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자인 존 파이퍼 목사님은 “선교보다 예배가 우선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내일 단기선교를 보내는 이 파송예배에 “선교보다 예배가 우선이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선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지상최고의 사명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선교를 해야 합니까? 우리는 단순히 선교를 열방에 있는 영혼을 복음을 통해서 구원하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을 구원하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죽어서 천국 가는 사람만을 만들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까?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부족한 말입니다.
이번에 단기선교를 가는 친구들만 따라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선교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선교의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선교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 선교의 목적입니다.
그러니까 선교보다 더 우선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교회도 여러 번 단기선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단기간의 선교활동을 통해서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수년 동안 선교를 하는 선교사님들도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선교사님은 어떻게 선교를 합니까?
더욱이 단기선교를 하는 청년들은 어떻게 선교를 합니까?
우리가 그곳에서 직접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또 복음의 열매가 없더라도 바른 예배자로 서 있으면 그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그래서는 단기선교를 떠나는 청년들에게 이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선교지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생각보다 “바른 예배자가 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청년들이 가는 선교지에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하나님 대신에게 우상에게서 절하고 우상에게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우상의 배후에는 사탄 마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교지에서 청년들이 가슴으로 느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프고 상한 마음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이가 하나님인데, 그 곳에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도리어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저도 중국에 갔을 때, 도교의 사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대신에 인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우상으로 섬김으로 황폐하게 된 산하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교회가 곳곳에 서 있습니다. 교회가 많다고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선교지에 가보면 그런 교회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아프시고 상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여러분들만이라도 그곳에서 예배자로 서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몇 십 년 선교를 해도 한 영혼도 구원하지 못했지만, 그곳에 혼자라도 남아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 하는 일을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단기 선교팀에게 이 한가지만 다시 부탁합니다.
많은 일을 하기보다 여러분들이 그 곳에서 바른 예배자로 서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대신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예배에 실패를 했기 때문입니다.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이 말씀에 보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넘어서서 이방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을 넘어서서 세계 각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깨끗한 제물을 드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말라기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깨끗하지 않은 예물을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7-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읽지는 않겠습니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하나님은 깨끗한 제물과 또 최고의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고, 또 눈먼 제물과 병든 제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으며 주의 상을 경멸하였느냐” 고 합니다(7). 그들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 보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제물들을 불태우면 없어지니까 좋은 것을 드리나 병든 것을 드리나 마찬가지라 생각했습니다.
또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런 제물을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총독보다 더 못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또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번거롭고 우스운 존재로 생각했습니다(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물들을 받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그리고 10절에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런 제물을 드리고, 그런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런 식으로 예배를 드릴 것 같으면 이스라엘백성 너희들은 “예배를 드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이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해서 그들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이와 같이 선교의 목적은 열방으로 바른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열방으로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선교를 하러 가는 선교팀들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무시하고, 바른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그런 선교는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에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바른 예배 자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선교에 앞서서 우리가 어떻게 바른 예배 자가 될 수 있습니까?
1)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말라기시대 이스라엘들이 부정한 제물을 드리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만일 이 자리에게 이번에 당선된 중랑구청장님(대통령)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 청년들은 만일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게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면 더 신경을 쓰면서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가 눈에 보이는 사람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더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그 어떤 사람보다 공경하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합니다.
2)또 하나님께 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 첫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했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만일 이 자리에게 대통령이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자리에게서 스마트 폰을 켜놓고 게임을 하거나 문서를 검색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어떻게 예배시간에 스마폰을 할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만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휴대폰을 당연히 꺼야합니다. 그리고 혹 실수로 켜 놓았다가 전화가 오면 바로 끊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 바른 자세도 필요합니다.
3)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바른 예배자가 경외하는 삶이 있어야합니다.
선교에 앞에서 하나님께 바른 예배가 필요하다고 해서 선교지에 가서 하루 종일 기도만 하고 예배만을 드리고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나타나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삶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야합니다.
말2: 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13절에 보면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 일을 행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너희의 예물을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이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 일입니까?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에게 잘못을 행하여 아내의 눈에 피 눈물을 흐리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예배를 받아주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의 바른 관계입니다.
만일 내 가족의 눈에 피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절대 그 피 눈물이 하나님의 제단을 가리게 합니다. 그래서 절대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선교지에게 제일 어렵고 힘든 것임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이질적인 문화가 아닙니다. 지금 청년들이 가는 중국에서는 습도가 90도이고 여기보다 더 더운 날씨라고 합니다. 그런데 날씨도 며칠만 지나면 금방 적응을 합니다.
선교지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선교팀들 간의 인간관계입니다.
이장호감독의 시선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
그 영화를 보면 선교지에서 단기선교팀들이 무장세력에서 납치를 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면 그들을 납치한 무장세력때문이 힘든 것도 있지만, 선교팀들 안에서 인간관계 가 더 힘든 것을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면 장로님 권사님 부부가 나옵니다. 그 영화에서 선교팀원 중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어야합니다. 그때 장로님의 부인 권사님이 자신이 다른 팀원들을 대신하여 죽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우리 장로님은 교회에서 거룩한 장로님인데, 가정에서는 매일 아내를 때리는 폭행남편이라고 합니다. 남모르게 외도를 하는 부정한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권사님은 내가 살아 돌아가서 그렇게 매일 매 맞고, 남편의 외도를 보면서 살 바에는 이 선교지에서 순교하여 죽겠다 라고 하면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합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두 부부가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고 화해를 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메시지는 선교지는 이방세계의 다른 곳이 아니라 먼저는 우리 안이라고 합니다. 그 영화에서는 그 곳에 있는 사이비 선교사가 하나님을 만나서 순교하여 참 선교사가 되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선교지는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또 사람들과의 관계가 우리가 선교해야할 선교지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명 10일 동안 같이 생활을 하다보면 분명 관계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무엇을 기억해야합니다.
만일 나의 사소한 행동 때문에 다른 형제 자매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제단을 가리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팀들에게 항상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 인간관계의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라고 합니다.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단순히 사람들과의 관계만 아닙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 으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 인간관계에서 있는 문제들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그 곳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갑니다. 그래서 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 절대 그곳에서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소한 일이라면 최대한 양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권리들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합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내가 좀 더 편하게 잘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해야합니다.
무엇보다 공동체를 위해서 내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해야합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바른 인간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께 바른 예배자로 서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따라하겠습니다.
선교보다 예배가 우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예배자로 선교지에 가시는 선교팀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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