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중도실명자 선교회 예배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설교가 마친 후 목사님께서 광고를 하셨습니다. “내일 비가 오기 때문에 야유회를 가지 못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야유회를 갑니다” 라는 광고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밑에서 “목사님 다음 주에도 비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 비가와도 괜찮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말이 중도실명자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그 말을 듣고 다 함께 크게 웃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 년에 중도에 실명을 당하시는 분들이 40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분들은 처음부터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적응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도에 실명을 하신 분들의 절망감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오신 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찬송을 부르는 모습이 너무나 은혜로웠습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도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또 그분들은 실명자 선교회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분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서 비가와도 괜찮다”는 농담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중도에 실명을 당했지만 “우리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라고 하며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또 힘든 가운데서도 자신들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복음의 비전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오직 성령하나님의 역사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할 때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축하는 절기입니다. 또 고난주간과 부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성령강림절은 성령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오심을 축하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이 지상에 교회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습니까?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성탄절과 부활절만큼이나 축하를 하고, 기억하고 기념해야할 할 절기가 성령강림절입니다.
그러면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까?
먼저 창세기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성령)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원래 태초에 사람이 창조될 때 흙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흙인 사람에 성령을 불어넣어주실 때 비로소 인간이 생령, 즉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처음부터 그 속에 성령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한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6장 3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창6장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성령)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인간이 범죄 한 후 이제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을 영원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서 사람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이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에 성령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잠시 동안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인간에게 지혜도 주시고,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속해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말아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구약시대에 성령이 인간들 속에 계속해서 계시지 않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죄악 된 인간 속에는 계속해서 거하실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롬8:10절10을 보시면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영(성령)은 의(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우리 안에 계시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다 사하시고, 용서하신 후에 오순절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에 성령하나님은 이제 영원토록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계시고, 영원토록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여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의 때문에 성령하나님이 우리가운데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령하나님이 영원까지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우리 가운데 영원히 거하여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지금 우리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1. 첫째 우리 가운데 거하여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나를 위한 구원의 사건으로 믿어지게 하는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고전12:3).
만일 우리 가운데 성령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나를 위한 구원의 사건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성령하나님이 우리가운데 함께 하시지 않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단순한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여 계시는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 그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 그 성령하나님을 통해서만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삶의 주가 되심을 믿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전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이사야53장의 말씀이 바로 나를 위한 말씀으로 믿어지게 하십니다.
사53장5. 그가 찔림은 우리(나)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나)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나)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나)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나)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을 해야 우리 안에 성령하나님이 거하여 계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바로 나를 위한 구원의 사건으로 믿으십니까? 또 예수그리스도만이 나와 우리교회의 주인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성령하나님이 분명 여러분 가운데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또 우리가운데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고 계십니다(겔36:26,27).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제일 큰 절망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가운데서는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절망을 느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 심지어 원수조차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절망을 느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이 밤낮으로 예수님과 숙식을 하면서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훈련도 하고, 전도훈련도 받았고, 또 제자훈련도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의 여러 가지 기적만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직접 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시 갈릴리바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그들을 얽매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을 주고, 축복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자신만 아니라 자녀도 복을 받고, 또한 그들 때문에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백성들이 실패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에게는 율법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아버지가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았고, 또 솔로몬도 말씀대로 살았을 때 얼마나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습니다.
솔로몬이 실패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솔로몬에게 지식이 부족했고,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솔로몬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많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실패하게 된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은 신약시대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까?
겔36:26. 또 새 영(성령)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께서 성령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무엇보다 우리의 굳어지고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율법대로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하나님을 의지하면--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율법대로 살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8장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사랑)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율법은 단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율법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의 율법입니다. 그리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서로 사랑하라는 율법의 말씀을 절대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행할 때 사랑의 율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알고 있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가랴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슥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있어서 넘을 수 없는 큰 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는 인간적인 힘으로 넘을 수 없는 어떤 큰 산이 있습니까?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면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넘을 수 없는 큰 산일 수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교회 안에서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넘을 수 없는 큰 산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 도무지 인간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큰 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다고 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어떤 큰 산도 평지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3. 또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가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으로 느끼게 하고 깨닫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롬5:5).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저는 오래전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어떤 기적을 통해서 보여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병이 낫는 치유의 기적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치유의 역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그 전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이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 가운데 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그때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성령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더 풍성히 느껴지고 깨달아지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또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요14:26).
성령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또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이 우리 마음가운데 와 닿게 하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요14: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풍랑이는 바다위에서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이제 보혜사 성령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우리들에게 “안심하라 나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인생의 무거운 짐 때문에 걱정하거나 힘들어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내일의 염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이때 성령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마음을 주십니다.
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짐들을 다 주님께 맡기게 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참된 평안과 안식과 쉼을 주십니다.
/성령하나님은 나인성의 과부에게 “울지말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생각나게 하십니다(눅7:11).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가운데서도 우울해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게 하십니다(아멘-주여 믿습니다).
//여러분 최근에 말씀을 듣거나 보는 가운데 성령하나님께서 특별히 마음가운데 와 닿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두 주 전에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하나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광대하시다”는 말씀을 갑자기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찾아보니 147편5절에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씀을 옛날성경으로 보니까 시147편5을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 생각나게 하시고, 또 깨닫게 하셨습니다.
지난 주에는 시편57편 2절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또 평상시에는 하나님께서는 사41장10절의 말씀을 자주 기억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사41:10.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오늘 이 시간에 성령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에게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경말씀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오늘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을 말씀으로 들려지는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또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삶을 따라서 살게 하십니다(행7:54-60).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행7장에 나오는 스테반의 사건입니다.
행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tv나 모든 영화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주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복수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은 나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사람에게 더 큰 돌을 던져서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테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를 돌로 치는 무리를 향해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것처럼 오주여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물리치고, 심지어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봅니다. 물론 성령이 역사하시면 병도 고칠 수 있고, 귀신도 떠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성령 충만의 가장 큰 증거는 같이 돌로 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으로 우리가운데 계신 성령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가운데 어떤 일을 하십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도들이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다가 다 순교를 했습니다.
여러분 왜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십니까? 왜 성령을 불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왜 우리가운데 성령하나님이 역사하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단순히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내가 남들보다 더 크게 보이고 돋보이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간구하는 이유는 내가 없어지고, 오직 내 삶 가운데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직 성령충만함으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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