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집안의 탕자(눅15:25-32)

by 금빛돌 2024. 6. 14.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비유를 보통 탕자의 비유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오늘 비유에 나오는 탕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 비유를 볼 때 집을 나간 둘째 아들만 탕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눅15장에는 두 명의 탕자가 나옵니다. 한 탕자는 집을 나간 탕자이고, 또 한 탕자는 집안에 있는 탕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집을 나간 탕자는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키고, 또 집 안에 있는 탕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오늘 비유에 나오는 두 명의 탕자 중에서 예수님은 특별히 누구를 염두해두시고 이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집 나간 탕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탕자의 비유를 하신 것은 먼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염두해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눅151절과 2절을 보시면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고 하시고 이 이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죄인 됨을 알기에 더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도무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 이미 구원받은 자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천국의 잔치에 참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천국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세리와 죄인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세리와 죄인들 친구로 받아들이는 예수님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늘 예수님께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맏아들이 집안에 있는 진짜 탕자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들만 탕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서 이 세상의 죄악에 빠진 자들만이 탕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탕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집안에 있는 탕자입니다.

그러면 맏아들을 통해서 본 집안의 탕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으로 만나보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26절에 보시면 맏아들은 아버지를 부르지 않고,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인가를 물어봅니다.

28절에 보면 맏아들은 아버지에 대하여 노하면서 잔치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29절에 보면 맏아들은 아버지께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12절 하반 절에 보면 “--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맏아들도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 것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맏아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만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은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신학 공부 평생 해도 하나님 모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당신이 신학 공부를 40년 동안 매일 10시간씩 하면서도, 하나님을 삶의 가장 귀한 보물이자 아름답고 모든 것을 만족시키시는 분으로 알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존 파이퍼 목사는 하나님은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답고, 만족이 되시는 분이시다. 그의 오른손에는 기쁨이 있고, 그의 임재 가운데 영원한 기쁨이 있다. 이는 당신이 10,000번의 성적인 밀회를 갖는 것보다 훨씬 더 크시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서 그를) 안다면, 죄는 여러분의 삶 속에서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배부른 자들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율법적은 행위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보지 못한 자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하면 우리를 회칠한 무덤과 같고, 평토장한 무덤과 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하면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을 막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하면 오늘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처럼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대해서도 원망 불평하고, 또 모든 일에 원망 불평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만족이 되신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에 있어서도 충분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쁨을 채워주시기에 충분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1611절에서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한 분의 사랑만으로 만족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어떤 신비한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특별한 경건의 모습을 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해서 기도의 특별한 단계에 들어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밖에 없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살았어도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받으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아버지를 지금 당장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우리 안에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랑하는 모든 의를 배설물과 같이 여겨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했다는 것, 내가 주님께 충성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과 같이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내가 기도의 열심히 부족했다는 것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기도가 부족해도 예수님을 십자가만을 단단히 붙잡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또 내가 열심히 기도했다해도 그것 의지하지 마시고, 나를 위해서 겟세마네에서 흘리신 그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임하여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한 자로서 하나님의 풍성함을 맛보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