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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사유(赦諭)와 격려(激勵)(왕상19:19-21).

by 금빛돌 2025. 11. 13.

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나는 영원한 청춘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가 이 나이가 되었나 고 하실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매일 나의 과거와 이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과거와 이별하며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사가 엘리야를 만나서 과거와 완전히 이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19절에 보면 엘리사가 엘리야를 만났을 때 엘리사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한 겨리가 두 마리의 소를 가리킵니다. 보통 당시의 농가는 한 겨리 소만 있어도 충분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열두 겨리 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은 아주 큰 부농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나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엘리사의 위에 던졌다고 말합니다. 이 겉옷은 선지자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 엘리야가 가졌던 그 선지자의 신분을 이제는 그에게 위임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무엇을 청합니까?

“20상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그러면 엘리사가 왜 나를 내 부무와 입맞추게 한 후에 당신을 따르겠다고 합니까?

엘리야를 따르기 전에 먼저 부모에게 인사하기 위함입니다.

또 그 동안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슨 말을 합니까?

20--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생각하라) 하니라.”

엘리야는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엘리야가 "생각하라는 것은 앞에서 엘리야가 그 옷을 엘리사에게 던진 것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르기 전에 또 무엇을 합니까?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고 합니다.

이렇게 소를 잡아서 그 고기를 삶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은 그동안  감사하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소의 기구를 불살랐다는 것은 그 과거의 모든 삶을 이제 완전히 단절하고 온전히 엘리야를 따르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과거와 이별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엘리사는 어떻게 과거와 이별하였습니까?

첫째는 감사였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르기 전에 먼저 부모에게 입 맞추고 엘리야를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그를 길러 주시고 키워 주신 부모님께 대한 감사의 인사였습니다.

이웃들에게 고기를 나눈 것도 감사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과거와 어떻게 이별하였는가 했을 때, 먼저 감사함으로 이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입니다. 그가 소의 기구를 불살랐다는 것을 통해서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였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를 따르기 위해서 과거와 완전히 단절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어떻게 과거와 이별해야 합니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과거에 잘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잘한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모든 자랑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모든 사람들의 은혜에 대해서도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과거에 잘못한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단절해야 되는데, 어떻게 단절해야 되겠습니까?

사유(赦諭)와 격려(激勵)로 인해서 우리가 과거와 단절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과거의 잘못한 것에 대해서 **십자가의 사유의 은총이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기억은 하되, 그것이 상처와 자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은둔형 외톨이’에 관한 프로를 본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 은둔형 외톨이가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20대, 30대, 40대, 특별히 남자들 가운데서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이 많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청년은 벌써 40살입니다. 거의 20년 동안 방에 갇혀서 혼자 살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끊임없는 자학으로 인해 날마다 자신을 죽여 가기 때문이다.” 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계속 원서를 씁니다. 직장을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떨어집니다

그래서 계속하다가 안 되니까 나중에는 그것이 자신의 잘못인 줄 알고 끊임없이 자책하고 자학하는 삶을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10, 20년 되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완전히 사회와 단절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전문가는 암세포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암세포는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죽이는 세포라고 합니다. 마치 은둔형 외톨이는 자신의 과거 잘못에 대해 끊임없이 자학함으로 인해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기억은 하되, 그것이 상처와 자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 십자가의 사유(용서)의 은총이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족에 대해서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의 사유의 은총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날마다 다시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격려를 받아야 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머리를 숙이고 있는 여인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시는 그러지 않으면 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 잘못을 추궁하지 않습니다. 율법적인 집착을 하지 않습니다.

“네가 내게 왔으니 내가 너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줄 것이니, 이제는 다시 그러지 않으면 된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과거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면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과거의 모든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으시고, 다시 그 십자가를 의지해서 새로운 격려를 얻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와 완전히 이별하고 이제 오늘 하루 또 새로운 도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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