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의 중심주제/성경공부 자료

다윗의 도피경로와 왕국 건설

by 금빛돌 2013. 3. 15.

다윗의 도피와 왕국 건설
1. 다윗의 등장과 연표 추정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택함을 받은 다윗은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은 다음에, 골리앗을 죽이고 요직에 발탁되고, 부마1)가 된 후에도 왕이 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사울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적어도 10년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이나 쫒기는 신세가 되었고, 사울이 죽은 후인 30세가 되어서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7년 6개월을 다스렸고, 왕국을 통합한 후에 예루살렘에 도읍하여 33년2)을 다스렸다.
다윗의 도피 생활이 몇 년 이었는가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왕이 될 때의 나이인 30세를 기준으로 역 축적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시작에 근접한 시기인 골리앗과 싸울 때의 나이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우리가 가장 먼저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장성해서 전장에 나간 다윗의 세 아들을 기준으로 판단 하는 것인데, 이들을 20세 이상으로 보고, 넷째부터 여덟째인 다윗까지 연년생이라 하더라도 15세 이상 일수가 없다고 판단할 수가 있고, 대체로 그 정도나 오히려 그 이하로 보려는 경향도 많이 있다.
그러나 전쟁에 나간 사람이라 하여, 나이를 꼭 20세를 기준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성인 계수와 일치 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는 제사장도 반차를 따라 직분을 감당하듯이, 순서에 따른 징집이나, 가족에 할당된 인원을 채우기 위해 위로부터 세 명의 해당되었을 수도 있고, 당시 이스라엘의 병역 연령이 20세 보다 높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거로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만약 병역 연령을 20세로 기준 한다면, 첫째인 엘리압의 연령이 23세에서 25세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40대에서 50대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아버지인 이새가 나이 많아3) 늙었다고 하는 표현과 부합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나이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사울이 다윗에게 하였던 “소년”이라는 용어에 근거 하는 것인데, 이로 인하여 다윗은 미성년자 또는 어린이라는 식의 일반적 인식의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후에, 사울이 다윗을 가리켜 청년4)이라고 하였고, 사실 다윗은 그 전부터 사울의 병기든 자5) 곧 시위와 같은 일을 하였다.
또 원어 상으로 보더라도 이 “소년”과 “청년”에 해당하는 말들이 젊다6)라는 뜻으로 동일하게 쓰일 수가 있고, 특히 소년에 해당하는 말은 이후에 애굽 군인과 블레셋 군인에게도 쓰였다.7) 그러므로 사울과 골리앗이 다윗을 지칭해서 썼던 “소년”이라는 말은 어린 아이라는 말이 아니라 전쟁에 경험이 없는 자이거나 장군이 아닌 일반 병졸8)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을 것이며, 대략 20세 전후의 젊은이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2. 다윗의 용모와 체격
그동안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다윗이 어린아이는 아니더라도 다소 왜소한 체격이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울의 군복과 투구 그리고 갑옷을 입은 것으로 봐서, 다윗의 키는 장신으로 알려진 사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컸을 수도 있을 것 같다.9) 이는 군복이나 투구 또는 갑옷이 맞지 않았다고 하지 않고, 다윗이 군복위에 칼을 차고 시험적으로 걸어보다가, 익숙치 못하다고 하며, 칼 대신에 물매(막대기와 돌 다섯)를 가지고 나갔다는 본문의 내용과도 부합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식되어온 그의 볼품없는 용모 또한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고 보여 진다. 엘리압을 보고 기름을 부으려던 사무엘에게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고 한 것 때문에, 성경에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못생겼고 키도 작았다라고 억측을 하기도 하지만, 얼굴이 아름답다10)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윗은 키도 작고 못생긴 어린 아이가 아니라, 키 크고 아름다운 청년이요, 사자와 곰을 맨손으로 쳐 죽이는, 뛰어난 용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엘라 골짜기에서 대치할 때에, 일대일 대결로 전쟁의 승패를 가리자며, 하나님을 저주하는 골리앗은 줄잡아 3m에 이르는 신장에 쇠창날을 장착한 배틀채 같은 창과, 놋단창, 칼과 방패로 무장하고, 50~60kg 무게의 어린갑을 입고, 머리는 놋투구, 다리는 놋경갑으로 보호를 하고 있어 도무지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물매 돌에 죽고 그로 인해 다윗은 왕국 건설의 중요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11)
3. 다윗의 건국 과정
다윗의 청년기를 살펴보는 이유는 그의 도피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비록 굴욕을 참아야 할 때도 있었지만,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계획적이고 능동적으로 왕국 건설을 위한 행보를 보인 것으로 이해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다윗의 행적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그는 ① “라마 나욧”에 가서 사무엘과 함께 거하다가 그 곳에서 도망하여 (삼상 20:1)요나단과 들에서 만났으며, ②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자 아히멜렉이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을 다윗에서 주었다.(삼상 21:1-9)
다윗은 ③ “가드”의 아기스왕에게 가서 생긴 위기를 미친척 하여 모면하고, (삼상 21:10-15) 헤브론의 북서쪽 16Km 지점의 ④ “아둘람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그에게로 이르렀고 그곳에서 다윗은 장관이 되었는데 함께한 자가 400명가량 되었는데,(삼상 22:1-2) 이때부터 건국을 위한 세력을 준비한 건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에서 ⑤ “모압 미스베”로 가서 그의 부모12)와 함께 있다가 선지가 갓의 말을 듣고 유다 땅의 “헤렛수풀”에 이르는데, 사울이 에돔사람 도액의 제보로 아히멜렉과 다윗이 만난 사실을 알게 되어 놉의 제사장 85명을 죽인 그것을 아히멜렉의 아들인 아비나답이 도망하여 이 사실을 알렸다. (삼상 22:6-5)
블레셋이 그일라를 쳐서 탈취했으므로 다윗은 헤브론 북서쪽 14Km 지점의 ⑥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과 싸워 그일라 거민을 구원한 것은(삼상 23:1-5) 도피 중에 있던 다윗이 취할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히멜렉과 같이 그에게 협조한 사람 때문이거나, 그의 기반에 큰 영향을 주는 지역이기에 무리한 작전을 감행한 것으로 이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울이 그일라를 포위하려 하자 ⑦ “십 황무지수풀”에 숨었고, 요나단이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고 위로하였는데, 십 사람들로 인해 사울에게 위치가 알려지자(삼상 23:6-23) ⑧ “마온 황무지”에 숨어 있었다. 사울과 다윗을 잡으려고 할 때에 블레셋이 유대를 공격하므로, 다윗을 사로잡기 직전에 사울은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갈 수밖에 없었다.(삼상 23:24-28)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의 양의 우리에 숨어 있을 때,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치다가 돌아와 3,000명을 거느리고 다윗을 찾으러 왔다. 그가 양의 우리에 쉬러 들어왔을 때, 다윗이 사울의 겉옷자락만을 베고, 사람들에게 기름부음 받은 사울을 해하지 못하도록 하였다,(삼상 24:1-22) 사무엘이 죽은 후에 ⑩ “바란 광야”로 내려갔다가(삼상 25:1) ⑪ “갈멜”로 이동할 때에 악행을 한 나발이 죽으매 그의 아내 아비가일과 아히노암 두 사람을 아내로 삼았고, 사울은 그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다. (삼상 25:39-44)
이 후에 ⑫ 십 황무지로 옯겨 하길라산에 숨어 있을 때에 십 사람들은 또 제보하여, 사울이 3,000명을 거느리고 하길라산 길가에 진을 쳤고, 사울이 밤에 진 가운데서 잠자고 있을 때에 다윗이 두 번째 사울을 살려주었다.(삼상 26:1-12)
후환을 염려한 다윗이 가족과 600명의 부하와 더불어 ⑬ 가드로 도망하자 가드왕은 다윗에게 ⑭ “시글락 성읍”을 주었고, (삼하 1:1) 사울이 죽을 때까지 1년 4개월을 지냈는데,13) 이때까지의 모든 다윗의 행보가 그의 건국과정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4)

by 토크 | 2007/06/04 14:33 | 성경지리 | 트랙백 | 덧글(1)

이스라엘의 도로망






위 이스라엘의 도로망은 김흔중 성서의 역사와 지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by 토크 | 2007/05/09 14:38 | 지리지도 | 트랙백 | 덧글(0)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영토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영토는 김흔중 성서의 역사와 지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by 토크 | 2007/05/09 14:33 | 지리지도 | 트랙백 | 덧글(0)

다윗의 도피 행적


다윗의 도피 행적은 김흔중 성서의 역사와 지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