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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호세아

호세아강해⑥ 진정한 회개(호7:1-16)

by 금빛돌 2013. 3. 16.

사람들은 치유를 원합니다. 그리고 회복을 원합니다. 또 부흥을 원합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도 주여 우리에게 부흥을 주옵소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진정한 회개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치유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회복을 원하십니까? 그리고 부흥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저는 서문로교회에 있으면서 초장기 고신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고신은 절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고신의 초기에는 놀라운 성령의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흥의 역사의 출발은 회개였습니다. 말씀 사경회를 일주일 동안하면서 밤새도록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회개는 누가 하라고 한 회개가 아니라 자발적 회개였습니다. 그렇게 회개하는 삶을 살 때 고신초창기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이 이때가 바로 이런 역사가 있어야할 때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어떤 영이십니까? 죄하고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분입니다. 아무리 성령 성령해도 그 가운데서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없이는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감추어진 죄를 드러내는 철저한 회개가 우리에게 있어야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고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만일 몸에 암이 있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드러내면 아프니까 가만히 덮어두어야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프지만 드러내야합니다. 제일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절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와 악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정작 내 안에 있는 죄와 악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감추고 생각지도 않는 죄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하는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추어진 가운데 행한 모든 일들을 당신의 얼굴로 지금도 날마다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죄를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짓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앞에 짓는 죄까지 모두 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짓는 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어떻게 고백했습니까?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나이다. 내 죄가 항상 주 앞에 있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단순히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내놓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진정한 회복을 원하십니까? 치유를 원하십니까? 진정한 성령의 역사를 원하십니까? 또 진정한 부흥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회개입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7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전혀 회개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까? 지금 이스라엘을 회개를 하는 것 같습니다. 회개를 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내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거짓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4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빵 만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과 같다고 합니다.

4.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과자 만드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그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효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

빵을 만들 때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습니다. 그리고 그 반죽한 밀가루를 화덕위에 놓습니다. 그리고 밀가루에 이스트가 잘 반응해서 빵이 완전한 모양이 나타날 때까지 화덕에 불을 피웁니다. 이때 빵이 완전한 모양을 할 때까지는 절대 불을 낮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빵이 완전한 모양이 되면 그때서야 불을 끕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죄를 짓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죄가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죄가 완전한 증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죄를 짓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죄가 증상으로 드러날 때까지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그 죄 때문에 돈을 잃어버리고, 가정도 잃어버리고, 사람이 죽고, 나중에는 법정에 서야지만 죄를 멈춥니다. 이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가 증상으로 드러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의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합니다.

--내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이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면 죄는 멈출 수 없습니다. 죄가 말로나 행동으로 나타나면 결국 그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죽이고서야 죄가 멈추어 집니다. 우리 마음에 음란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들어서 왜 성희롱사건들이 자주 터집니까? 평상시 마음으로 음란한 생각들을 항상 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마음속에 미워하는 감정이 있을 때--그때부터 하나님 앞에서 마치 내가 살인죄를 지은 사람처럼 회개해야 합니다.

--또 내 마음속에 음란한 생각이 들 때 마음의 단계에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죄가 여러 번 드린 말씀입니다. 죄는 우리 마음속에 작게 시작하지만 죄는 항상 끝장을 보는 성격이 있습니다. 우리가운데 혹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은 결국 말이든 행동을 통해서 반드시 그 사람에게 해를 키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진정한 회개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죄가 우리 마음에 들어올 때부터 마치 내가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서 호들갑떨 듯이 하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죄의 결과로 드러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죄까지 철저하게 회개하면 살아가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8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열방에 혼잡되니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합니다.

8.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이 한 쪽만 거룩하게 익었고, 또 한쪽은 익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거룩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삶속에서는 전혀 익지 않은, 거룩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왜 당시의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겉으로 드러난 외식적인 모양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혀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적인 삶속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란 우리의 신앙이 일상적이고 사소한 삶속에서 나타나지 않은 것을 두고 회개해야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잘 듣고 배운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이 가정에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삶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신앙은 좋은데 가정생활이 엉망이네라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생활이 엉망인 사람은 결코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회개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종교적으로는 거룩한데-- 가정에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잘 하지 못한 것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지하철에서 내가 좀 피곤하다고 해서 나이 드신 분들이 지나갈 때 눈을 감으면 잠을 잔 것처럼 한 것을 회개해야합니다.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것이 귀찮아서 쓰레기봉투에 음식물을 버린 것을 회개해야합니다. 저는 지난주에 전도할 때만 이웃에게 친절했지, 뚝방에서 연세드신 외로운 분이 여기 않으라고 했을 때 시간이 없다고 지난 친 죄를 회개합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데, 이 세상의 정치의 영역에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드러내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긍휼을 행했지만 이 세상가운데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이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되었던 종교적인 부분만 거룩하고, 세상속의 삶에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철저히 회개야 합니다.

-9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 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9.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여기서 이스라엘백성이 백발이 얼룩얼룩하다는 말은 어떤 말이겠습니까?

나이가 들어서 백발이 있는 것은 노인의 영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백발이 얼룩 얼룩하다는 것은 너무 심하게 사람이 고민하거나 고생하면 머리가 희게 쉬는데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서 머리가 희게 쉴 정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않을 때 항상 먼저 경고의 채찍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머리가 희게 정도로 어렵고 힘든 일을 주십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그것이 하나님의 채찍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여기서 보면 이스라엘은 죄로 인해서 힘이 빼앗기고, 또 머리가 희게 쉴 정도가 되는 이 모든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깨닫지 못하고, 여호와께 돌아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죄로 인해서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그러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어려워서 머리가 백발이 될 정도가 되었는데도, 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만이 무엇입니까? 힘들고 어려워도 인간적인 힘만을 의지하고 그냥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어렵게 하시고 힘들게 하십니다.

그러면 빨리 그것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또 우리가 머리가 희게 쉴 정도로 힘들어도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영적 침체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영적 침체를 즐기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우면 하나님께 나오면 되는데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 모든 것이 회복되는데도 오히려 어렵고 힘든 상태를 즐기면서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나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어렵게 하실 때 빨리 빨리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합니다.

베드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물 위에서 주님만을 바라보지 않았을 때 물속에 빠졌습니다, 그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즉시로 그 물속에 거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즉시로 손을 내 밀어서 주여 나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아주십시오. 나를 살려 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즉시로 그를 구출해주셨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회개는 빨리 빨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싸인을 주시면 저는 끌지 않고 빨리 돌이킵니다. 이것이 저의 장점입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채찍을 통한 하나님의 싸인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미련한 이스라엘처럼 가만히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빨리 빨리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언제든지 어떤 상태에 있든지 그 어려운 상태에서 구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스라엘백성들이 어렵고 힘들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되는 왜 돌아가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대신에 현실가운데 믿을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비둘기는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비둘기는 그가 돌아가야 할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아갑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당시에 강대국이었던 앗수르를 의지하고, 애굽을 의지합니다. 그것이 현실적인 대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 대신에 현실적인 대안으로 믿었던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람들이 왜 회개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 대신에 내가 현실적으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나에게는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재주가 있다. 아직 나에게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은 하나님대신 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이스라엘이 너무 어렵고 힘드니까 하나님께 조금은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성심으로 진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습니다. 또 침상에서 누워서 부르짖을 뿐입니다.

또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서 빼앗겼던 곡식과 새 포도주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이나 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곡식과 새 포도주입니다. 죄 때문에 잃어버렸던 것들에 대해서 슬퍼 할뿐이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죄에 대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는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죄로 인한 징계 때문에 잠시 눈물을 흘렸을 뿐이지 하나님 앞에서의 죄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한 징계보다 죄를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징계를 받더라도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치셔서라도 나를 죄에서 돌이키게 하옵소서

하나님 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죄에서만은 돌이키게 하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서 죄를 깨닫고 돌이킨다면 그것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로 인해서 주께서 꺽으신 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채찍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징계가 있습니까? 그래서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되지 않게 해주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 채찍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와 회복의 자리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되는데 왜 회개하지 않는가를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왜 많은 사람들이 그 어떤 죄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딸에게 바위에서 물로 뛰어 내려 보아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물이 배정도위치에 오고 또 밑에도 모래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아버지가 서 있었습니다. 몇 분을 이야기하는데도 딸은 물이 무서워서 뛰어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답답해서 제가 바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안심해도 된다고 말 했습니다. 그래도 그 딸은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그보다 작은 남동생이 누나 앞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래도 그 딸을 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몇 번씩이나 말하고 난 후에 딸이 뛰어 내렸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뛰어내린 줄 아십니까?

그것은 물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속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우리가 회개의 바다로 뛰어내리려 하면 두려움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욕하지 않을까? 내 체면이 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뛰어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들의 그 어떤 죄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 내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품으로 뛰어내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죄라도 시인하고 진정으로 회개하면 나를 받아주십니다. 또한 일으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또 내가 아무리 죄에서 넘어져도 하나님께 온전하게 회개하만 하면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또 회개하면 되는데 왜 이스라엘과 우리들은 회개하지 않습니까?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치과의사에게 아스피린은 독약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빨이 아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치과에 가기 싫어도 가야합니다. 그러면 아프지만 치료가 되고, 회복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치과에 가지 않습니다. 아스피린을 먹습니다. 그래서 잠시 고통을 잊으려합니다. 그런데 아스피린을 먹어서 고통을 잊어도 이빨을 속에서 계속 썩고 있습니다. 왜 빨리 치과에 가지 않아 라고 하면 아이 괜찬다 내 이빨은 내가 안다--그냥 아스피린 먹고 한숨자면 괜찬지 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교만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삶의 불행의 근원은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앞에 나와야합니다. 그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 앞으로 나와야합니다. 죄를 처리할수 있는 전문가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오기보다도 아스피린을 먹습니다. 예수님앞에서 회개하기 보다는 어떤 사람은 잠만 잡니다. 또 하루 종일 티브이만 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친구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죄로 인한 고통을 잠시 잊으려 합니다. //또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죄로 인한 고통을 잊으려고 열심히 교회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는 괜찬은 것처럼 보이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죄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절대 아스피린을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인간적인 위로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고통을 주실 때 마음 컷 아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시대에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자신은 절대 내가 아간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떨 때 참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까? 누가 아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아간입니다. 고 고백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성령의 역사,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가 아간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을 가로막았던 아간이 바로 나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았던 자가 바로 나입니다. 고 서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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