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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성경적 교회

영광의 회복으로서의 교회

by 금빛돌 2013. 4. 11.

1. 잘못된 교회 관

교회란 무엇인가(교회의 정의)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서 모여지고(선택),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거룩하여진 하나님의 자녀들이(칭의의 거룩),하나님왕국의 백성으로서의 삶(이러한 삶의 절대적 모범은 우리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삶) 살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로핑크).

 

서론

1:12절을 읽어보시오.

질문-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이다(우리라고 표현이 된 부분).

또한 이 에베소서1:19-23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의 풍성하심을 누리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그리스도의 몸 밖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을 누릴 수 없다)

이와 같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담아 그겻을 이 세상에 충만히 나타내는 기관이라고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실인가?

 

그러나 우리는 과연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50년대 미국대학생들의 구호가 "그리스도는 좋다. 그러나 교회는 싫다"였는데,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우리주위에 간혹 교회에 대해서 이런 말이 들린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좋은데, 교회생활은 싫고 부담스럽다","교회에 다니다가 오히려 내 신앙을 버리겠다","기성교회를 떠나 전혀 새로운 교회를 찾아가고 싶다","교회는 끝났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신앙만을 지키는 것 뿐이다"." 교회에 가서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보아라 사람보면 시험에 든다","지상의 교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단지 우리는 저 천국만을 기다릴 뿐이다" "교회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은 하나의 필요악이다"

 

이와 같이 왜 우리가 경험하는 교회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간에 이런 괴리적인 현상이 일어나는가?

왜 교회에 대한 이러한 오해들이 생겨났는가?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물음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같이 살펴 보는 시간을 갖겠다.

 

1.이러한 괴리적 현상의 첫 번째 이유는 교회에 대한 잘못된 견해 때문이다.

많은 한국교회 교인들은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교회에 대한 실천신학적인 관심만 있고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본질적인 물음이 부족하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입장들은 단순히 교회에 대해서 우리의 세속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요구사항에 의해서, 교회는 이런 곳이며 이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군인의 경우에는 교회를 군대식으로 생각을 하고, 학교선생님일 경우에는 교회를 학교처럼 생각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장터처럼 생각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단순한 종교적 사업체로 생각한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교회관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A.교회는 단순한 건물 그 자체일 뿐이다.

 

우리가 교회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맨 먼저 생각나는 것이 "건물"이다. 그 교회가 좋습니까? 라고 했을 때 우리는 간혹 단순한 건물을 보고 판단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건물에 대해서 "성전"이니,"성물"이니 하면서 굉장한 의미들을 부여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모두 유대교적인 생각이고, 천주교회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들은 요2장을 보면 완전히 깨어진다. 2장에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당시의 헤롯성전을 참된 성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이 참된 성전이라고 하신다(2:20,21).

또한 엡2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성전을 이루는 건물에 비유하고 있으며, 건물들이 모여서 성전이 되어간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유대나라에서 성전은 건물들이 모여서 성전을 이룬다(2:21). 즉 성전이란 그리스도인들이 한 몸으로 모인 모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교회에서 모이는 이 건물은 무엇인가? 이것은 단순히 성도가 모여서 예배하고 교육을 하기위한 단순한 건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교회재정의 우선권은 어디에 두어야 겠는가? 그것은 비인격적인 건물이 아니라, 인격적인 건물(2:21)인 사람에 우선권이 있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건축이란 하나님의 백성인 사람(건물로 비유)를 세우고 교육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교회건물건축을 할 때 반대시위를 하거나 교회건물건축헌금을 할 때 혼자서 빠져서는 되지 않는다. 교회의 건물은 참된 건물이자 성전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고 교육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다.

 

B.교회는 본질상 단순한 하나의 제도적인 조직체에 불과하다.

교회라 할 연상되는 것은 하나의 딱딱한 권위와 전통, 관습에 메인 제도, 또한 갑론을박하는 무수한 회의들의 연속만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회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런 것에 잘 적응하고, 순복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교회에 있어서 제도적인면과 전통, 관습등을 부인할 수는 없다. 위트니스리의 지방교회같은 데서는 제도없는 교회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다(교회의 본질과 제도성의 관계연구,김광석 참조).

우리는 교회에서의 제도,또는 관습등을 결코 부인 할 수 없고, 또한 그 권위도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가 단순히 세상적인 조직체처럼, 그 안에 말씀을 절대적기준과 영적인 생명력을 상실한 체 단순히 제도적인 권위와 인간의 관습만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드러내고,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천주교는 교회의 본질을 제도에 두고 있다, 정하권,교회론).

교회는 세상에 있는 단체와 비교해 볼 때 교회도 사람이 모인 단체이므로 제도와 조직이 필요하다는 보편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 단체와는 다른 특수한 면이 있다. 교회의 제도적보편성이 성경적교회의 특수성에 예속될 때에만 참된 가치가 있는 것이다.

 

C.세번째 잘못된 교회관은 "교회는 단순히 우리에게 필요한 성경적 지식만을 공급하는 학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설교자는 학원강사처럼 급료를 받아 필요한 성경강의만 하면 그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은 설교자가 얼마나 설교를 잘하는지 감상하다가 설교에 대한 헌금(수강료)만을 내고 돌아가는 곳이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입시학원이지 교회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에서 말씀증거와 성경공부가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란 그 말씀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체우는 것에 불과한 곳이 아니라, 그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 실천하고, 또한 그 말씀을 가지고 성도 간에 서로 교제를 나누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는 우리의 가장 효과적인 교제의 수단인 것이다. 말씀 안에서의 교제와 만남이 제일 중요하다.

교회란 말씀과 성령안에서의 성도가 서로 교툥하고 교제하는 공동체이다(교회의 정의-"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곳")

 

교회란 단순히 가르치는 교회가 아니라, 교제하는 교회이다(가르칠 교자가 아니라 교제할 교자로 써야한다)

 

D.네번째 잘못된 교회관은 "교회는 종교적 사업만을 벌리는 단체"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생각 할 때 맨 먼저 떠 올리는 것은 일이다. 전도행사, 구제행사,--등 교회는 그저 종교행사를 벌이기 위한 단체로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사업만 성공하면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교회관이다.

요한복음 2장을 보시기 바란다. 거기에 보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이 나온다. 여기서 성전에서 돈 바꾸는 일이 왜 잘못되었는가? 그들은 제사를 돕기 위해 성전뜰에서 제물을 팔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겉으로는 제사를 돕기 위해 장사를 했지만, 실상은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장사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보신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그 사람이 교회에서 종교적이고 거룩한 일을 행한다 하더라도 모두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 사람이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이 전도행사만을 벌린다면 그러한 전도행사에 대해서 예수님은 채찍을 드실 것이다.

혹 이 가운데서 일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그래서 회장, 부회장 맡을 때는 열심히 일하다가 그 직임이 끝나고 나면 교회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것은 잘못된 교회생활이다. 교회는 일하는 곳이기 이 전에 먼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형제들로 부터 공급과 양육을 받아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것과 반대되는 경우를 살펴보겠다.

 

E.다섯번째 교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교회는 개인적인 만족을 체워주는 영적병원에 불과하다.

교회란 단지 개인적인 영적 만족만을 체워주기 위해서 필요한 곳이라고만 생각한다. 물론 교회가 성도의 개인적인 영적갈급함을 체워주어야 하며, 또한 영적인 병들을 치유하는 곳이어야 한다. 요즈음 서울에서는 치유목회,또는 치유교회(영적,육적질병을 치유해주는 교회)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이러한 치유가 교회에서 필요하며, 또 교회는 그런 곳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교회가 단순히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영적인 환자들만이 모인 병동이라고만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큰 오산이다.

교회는 영적으로 치유함을 받으면서, 또한 치유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곳이다. 이러한 영적인 봉사가 없이 바싹 마른 손만을 내미는 사람은 영원한 영적 환자일 수밖에 없다.

 

1:24을 보시기 바란다. 거기에 보면 바울은 무엇을 두고 기뻐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교회의 지체들을 섬기기 위하여 당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겨두신 고난을 말한다. 교회는 봉사함으로서 참된 영적인 공급과 만족이 주어지는 곳이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지나쳐서 공급받는 것이 없이 너무 지나치게 종교적 사업만을 벌린다면 이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영적인 수출과 수입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여러 기관보다 한 기관을 섬기는 것이 좋다. 어린 학생들은 봉사보다는 양육에 우선을 두어야한다).

 

F.다섯 번째 교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교회는 같은 신앙인끼리 모인 사교적인 모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교회가 왜 필요한가? 그것은 한마디로 심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이기적인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착한 교인들과 같이 노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를 단순히 인간들끼리만의 친교를 위한 모임이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만일 우리가운데 교회를 인간들끼리의 사교를 위한 목적으로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리 교제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불결과 같다고 유다는 말하고 있다(12,13). 이런 사람들은 힘을 합하여 쫓아 보내야 한다. 우리가 친교를 하고 교제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엡1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서 이다. 그런데 우리의 만남과 교제를 통하여 단순히 인간적인 교제만 이루어지고, 인간적인 것들로만 서로 체워진다면 그것은 참된 교제의 목적이 아니다.

1,2장에서 보여주는 성도가 하나 되어야 할 이유는 우리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풍성함을 더 누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몸이 서로 갈라져 있으면 피가 잘 흐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제와 만남 뒤에는 항상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광의 풍성함이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2. 성경적 관점에서 본 교회란 무엇인가? 2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어떤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셨는가? 우리는 간혹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단순히 죽어도 천당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그 이상의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에베소서 1-3장 까지 입니다.

특히 에베소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가지셨던 계획을 "경륜(오이코노미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가지셨던 계획과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까?

 

* 이것을 에베소서1장에서 나타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계획(경륜)을 중심으로 살피면 다음 도표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공동체(5)

 

경륜에 따른 예정(1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9) 교 회(22)

 

하나님의 기업인 공동체(11)

 

위의 도표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을 경륜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그 경륜에 따라서 우리를 구원받기로 예정하셨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경륜(계획)에 따라서 우리를 예정하신 목적을 하나님의 아들들의 공동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공동체, 그 안에서 기업(32:8-9)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공동체, 그리스도안에서 통일(하나)된 공동체, 또는 하나님의 기업이 바로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바로 교회를 이루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인 교회안으로 들어 오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한 우리가 교회안으로 들어왔다는 말은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하나(통일)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개인적 구원이 아니라,공동체적 구원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왜 중요하냐고 하는 질문을 새삼스럽게 던질 필요가 없다. 만일 당신이 위와 같은 의미에서의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즉 교회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제도적 교회에 가입하면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천주교적인 생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범 우주적인 교회를 말한다.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미 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말이다.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 수 도 있다)

 

질문/1. 교회에는 나오는데 공동체속에서 교제나 양육이나 봉사를 회피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권면을 해야할까?

질문/2. 범우주적이고 버편적인 교회의 입장에서 교회성장경쟁주의에 대해서 비판해 보시오?

 

또한 엡3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구원의 경륜을 한 차원 더 높여 이야기한다.

39,10,11-"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과 계획(경륜)은 이 교회를 통하여 정사와 권세자들에게(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각종지혜(하나님의 모습)를 나타내게 하려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계획의 목적이자, 수단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엡 3장에서는 구원의 경륜을 한 차원 더 높여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게 하려는 세상을 향한 우주적인 계획"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질문/1.이러한 관점에서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질문/2.하나님의 구속경륜(예정)의 관점에서 본 교회란 무엇이며,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이상의 사실들을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통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성부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만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또한 그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 가운데 당신의 모습이 나타나며, 당신의 뜻이 펼쳐지기를 계획하셨다(1,3:10) 즉 성부하나님은 만세 전부터 교회를 계획하셨다.

 

B. 성자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성부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다.(2,2:13-18)즉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교회를 만드셨다.

 

/213절에서 18절을 읽어보시오. 여기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역은 어떤 것이 있는가? 지금 우리 교회의 지체들 가운데 서로 갈라지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냐를 생각하면서 이러한 벽들을 허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학생/직장인,부자/가난한자,교회의 기존의 신자/새로들어온 신자,성직자/평신도,개체교회간의 하나됨 등) 30

 

C.성령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부하나님의 계획과 성자예수님의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던 사역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시다. 즉 성령하나님의 사역의 핵심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교회를 이루시게 하는사역이다. (4:3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진정한 하나됨이 이루어지고, 육신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가 있는 곳에 분열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하나된 교회를 나누이게 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이다.

 

문제/1. 516-24절의 말씀중에서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말해 보시오? 육체의 일이 어떻게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반대로 성령의 열매가 어떻게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보시오?

 

문제/2. 성령의 은사가 개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교회공동체를 위한 것인가?그렇다면 성령의 은사가 어떻게 사용되어져야 하겠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본 한국교회의 은사운동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

 

 

 

 

 

 

 

 

 

 

 

 

 

 

 

 

 

 

 

 

 

 

 

 

 

 

 

 

3. 어떻게 하나 된 교회를 이룰 수 있을까(17:21-23)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서로하나가 되어야할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중반--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무엇을 말합니까? 성부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이유가 바로 우리가 서로 하나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23절도 마찬가지입니다----중략--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이 땅에)보내신 것을 (생략)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즉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 성부하님께서 성자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해준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성부하나님께서 성자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가 서로 하나 되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자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를 죄의 죄를 사하시고-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17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그 다음 8절과 9절을 삽입구입니다-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목적은 10절에 있습니다.

(이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땅에 잇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나)되게 하려 하심이라-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도 우리가 서로 하나 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 하나 됨입니다.

43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부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주신 이유-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유가 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할 이유는 너무 많습니다(16-고전1-등등-2).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어느 정도로 하나가 되어야합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22절입니다. 중반 절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즉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이 하나가 된 것같이 우리가 서로 하나 되기를 예수님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부성자 성령하나님이 각기 다른 인격체인데 서로 하나인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서로 하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어떻게 서로 하나됨을 드러내셨습니까?

따라합시다. 성부성자 성령하나님은 서로가 영원하고 끊임없는 교통과 교제로서 하나됨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하나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교통하고 교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서로교통하고 교제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잇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서 교통하고 교제하고 난후-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서로 교통하고 교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서로 교통하고 교제함으로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 교통하고 교제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이 서로 교통하시고 교제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교통하고 교제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교제의 원리).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은 어떻게 서로 교통하시고 교제하심으로 당신들의 하나 됨을 드러내셨습니까?

첫째 요171절에 보면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은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함으로 교통하시고 교제하셨습니다.

둘째 1721절에 보면 서로가 서로의 안에 있음으로 교통하시고 교제하셨습니다.

셋째 25절에 보면 서로가 서로를 잘 앎으로 교통하시고 교제하셨습니다.

넷째 26절에 서로 서로를 사랑함으로 교통하시고 교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떻게 서로 교제함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첫째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함으로 교제해야합니다.

둘째 서로가 서로의 안에 있음으로 교제해야합니다.

셋째 서로가 서로를 잘 앎으로 교제해야합니다.

넷째 서로 서로를 사랑함으로 교제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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