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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廣野)의 삶은 오히려 축복입니다(퍼옴)

by 금빛돌 2023. 6. 23.

갈망은 만족을 위함입니다.

기다림은 만남을 위함입니다.

비우라 하심은 채우기 위함입니다.

버리라 하심은 소유케 하심입니다.

침묵은 응답을 위함입니다.

고통은 축복을 위함입니다.

연단은 쓰심을 위함입니다.

 

밤이 깊다는 말은 새벽이 가까웠다는 말인 것처럼, 고난이 크고 깊다는 것은, 얼마 있지 않아 축복이 온다는 뜻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축복 앞에서 포기하거나 돌아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두고 보시기에도 아까운 우리들을 광야(廣野)로 몰아 넣으셔서 달달 볶으실까요?

 

우리가 동의하든 안 하든 간에, 우리를 광야로 몰아 넣으신 배후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의도가 숨어 있음을 우리는 미련하여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곤 합니다.

 

도무지 이해도 안되고 알 수도 없는 것을 <섭리>라 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 하나라도 스스로 원하여 <광야학교>에 자원입학 하였겠습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정신차리고 보니까, 광야학교 교정 한복판에 서있는 것이지요. 서둘러 돌아서려니 이제껏 걸어온 길 억울하고, 서둘러 앞으로 가려하니 가야할 길 막막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이, 우리의 최근 진통이 아닐는지요?

 

광야의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문득 문득 생각나고 떠오르는 <애굽>*에 대한 그리움과 사무침은 도무지 제어가 안됨이 우리를 더 큰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 넣곤 합니다.

 

‘차라리 예수를 믿지나 말 것을 그랬나?’

‘누가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줄 알았나?’

‘차라리 은혜 받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 걸 그랬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고, 감정의 기복도 시간마다 춤을 춥니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들려오는 애굽의 소식들은, 아물어 가던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합니다. 이래서 속상하고, 저래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광야의 길이 초행이라 더욱 더 힘겹고 불안한 듯합니다.

 

광야의 일상은, 온통 풀벌레 소리와 짐승 우는 소리뿐, 위로와 격려의 말은 침묵하는 곳입니다. 숨을 곳도, 쉴 곳도, 피할 곳도, 편히 누울 곳도 없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마저 나를 찌르고 누릅니다. 그렇다고 먹을 양식도 풍성하지 않습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습니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극도의 외로움입니다. 어디 한 곳, 누구 하나, 내 마음 알아 줄 이 없고 내 마음 붙일 곳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이방인뿐입니다. 혼자 아파야 하고, 혼자 이겨야 하고, 혼자 감당해야 하고, 혼자 싸워야 합니다. 아무도 내 마음 알아주지 못합니다.

 

알아준들 뭐 합니까? 내가 나를 이해 못하는데 누가 나를 이해하며, 내가 날 봐도 시원치 않은데 누가 나를 반기겠습니까? 병들고 찢긴 영혼, 나도 내가 싫은데 누군들 좋아하겠습니까? 다 부질 없음을 알면서도 또 사람에게 기댐을 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아담의 후예들인가 봅니다.

 

이러다가 꼭 죽을 것만 같습니다. 망할 것 같습니다. 끝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야 이 광야에서 벗어날지도 모름이, 더욱 더 기력을 쇠하게 하고 마음의 병을 중하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생각하면 살아있음이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리도 밤은 짧은지…’

‘더 오래, 깊이 잘 수는 없는지…’

‘남들은 잠도 많더만…’

‘다른 것들은 잊어버리기도 잘 하더만… 어째 그렇게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지…’

 

눈뜨자마자, 어제의 삶의 무게가 배(倍)가 되어 하루를 짓누릅니다. 화들짝 놀라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이미 들켜 버린 고난 앞에 잠마저 비켜 갑니다.

 

어제의 상처와 긴장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오늘은 또 어떤 낯선 공격 앞에 울어야 합니까? 방어할 기력조차 없는 나를, 이 하루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일찍부터 서두름이 오늘도 심상치가 않을 듯합니다.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냄’이라고 말함이 더 적절한 표현인 듯합니다.

 

처음 경험하는 광야생활의 설렘과 신선함도 잠깐,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지쳐만 갑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음성보다 짐승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습보다 <블레셋> 군대 병사들의 모습이 더 또렷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길 보다 적들의 손이 나를 더 움켜쥐려 하기 때문입니다.

 

한번쯤 주님이 친히 심방 오셔서 “사랑하는 자녀야 많이 힘들지? 조금만 더 참아라. 조금만 더 기운을 내” 라고 하신다면 죽어도 참을 터인데, 하나님의 침묵하심에는 정말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왜 참아야 되는지?’ ‘무엇 때문에 참아야 되는지’를 모름이 더 큰 속상함으로 나를 무너지게 합니다. 그렇다고 원망도 후회도 못하는 것은, 나의 죄를 내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렇게 하루가 저물기를 막연히 지켜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 갑니다. 정말이지, 광야를 이미 통과한 지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고난이 유익이라>는 주님 말씀이 없었다면, 진작 포기했을 것입니다. <참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 없었다면, 벌써 안 참았을 것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는 선을 베푸신다>는 말씀이 없었다면, 못 기다렸을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말씀이 없었다면, 악으로 돌아섰을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이 없었다면, 벌써 도망이라도 갔을 것입니다.

 

형편은 점점 형편없어지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지라도 일점 일획이라도 변함 없으신 말씀과, 그 말씀의 성취를 붙들고 이렇게 버티고 있음이 또 다른 은총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광야생활을 지나놓고 나면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광야가 아니었다면 내 혈기, 고집, 교만, 탐욕, 성질, 모난 성품, 위선, 가증, 자존심… 과연 변화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조금도 실수함이 없으셨음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있어 광야는 오히려 잘 된 일입니다. 충분히, 잘 하신 일입니다. 언제나 광야의 모진 훈련으로 몰골은 상하여 있지만, 그 속에 살포시 감추어진 또 다른 나의 모습에, 그저 다행스럽고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이시여, 기왕 광야로 몰아 넣으셨으니 하나님의 사람 만들어 주시옵소서. 철들고, 사람 되고, 알곡 되어 광야학교 1등으로 졸업하게 하옵소서.

 

사람은 누구나, 애쓰고 힘쓴다고 겸손해 지고 성질이 죽는 것은 아닙니다. 겸손할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가야 비로소 조금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죽기까지 맞아야 성질도 조금씩 죽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겐 맞음이 은혜이며, 고난이 유익입니다.

 

더 나아가 광야학교가 주는 유익함의 절정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수 없음은, 사랑의 은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교만해서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상처 잘 받고, 사랑 받기만을 끝없이 요구합니다. 그러나 교만이 부서지면 웬만해서는 상처도 잘 안 받지만 누구도 사랑하는 데 힘들지 않습니다. 이 작업을 가능케 하는 학교가 광야학교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비극과 불행은 고통스러운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난 자체가 귀한 일은 아니지만, 고난을 통하여 만나는 주님의 은혜는 최고의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고난이 자랑은 아니지만, 고난을 통하여 받은 은혜는 최고의 자랑이며 영광입니다. 은혜 없는 고난, 주님 없는 광야는 최고의 비극의 현장이겠지요.

 

그러므로, 고난 자체를 즐기거나 자랑치 마십시오. 오히려 고난을 통하여 만난, 은혜와 성숙을 누리고 자랑하십시오.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광야에 비해 아무리 부족함이 없는 애굽이라도 <바로 왕>과 함께 하는 애굽생활은 지옥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힘든 광야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광야생활은 신나고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싫은 사람과 여행을 한번 해 보십시오. 얼마나 지루한지, 하루가 천년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는 여행하다가 먹을 것이 떨어져도 감사하고, 길을 잃어도 감사하고, 추워도 괜찮습니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고생하다가 죽어도 한이 없는 것입니다.

 

광야는 힘든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광야 생활은 기쁘고 신나는 곳입니다. 하나님 없는 궁궐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광야가 바로 천국입니다.

 

광야는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 후면, 찾아봐도 안 보일 것이 광야생활입니다. 분명한 것은, 광야의 삶은, 잠깐 통과해야 하는 과정에 불과하지, 목적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히려 광야의 시간이, 나중에 영광의 size가 될 것이기에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벌 중에 무서운 벌은 우리가 잘못을 했는데도 <내버려두시는 것>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는 것, 우리에게 아무 일이 많은 것은 특권이며 축복이지요. 주일을 안 지켜도, 예배를 빠져도, 기도를 안 해도, 말씀을 안 읽어도 아무 일이 안 일어난다면 혹, 당신은……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는, 매를 신속히 대시어 돌아서게 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순종 안 할 수 없는 이유는, 혈기를 참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겸손 안 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랑 안 할 수 없는 이유는, 기도 안 할 수 없는 이유는, 말씀 안 읽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매가 너무 가까이에, 항상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를 많이 맞으면, 맷집이 좋아지는 단점도 있겠지만 반듯하게 성숙하는 장점도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 싫어하듯, 성도들도 광야학교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때려서라도 학교에 보내듯,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때려서라도 광야학교로 밀어 넣으십니다.

 

왜인가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고생 안 시키기 위해 작은 고생하라 하심입니다. 다~ 우리, 잘 되라고 하심입니다. 광야 없는 성숙과 축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부모가 가기 싫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 놓고 뒤돌아 서서 마음 아파하듯,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성도들을 가기 싫은 광야학교에 밀어 넣으시고 돌아서서 울고 계십니다. 우리가 갖가지 고난으로 힘겨워 할 때, 사실은 하나님이 더 힘들어하십니다. 자녀가 힘들 때, 부모가 더 힘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기왕 맞을 매라면 기쁘게 맞읍시다. 기왕 들어온 광야라면, 기쁘게 훈련받아 우등생(모범생)으로 졸업합시다. 매맞을 때 도망가거나 광야에서 탈출하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재수(再修), 삼수(三修)일 테니까요.

 

너무, 광야 자체를 깊이 묵상하지 마십시오. 고난의 건너편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지금 처한 상황들과 지금 찌르는 가시들로 인하여, 너무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아마도 그 상황과 그 가시가 아니었다면 혹, 내 영혼 병들고 잠들어 버림 받을까 하여 눈물을 머금으시고 허락하신 상황이며, 박아 놓으신 가시임에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그러니, 이제 광야를, 내가 가려하지 마십시오. <은혜로 가는 법>을 배우십시오. <은혜로 사는 법>을 알아 가십시오.

 

내가 사는 광야는 힘든 곳이지만, 은혜로 사는 광야는 신나는 곳입니다. 내가 믿는 예수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믿는 예수는, 쉽고 즐거운 일입니다.

 

광야는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이 유일한 생존의 조건이었듯, 고난 중에 있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은혜의 통로뿐입니다.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은혜 속에 사는 것입니다. 은혜 없는 삶은 그 어디나 감옥이지만, 은혜 있는 광야는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며 하루 하루가 축복 받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들이여! 한 분도 낙오 없이 광야학교 졸업식장에서 영광스럽게 만납시다. 빛나는 졸업장을 양손에 들고, 머리에 면류관 눌러 쓰고 말이죠. 그토록 뵙고 싶었던 주님 앞에서, 우리 모두 하나되어 영광 중에 만납시다. 고난의 흔적이 그리스도의 흔적 되어….

 

그때는, 우리의 눈물 닦아주시며, 침묵을 깨시고 말씀하시겠죠?

“많이 애썼지! 몰골이 많이 상했구나.”

“이제 나와 더불어 안식하며, 영원토록 살자꾸나.”

“착하고 충성된 종아.”

 

섬길수록 더욱 귀한 주님.. 언제나, 주님 앞에 좋은 학생으로 기억되게 하옵소서. 아-멘

 

-푸른초장 (필명),갈릴리마을 해와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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