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느 한곳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불안한 이 세상에서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전 책을 만들어 그 성안에서 살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돈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나를 지켜주는 성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또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리가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좀 더 안전한 직장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안정된 직장이 나를 지켜주는 성이라 믿고 살아갑니다. 또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믿는 사람을 나를 지켜주는 성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물론 돈이나 안정된 직장이나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나 자리나 사람들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돈이 있고, 안정된 직장이 있고, 또 나가 믿는 사람들만 있으면 굳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8.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여기서 기브아, 라마, 벧아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입니다. 기브아, 라마, 벧아윈은 이스라엘의 가장 중간에 있는 도시로서 적이 북쪽에서 쳐들어와도 안전하고, 남쪽에서 쳐들어와도 안전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브아에 거하기만 하면, 또 라마에 거하기만 하면, 벧아윈에 거하기만 하면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또 그 성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팔이나 호각은 전쟁이나 심판이 있기 전에 미리 경고용으로 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의 큰 심판이 있기 전에 나팔을 통해서 심판을 경고합니다.
호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길거리에서 순경들이 호각을 부르는 것은 위험을 미리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또 벧아윈에서도 베냐민 지파에게 이런 경고의 나팔소리가 울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소리가 울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스라엘의 가장 강한 지파)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이스라엘가운데 가장 강한 지파가 에브라임지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지파를 황폐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사람들이 생각한 안전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들은 돈만 있으면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 통장에 돈이 있고, 또 아파트가 있고, 또 땅이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망하더라도 3대는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합니다.
또 하나님을 믿더라도 돈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하여 아쉬운 마음이 없습니다.
---또 안정되고 잘 나가는 직장이 있습니다. 또 든든한 남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나를 영원히 안전히 지켜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해서 더 이상 아쉬운 마음이 없습니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돈이 있고, 직장이 있고, 사람이 있기에 예배시간에 졸고, 말씀의 은혜를 받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아도, 별로 아쉬운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네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그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호5:10.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유다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는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11.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또 에브라임 즉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강한 지파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보다 사람의 말을 더 따르고 믿고 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 앞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유를 있어야할 것이 없고, 없어야할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하나님의 백성)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일 먼저 진실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정의입니다. 또 이것을 사회적으로 말하면 공의입니다. 또 쉬운 말로 하면 옳 곧음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실과 정의, 공의와 옳 곧음을 바라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인애 즉 사랑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옳 곧음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옳 곧음과 함께 사랑이 있어야합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해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는 사랑입니다.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또 우리에게 있어야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바른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있어야할 것은 없고 없어야할 것이 있었습니다.
“호4: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없어야할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과 서로 죽이는 일만이 있었습니다. 또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심판은 어떻게 시작이 됩니까?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호5:12.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이스라엘의 대표지파) 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이 좀과 같고 썩이는 것과 같이 임한다고 합니다.
좀이 무엇입니까? 좀은 소리도 내지 않고 눈에 잘 보이지 않게 조용하게 임합니다.
또 썩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이 썩을 때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처음에는 좀과 같이 썩이는 것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임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임합니까?
14절을 보겠습니다.
“호5: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를 보셨습니까? 더욱이 젊은 사자를 보셨습니까? 사자는 갈귀가 있어서 사자가 덮칠 때는 모두 보이게, 그리고 소리 나게 덮칩니다. 또 젊은 사자가 사냥감을 움켰을 때는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은 처음에는 좀처럼, 썩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의 내면세계 속에 임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사자같이 눈에 보이게 외부에 임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하실 때는 아무도 그 심판에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임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겠습니까?
있습니다.
좀도, 썩이는 것도 자세히 보면 보이듯이,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도 자세히 보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은밀한 가운데 좀같이, 썩이는 것같이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의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예전에는 기도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도하기가 싫어집니다. 기도하려 왔는데도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었는데 이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예전에는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놓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말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은밀한 심판의 은밀한 경고입니다. 예전에는 모든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어떤 말씀을 들어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 내게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우리는 찬송을 부를 때 나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정상적일 때는 그 가사 한 절 한 절이 나의 신앙고백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찬송할 때 노래만 하고 전혀 내 신앙고백이 담겨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심판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 깨달아야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고의 소리를 듣고도 보고도, 하나님의 심판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기도해야지, 말씀대로 살아야지,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잠시 생각하고 느끼다가도 그냥 넘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당장 하나님이 없더라도 내게 돈이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이 있습니다. 또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를 듣고도 무시하고 그냥 넘어 갑니다
그러다가 언제서야 돌이킵니까?
/정말 내가 믿었던 것, 붙들었던 것,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서--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돌이키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로5장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호5: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돌이키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최후의 수단으로 채찍을 드십니다. 우리가 그 고난을 받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그래서 6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아무리 잘못하고, 죄를 짖더라도,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시자와 같이 임하여 우리를 완전히 찢으신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를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말씀은 무엇입니까?
6장 2절에 보면 “호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고 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 죄를 회개하고--여호와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실 뿐 아니라 나중에는 우리를 심판 받을 때보다 더 높여주시겠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5장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실 때 우리를 건져 낼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6장에 보면 우리가 죄를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우리를 금방 낫게 해시고 더 잘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자가 움킨 것 같이 절대 하나님의 심판에서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가 금방 낫게 해주신다는 말씀은 어떻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 같고 일관성이 없는 말씀 같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벌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심판의 채찍을 내려서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바로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길로 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고자 하는 그 모든 은혜와 복을 우리가 누리기를 게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내면적 경고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아니면 더 나아가 외부적 심판을 받고 계십니까?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건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고 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받아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높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회복도 주시고, 은혜와 축복도 주십니다.
또 우리에게 놀라운 부흥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조건 형식적인 예배의 자리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던 것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 와야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정직의 자리로 돌아 와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교행위만 하고 정직하지 못하면 여와와께로 돌아오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정직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시인 해야합니다. 그리고 정직의 자리로 나가야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사는 길입니다.
-또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인애 즉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여호와깨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조건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호세아를 통해서 보여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호5:15절을 보시면 “호5: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말씀의 자리)으로 돌아가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말씀의 기준을 새워놓고 그 말씀의 자리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자리에서 돌아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게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대로 진실과 정의와 공의의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실과 인애와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불안한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유일하게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안전책입니다.
돈이, 우리의 자리가, 사람들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이 있고 안정된 직장이 있고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고, 말씀 안에 거하지 않으면 결코 그 모든 것은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말씀대로 정직하게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또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또 무엇보다 우리를 불안한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실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 다 잃고 없어도 우리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있으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집에 지금 정말 돈이 없거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 남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불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가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내게는 돈이 없지만 예수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계신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만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내게 돈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돈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사탄의 영적 세력이 나를 해한다하더라도 나는 겁낼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의 그 어떤 악한 영적 세력보다 뛰어난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를 위협하는 사탄이 우리들의 몸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영혼들을 절대 헤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만이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 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피난처가 되시고 안식처가 되시고, 우리를 가장 안전하게 지켜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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