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감사의 절기를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감사를 너무나 잘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절기를 두어서라도 감사하게 했습니다. 우리도 일 년에 두 번씩 감사주일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도 우리가 감사를 너무 잘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감사는 선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대부분 감사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감사가 되어 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되어야 감사가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감사가 되어 지기를 기다린다고 하면 우리는 평생 감사가 되기를 기다리다가 끝이 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태어나면서 부터 죽을 때까지 복과 고난이 함께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100프로 완벽한 축복이다, 또 100프로의 완벽한 고난이다”라는 것은 없습니다. 100프로의 완벽한 축복은 저 영원한 천국이고, 100프로의 완벽한 고난은 저 영원한 지옥입니다.
//이 세상은 축복과 고난, 행복과 불행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50년 동안 목회를 했던 어떤 목사님도50년 동안 축복이 있지만, 단 하루도 염려와 근심이 없는 날이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감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00프로 완벽한 축복의 상황을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절대 100프로 완벽한 축복의 상황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00프로 완벽한 상황을 기다리지 말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합니다.
//또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려보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원망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까? 아니면 감사를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원망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원망이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을 자연스럽게 그대로 두면 감사를 선택하지 않고 반드시 원망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백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10번 중에 10번이나 원망을 선택했습니다.
//로마서에서도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롬1:21). 이렇게 감사하지 않으니까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게 됩니까? 감사하지 않는 인간은 이제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고 경배하고 섬기게 됩니다(롬1:25). 그러다가 나중에는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합니다(롬1:28).
//이와 같이 인간은 죄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면 절대 감사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우리의 인간의 죄악 된 본성대로 원망을 선택하지 말아야합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감사를 선택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설교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여러분의 평생에 감사를 선택하며 살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제 이 후로부터 내 인생이 그 어떤 상황이라도 죄악 된 본성대로 원망을 선택하지 말고, 감사를 선택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절망적 상황가운데서 감사를 선택한 사람이 나옵니다.
다니엘입니다.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지금 다니엘이 처해 있는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왕의 조서는 다니엘을 모함해서 죽이려는 조서입니다. 이런 상황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는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죽어야합니까?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십니까? 나와 함께 하십니까?” 라고 얼마든지 다니엘은 하나님께 원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혀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또 다니엘처럼 원망의 상황가운데서도 감사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에 처음 들어갔던 청교도들입니다.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많은 사람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추위와 질병과 인디언의 습격이 계속됐습니다. 이듬해 봄에는 흉년이 들어 거의 절반이 죽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며 기도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농부 한사람이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비록 흉년이 들고 형제 자매들이 쓰러지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 자유도 있으며, 광활한 대지가 있습니다. 금식보다는 오히려 감사해야 할 조건들이 더 많습니다. 오히려 금식보다 감사주간을 가집시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청교도들은 원망보다는 오히려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미국을 시작하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다윗도 절망의 상황 속에서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시편 34편에서 다윗은 블레셋와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는 굴욕적인 상황가운데서 다윗은 얼마든지 원망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데 절망의 상황 속에 오히려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욥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원망을 선택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감사와 찬송을 선택했습니다.
//하박국도 장차 있을 이스라엘의 패망의 소식을 접하고 처소에서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박국도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얼마든지 원망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에도 하박국은 감사와 찬송을 선택했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 인생의 꽃봉오리가 왜 이리 피지 않습니까? 혹 저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그래서 목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기도하라고 해서 기도하는데, 이제 기도할 힘조차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님 그런 상황가운데서도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꽃이 피게 될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10여 년 전에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정말 죽고 싶은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으면 자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때 끊임없이 하나님께 왜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하자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자 내 마음이 감사가 되지 않아도 감사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감사했지만 나중에는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때 제 인생을 두고 감사를 선택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의 가훈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감사를 선택하자 지금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선택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되기를 기다리기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선택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 감사를 선택해야합니까? 특히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절망스러울 때 왜 감사를 선택해야합니까?
1)감사를 선택해야하는 이유는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뜻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5장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합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감사를 선택해야합니다.
2)또 우리가 감사를 선택해야하는 이유는 인생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감사를 선택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원망을 선택하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원망을 선택하시는 하시는 분들은 아직 인생의 완전한 절망을 맛본 분이 아닙니다. 인생의 완전한 절망을 맛 본 분들은 절대 원망하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절망가운데서는 원망한다면, 절대 그 사람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완전한 절망가운데서는 살기 위해서라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그맨 이동우라고 있습니다. 한때 인기 있는 개그맨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한 실명상태에 있습니다. 그는 5년 동안 거의 절망과 우울과 낙담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 감사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낱말들이 있습니다. 사랑, 행복, 믿음, 소망, 희망, 축복--하지만 이런 말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지 피부로 실감하면서 사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완전하게 잃어버린 사람들, 바닥까지 떨어져 본 그 사람만이 그 소중함을 말합니다. 제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제가 실수한 것도 아니지만 어느 날 병이 찾아왔습니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감당해야할 저의 몫이었기에 아파할 만큼 아파하고 나니까, 사랑이 뭔지, 희망이 왜 소중한지, 내 주변에 있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고 했습니다.
//정말 깊은 절망에 빠져 본 분이라면 감사를 선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기 위해서라도 감사를 선택하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정말 살고 싶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감사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절망의 상황가운데서 감사를 선택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망의 상황 속에서 감사를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에 희망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다니엘이 만일 그의 하나님께 감사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니엘은 이런 상황 속에서 만일 하나님께 대한 감사조차도 잃어버렸다면 다니엘의 삶은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런 상황 속에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를 건져주시는 희망을 체험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기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의학적으로 전혀 살아날 희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이 사람은 이제 죽기 전에 두 가지를 하다가 죽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나는 자신과 같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죽기까지 자신과 같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또 하나는 감사였습니다. 이제 죽음을 앞두고 원망을 선택하지 않고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을 감사했습니다. 죽는 날보다 살게 될 날이 남아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또 그동안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었던 모든 사람에게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지나쳤던 일상적인 사소한 모든 일에 감사했습니다. 하루 종일 무엇에든지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의학적으로 전혀 살아날 희망이 없다고 했는데, 기적적으로 암이 없어졌습니다.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좋은 자연 속에서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죽기 전에 약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삶과 감사의 삶이 그 사람을 기적적으로 살게 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말씀을 준비하던 중에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집사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에게 갑자기 그런 상황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의식이 없던 집사님이 저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눈으로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는 말을 하도록 했습니다. 집사님이 따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사님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저녁에 다시 전화를 해보니까 제가 다녀간 후부터 이제 의식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사가 없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는 희망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를 바라보면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를 바라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살기가 어렵다고 해도 그래도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외국에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가 제일 살기가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면 이 나라에 희망이 보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교회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보면서 이런 상황가운데서 어떻게 우리교회를 두고 감사를 하겠느냐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야 해 살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희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감사주일에 교회를 두고 감사해야할 제목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우리교회에 한 평생을 수고하신 원로목사님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 우리교회에 훌륭하신 원로장로님들과 은퇴 장로님들의 경건의 삶과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 우리교회에 훌륭하신 시무장로님들을 두고 감사합니다. 제가 한분 한분을 생각하니까 정말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그 동안 교회에서 수고하신 것이나 가정에서의 생활이나 세상 속에서 삶에서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십니다. 또 우리교회에 자신의 맡은 일들에 충성하시는 안수집사님과 여러 집사님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노방전도를 하시는 권사님과 여 집사님들, 또 주방에서 봉사를 하시는 권사님과 집사님들, 그리고 기도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시는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단기선교를 은혜가운데 잘 마치고 돌아온 청년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 정말 자신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역자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 교육기관에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열심을 다하시는 교사 분들과 또 매주일 마다 은혜로운 찬양으로 성도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찬양대원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동부제일교회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 감사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아쉽고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이것을 두고 원망만 하면 우리교회에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정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족하지만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두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 자녀들은 부모님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가정에 희망이 있습니다.
또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삶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감사를 선택하면 살아갈 수 있습니까?
1)먼저 생각해야합니다.
감사라는 말 thank 와 생각하다는 말 think 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즉 감사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사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생각해야합니까? 모든 것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이 자신이 죽게 되는 상황 속에서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니엘은 그의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궁에서 뜻을 세워 왕의 진미를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왕의 진미를 먹는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다니엘은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바벨론과 그 이후에 일어날 모든 나라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주관하시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들을 주관하심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지금도 다니엘의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심을 다니엘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이 모든 고통스러운 상황조차도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다니엘은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니엘은 그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속에서 들어가서 살게 된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자 굴에 들어가더라도 그의 하나님께서 친히 구해주실 것을 다니엘은 생각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생각하니 그의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니엘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혹 “그리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니엘의 그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평생에 감사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특히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신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할 있는 이유는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혹 다니엘처럼 우리 주위에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상황들이 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동안 그러하셨듯이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모든 상황들도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반드시 선을 이루게 하신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는 그 하나님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번민스러운 내 머리에 시원함을 주십니다. 그리고 불안한 내 마음속에 평안을 주십니다. 또 원망하는 내 삶속에 감사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제일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분과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그것이만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지금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그러면 지금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감사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2)그것은 감사를 선택하는 것을 연습하고 배워야합니다(빌4:11).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모든 일에 자족하기를 배웠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처음부터 모든 일에 자족하며 감사하는 살지 못했습니다. 감사를 선택하는 삶은 처음부터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습해야합니다. 그리고 배워야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처음에는 잘 되지 않지만 자꾸 연습하다 보면 참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를 연습하시고 배우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감사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3)믿음에 굳게 서 있음으로 감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에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굳게 붙들고 서 있는 것입니다. 내 삶의 뿌리와 기초를 세상이나 사람이나 나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두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감사란 절대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있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어떤 상황 속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데도 감사가 없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번 감사주일에 감사를 넘치게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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