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풀려난 후 마게도니아로 향할 때 디모데에게 준 편지입니다. 바울은 3절을 보시면 “3 ○내가 (로마 감옥에서 풀려난 후)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거짓교사)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고 합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향할 때 디모데는 에베소에 머물라고 합니다. 보통 바울은 디모데를 데리고 가는데, 왜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합니까? 그 이유는 에베소에 거짓 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가르쳐준 바른 교훈을 가르치지 않고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3년 동안 가르친 교회입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날 때 거짓 교사들이 너희에게 들어와서 너희를 미혹할까 주의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행20:28-30). 그런데 에베소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에베소 교회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딤전3: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디모데전서)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속히 가기를 바라지만 늦어지더라도)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교회)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기록한 목적은 에베소 교회 가운데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바울이 가르친 바른 교훈과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거짓 교사들이 가르친 다른 교훈은 어떤 것입니까?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다툼과 논쟁)을 내는 것이라
신화는 인간이 만든 신화입니다. 족보는 인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신화나 인간의 역사를 담은 족보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을 절대화하여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내가 생각한 것을 절대시하다 보면 그것을 절대시하지 않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거짓 교사들은 인간이 만든 신화나 족보에 몰두하여 그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툼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오늘로 말하면 무엇이겠습니까?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입니다. 보수의 이데올로기도 진보의 이데올로기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그것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들을 절대시하여 교회에서 논쟁을 벌이면 무엇을 이루지 못합니까?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이 세상의 정치적인 이념을 절대시하면 되지 않습니다. 만일 교회가 이 세상의 정치적인 이념을 복음처럼 절대시한다면 에베소교회의 거짓 교사들과 같이 인간이 만든 신화나 족보에 몰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또 에베소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가르친 다른 교훈은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여러분 율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가 무엇입니까? 율법주의란 인간이 만든 수 많은 율법적 규칙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로 하면 무엇이겠습니까? 이찬수목사님은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율법주의가 있다고 합니다. 이찬수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할 때 매일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가 하면서 새벽기도를 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왜 큐티를 하지 않는가 하면서 큐티를 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새벽기도를 하지 말고 큐티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큐티라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기도회에 나오라고 합니다. 또 큐티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우리가 큐티를 합니까? 왜 우리가 기도회에 나옵니까?
이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1 이 (바른)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바울이 가르친 바른 교훈은 복음을 따르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가 무엇입니까?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은혜와 감격으로 하지 않고 단순히 율법적인 규칙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내가 만든 율법적 규칙으로 매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다 보니까 매일 화가 나 있습니다. 또 누구보다 뜨겁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주위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사람들은 율법의 본질과 복음의 본질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7 그들은(율법주의자들은) 율법교사가 되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표준새번역)”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율법의 본질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복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본질도 사랑입니다. 왜 기도합니까?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왜 큐티합니까?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왜 성경을 봅니까?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바른 교훈은 무엇입니까?
5 이 (바른)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복음을)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그런데 에베소교회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이 만든 수많은 율법적 규칙들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생활하는 것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또 그러다 보니 교회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복음을 통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역사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심지어 딤전 4장에 보면 에베소교회에 금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을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귀신의 거짓된 가르침이라고 합니다(딤전4:1). 그러니까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에베소 교회에 들어오겠습니까? 어떻게 에베소교회에 들어와서 복음을 들음으로 구원을 받겠습니까? 너무 담장이 높아서 감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사도바울이 디모데전서를 기록했습니까?
에베소교회가 복음이 아닌 신화와 족보로 논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에베소 교회가 복음이 아닌 율법주의에 빠져서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에베소교회가 거짓된 가르침에 빠져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한 주 동안 디모데전서를 보면서 에베소교회가 오늘 한국교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주에도 목사님들 모임을 갔는데, 목사님들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정말 요즘에 전도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특정한 정치적인 이념만을 전하는 집단으로 비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떻게 교회가 바르게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교회를 통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이념이 아닙니다. 정치구호도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율법적인 규칙들도 아닙니다. 거짓된 가르침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십자가의 복음 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고 우리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울 수 있습니까?
첫째,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금요기도회 때 말씀을 드렸는데,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복음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한 구절인데, 디모데전서에서는 디모데전서 3장 16절입니다.
딤전3:16 크도다 경건(하나님께 나아감, 하나님을 만남)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여기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라고 합니다. 경건이란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완전하게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려면 우리가 하나님만큼 의로워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만큼 의로울 수 있습니까?
그래서 에베소교회에 거짓 교사들은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나님과 같이 의로울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특정한 음식물을 먹지 말아야 하나님과 같이 의로울 수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기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수녀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수녀님에게 오늘 밤에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정색을 하시면서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수녀가 되었겠냐고 하면서 이렇게 하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이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딤전3: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결혼하지 않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고 합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어떤 음식물을 먹지 않으면 하나님과 같이 의로울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귀신의 가르침이고 거짓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의로우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이것을 경건이라고 하는데, 이 경건의 비밀이 있습니다. 비로 이 경건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3장 16절을 다시 보시면
딤전3:16 크도다 경건(하나님께 나아감, 하나님을 만남)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예수님)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영으로(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부활하신 모습을) 천사들에게 보이시고/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승천-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앉으심)
먼저 “예수님은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육신은 악하고 하나님은 선한데,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실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반드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만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야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다신 져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져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받을 형벌을 대신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왜 우리가 예수만을 믿어야 하는가? 예수님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믿고, 다른 교주를 믿어도 구원을 받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이 세상의 다른 교주와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 종교의 모든 교주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이 성지가 되고 있습니다. 신천지의 이만희 교주도 곧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이 세상에 유일하게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만 유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모습을 두 천사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올라가셨습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받은 유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됩니다. 예수님의 완전하신 의가 나의 의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결혼도 하지 않고 특별한 음식을 먹지 않고 평생을 수도를 한다하더라도 그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나의 모든 죄는 다 예수님에게 전가가 되고, 예수님의 완전하신 의는 내가 전가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예수님의 의를 가지고 우리가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 왜 복음입니까?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결혼도 하지 않고 특정한 음식도 먹지 않아야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완전하게 의로워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 내 공로가 아닙니다. 내 의가 아닙니다. 내 선행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완전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기도를 합니까? 왜 우리가 큐티를 합니까? 또 왜 예배를 드립니까? 그 이유는 우리에게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9월 10월에는 초정 주일을 앞두고 로마서를 큐티 본문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떻게 우리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 십자가의 복음만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고, 우리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떻게 우리 교회가 복음으로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둘째, 복음이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믿는 내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나는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를 믿으면 믿을수록 더 기도합니다. 더 성경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내가 더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향해서는 하나님 내가 이렇게 많이 기도하고 성경을 보고 충성했는데, 왜 내게 더 큰 복을 주지 않습니까? 라고 합니다. 또 사람을 향해서는 끊임없는 정죄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너는 기도도 하지 못하고 성경도 보지 못한 죄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처음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자신을 어떻게 말합니까?
고전 15장 9절에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AD 55경으로 사도 바울 사역의 초기였습니다.
그런데 엡3장 8절에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은혜의)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5년에 지난 AD 60년경에는 이제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합니다. 이때가 사도 바울 사역의 중간기입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AD 64경에 오늘 본문에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때가 사도 바울 사역의 말기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사도 바울은 내가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는 내가 모든 성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기에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도바울이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더 죄를 지었다는 말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더 기도하지 못했고, 더 성경 보지 못했다는 말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더 기도했습니다. 더 열심히 성경을 보고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더 충성했습니다. 더 의로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밝은 빛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죄인이라고 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자신이 더 죄인인 것을 고백함과 동시에 사도 바울은 무엇을 고백합니까? 처음에는 내가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할 때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내가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고 고백할 때 바울은 측량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인생 말기에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때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딤전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이제 사도 바울은 그를 향하신 주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도록 풍성하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두 가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 할 수록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만이만 너무 우리 신앙생활이 우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면 나갈 수록 더 죄인임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이런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이런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 이런 나를 어떻게 함께하셨는가 하면 내가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습니까?
여러분 예수를 오래 믿으면 믿을 수록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고 풍성하게 느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앞 날의 미래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꿈꾸고 있습니까?
내 앞으로 미래가 지금보다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더 십자가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내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더 흘러넘치도록 풍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어떻게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셋째, 복음으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5).
5 이 (복음으로 말미암은)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신화로 말미암은 교훈의 목적은 논쟁입니다. 율법주의로 말미암은 교훈의 목적은 정죄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말미암은 교훈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복음으로 말미암은 사랑이 무엇입니까? 복음으로 말미암은 사랑이란 서로 용서함으로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그 여인이 과거에 지은 죄를 가지고 정죄합니다. 그리고 돌을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과거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는 내가 다 용서한다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여러분들 과거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시고 용서해 주셨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가 서로의 모든 죄를 더 용서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더 이상 과거의 죄를 기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내어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날마다 예수님으로부터 죄사함의 은총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격려의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네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도 내 앞에 다 내어놓으면 된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다 용서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서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오직 예수님 십자가의 복음으로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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