야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자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양떼들을 목자이신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목견-즉 목자의 개입니다. 그런데 만일 목견이 양들 앞에서 나타나 인기를 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양들에게 인기를 끄는 목견은 결국 양떼들을 자기 양떼로 만들어서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히 목견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부르짖어서 사람들을 내 앞으로가 아니라 예수님 앞으로만 인도하는 목견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두 번째로,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그 만족 속에 참된 깊이를 깨닫게 하옵소서.
높아져 평안을 잃어버리거나 남들에게 눈치를 보는 그런 삶을 살지 말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절대 유명해지지 말아야합니까? 유명해지면 반드시 교만하게 됩니다. 또 교만하면 무엇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혼의 평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만하여 높아져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잃어버리거나 그래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그런 삶을 살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 131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와 같습니다.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우리가 생각할 때 다윗은 큰 꿈을 꾸었던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제국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평생 하나님께 큰일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이루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며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평생 기도하였던 기도제목은 영혼의 평안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이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께 나를 알아달라고 나를 유명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의 눈이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눈이 높은데 두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다윗의 유일한 관심과 기도는 영혼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공을 원하십니까?아니면 영혼의 평안을 원하십니까?
여러분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큰일을 이루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우리 영혼에 평안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과연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만일 내가 원하는 어떤 자리에게 내가 올랐다 하더라도 우리 영혼에 평안을 잃어버린다면 그것도 과연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한해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교회 일을 했다하더라도, 우리 영혼에 평안을 잃어버린다면 과연 내가 정말 하나님의 일을 잘 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교회 일을 했다하더라도 영혼의 평안을 잃어버리면 그 삶은 하나님 앞에서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 여러분의 삶이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영혼에 평안이 있으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며 승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영혼의 평안을 위해서 세상에서 알려지는 유명한 삶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윗은 영혼의 평안을 위해서 젖 뗀 아이처럼 오직 하나님 자신만을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젖 뗀 아이입니까? 아니면 젖 떼지 않은 아이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젖 떼지 않은 아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이루어지면 감사하고 평안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감사하지 못하고 평안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젖 뗀 아이는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내 기도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리차드 포스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그 만족 속에 참된 깊이를 깨닫게 하옵소서.
높아져 평안을 잃어버리거나 남들에게 눈치를 보는 그런 삶을 살지 말게 하옵소서
//그래서 여러분 내가 유명해지고 높아져서 영혼의 평안을 잃어버리거나나 남의 눈치를 보는 그런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신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그 만족의 깊이를 더욱더 깊이 깨닫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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