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면서 제일 크게 실망할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내가 무언가 크게 기대하고 희망했는데, 그것이 현실에서 정반대로 이루어질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홍해에서 나온 후에 모세와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에서 구원받은 자의 노래였습니다.
또한 옛사람이 죽고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의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대적을 물리치심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왕이시다 고 하는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사 모든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또한 그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는 노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힘이 되시며 나의 능력이 되시며 나의 구원자가 되신 나의 하나님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이렇게 노래했던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놀라운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따라갔습니다. 모세를 따라갔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 모세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따라갔는데, 사흘 길을 가도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이때까지는 200만 이스라엘백성들이 한 사람도 원망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들은 조금 전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홍해 앞에서 모세를 원망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홍해가 갈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200만명이 되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함께 하나님께 노래하고 찬양을 했기 때문입니다.
/주일 말씀이나 간증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면 3일 정도는 그 은혜가 남습니다. 우리가 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때쯤 이면 이제 은혜가 떨어질 때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모세와 같이 노래를 한 후 이제 3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 앞에 물이 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백성들은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무엇보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우리가 하나님께 노래하고 기대했던 것이 이제 우리 눈앞에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먹을 물이 아니었습니다. 쓴 물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있는 수르광야는 홍해바다에 가까운 곳입니다. 그래서 바다의 짠물이 들어와 쓴 물이 되었습니다.
/tv에서 바이블 루트라고 해서 성지에 관한 프로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곳에 가면 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물은 지금도 먹지 못하는 짠 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했습니다. 마라라는 뜻은 “쓰다, 고통스럽다 괴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기대감과 흥분 속에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마라의 쓴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라의 쓴 물보다 더 큰 쓴 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쓴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인도하시는데도 인생의 쓴 물을 마시게 할 때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나오미란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 나오미는 그 이름의 뜻대로 그의 인생가운데서 기쁨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쓴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로 하여금 자신의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리는 인생의 쓴물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여인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리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래서 나오미가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룻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이사야 30장 20절을 보면 “사3: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도 마라의 쓴물을 먹게 하십니다.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우리에게 마시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셔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는데, 왜 우리에게 마라의 쓴 물을 마시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마라의 쓴물을 마시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도 여러분가운데서 하나님께 무엇인가 큰 기대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마라의 쓴물을 마시게 하신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대해서도 순간적으로 실망하고 계십니까? 또 사람에 대해서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라의 쓴물을 먹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과 우리에게 마라의 쓴 물을 마시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라의 쓴물을 마시게 하시는 이유는 철저하게 우리 자신을 비우고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에 보면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신8장 3절에서도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를 너를 낮추시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지선씨는 화상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얼굴과 온몸에 기름을 부으신 것은 단순히 내 육체를 태우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름을 통해서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태우시고 비우시기 위함입니다"고 했습니다.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왜 제일 먼저 마라의 쓴물을 경험하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철저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비우고 낮추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한순간도 하나님이 없이는 살수 없는 자들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말은 그들이 들어가는 가나안땅은 광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들어가는 가나안땅은 당장 하나님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가나안땅에서 나오는 물로, 곡식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네가 가나안땅에 들어가더라도 절대 광야를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비록 가나안땅이 당장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땅이지만--광야의 이스라엘을 기억함으로 광야의 심정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이스라엘백성의 광야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집에서 얼마든지 수도를 틀면 물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가 하루 정도 기도하지 않고, 말씀보지 않아도 인간적인 힘으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비록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당장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너희는 광야의 이스라엘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광야의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은 심정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스테반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설교를 할 때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광야교회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지었을 때 그것을 교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광야의 이스라엘입니다.
즉 이 땅의 교회는 항상 광야의 이스라엘을 기억하며 살아가야합니다. 그래서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저는 목말라 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이는 저는 배고파 죽습니다” 라는 심정으로 살아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만일 여러분 가운데서 지금도 이런 마라의 쓴물을 경험하고 계시다고 한다면 하나님께 실망하거나 사람에게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쓴물이라면 하나도 남김없이 다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철저하게 비어지고 낮아지고 깨어지고 난 다음에 다시 나를 일으켜 주시고, 세워주시고,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라의 쓴물을 마시게 하신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 말씀25절 마지막에 보면 “그들을 시험하실새”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마라의 쓴물을 마시기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3일 전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자이시고, 힘이시며, 용사이시며 인도자이시며, 왕이시라고 찬양하고 노래했습니다.
이런 찬양과 노래는 홍해를 건너고 난 다음에는 누구나 다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 믿음으로 인한 찬양과 노래가 아닐 수 있습니다.
문제는 광야에서입니다. 우리의 현실의 삶속에서 마라의 쓴물을 마실 때입니다.
/우리는 과연 평안할 때만 아니라 마라의 쓴물을 마시면서도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시며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또한 내가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고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까?
/또 무엇보다 일이 잘될 때만 아니라 마라의 쓴물을 마시는 그 순간에도 과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마라로 인도하신 이유는 그 마라의 쓴물을 달게 하시는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말씀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며 그 나무를 베어 물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 나무는 갑자기 생긴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가 크려면 적어도 몇 년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몇 년 전부터 이스라엘백성을 마라로 인도하실 것을 계획하셔서 그곳에 나무를 준비시켜두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또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마라에서 11키로 앞에 엘림을 예비하셨습니다. 엘림은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완벽한 곳입니까? 이스라엘 12지파가 한 우물씩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물을 마신 후에 70그루의 종려나무에서 쉬게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3일전에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여기서 홍해가 갈라지는 것이 더 어렵습니까 아니면 쓴 물이 단물이 되게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까?
홍해가 갈라지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었다면, 쓴 물이 단물이 되게 하실 줄을 믿었어야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믿음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일이 잘될 때 만 하나님을 믿었고,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 이들을 책망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의 모습도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습과 똑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들도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이 두 가지의 영적인 병에 걸려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영적인 건망증입니다. 또 바로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영적인 근시의 병입니다.
/우리도 한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큰 은혜를 체험하고 난 다음에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작은 어려움이 있으면 그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실망하고, 사람에게 원망하지 않습니까?
또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되는데 한 치 앞을 내다보다 못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원망불평을 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참된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무엇이 참된 믿음입니까?
/마라의 쓴물을 마시면서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모세처럼 부르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라의 고통이 있을 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김이곤씨의 고난신학이라는 책에서 “성경에서 고난이란 희망의 문으로서의 고난이다” 라고 했습니다.
호세아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김이곤 교수의 번역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나(여호와)는-그녀(이스라엘) 광야로 데리고 가서 그녀(이스라엘)의 가슴에 속삭여 주리라 거기서(광야에서) --아골 골짜기(고난)를 “희망의 문”으로 삼아주리니-
-(김이곤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란 희망에 이르는 문이라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이지선씨가 화상을 당한지 23년 만에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로 왔습니다. 또 책을 쓰셨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꽤 괜찮은 해피앤딩”입니다. “인생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깜깜해지는 동굴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동굴과 같이 막막하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여기가 끝이다 더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차리리 끝내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들려온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작은 소리가 있다. -그래서 깜깜한 동굴에서 멈추지 않고 매일 하루씩만큼 걸어나와 이제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빛이 보이는) 터널이라고 말하며 꽤 괜찮은 해피앤딩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 -인생이 늘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도 감사한 일이 많았다. 그래서 동굴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당신에게도 꽤 괜찮은 해피앤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우리 같이 힘내자고 응원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마라의 쓴 물이 단물이 되게 하시고 이후에 열두 샘물과 70그루의 종려나무를 경험하는 꽤 괜찮은 인생의 끝을 경험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될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마라의 쓴물을 마시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치료하시는 하나님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물을 달게 하신 후에 말씀하시기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15:26)--”여호와 라파”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쓴물을 단물로 치료하시는 것은 단순히 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심으로 우리 인생의 쓴물을 단물로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여기서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만든 것은 하나님이 가리키신 한 나무였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 나무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우리의 삶 가운데 십자가가 필요 없습니다.
그 잘 된 일에 빠져서 그것에 흥분하고 기뻐하면서 살아 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떨 때는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실패를 주십니다. 마라를 주십니다. 슬픔을 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자가 앞으로 나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위로 하십니다. 그 십자를 통해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십자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의 상처들을 하나씩 치료해나가십니다.
/마라의 쓴물에 잘려진 나무가 던져졌을 때 쓴물이 단물이 된 것처럼, 실패의 상처에 시달린 우리를 치료할 유일한 처방전은 예수님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그 십자가가 나를 치료해주십니다. 그 십자가가 나를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그 십자가가 나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그래서 이제 그 십자가를 통해서 상처에 치유함을 받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상처 입은 심령을 찾아가게 하십니다.
/이와같이 여호와 라파//치료의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상처도 치료해주십니다.
룻기에 보면 나오미가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고 하라고 했는데, 그때 베들레헴이 보리추수를 시작하던 때라고 합니다. 보리 추수는 회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를 마라의 인생에서 다시 기쁨의 인생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남편과 아들 대신에 보아스를 만나게 해주심으로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여호와 라파//치료의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질병도 치료해주십니다.
/성경에서는 너희가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가 왔다고 말씀하시고, 그 증거로서 병이 치유되고, 귀신이 물러가는 역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병이 낫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병이 낫는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이 땅 가운데 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도 지금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 물을 마시게 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스라엘백성들처럼 하나님께 실망하거나 사람에게 불평하시기 바랍니다.
모세처럼 하나님께 믿음으로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마라의 쓴 물이 단물이 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마리의 쓴 물을 단물이 되게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물이 단물이 되게 하신 후에 우리를 열 두 샘이 있는 엘림으로 꽤 괜찬은 인생의 끝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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